[탈원전 갈등]⑨
예비율 높은 독일도 블랙아웃 위기 간신히 넘겨

지난해 8월 15일(현지시각) 대만 내 600만 이상 가구와 반도체 공장은 약 5시간 동안 블랙아웃(대정전) 공포에 떨어야 했다. 이날 오후 5시 무렵까지만 해도 전력예비율은 약 9%로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대만 최대 가스 발전소가 직원 실수로 작동을 멈추자 전기 공급이 일시에 중단됐다.

차이잉원 대만 총통은 2025년까지 대만의 원전(원자력발전소) 가동을 중단하는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다 결과적으로 국민에 피해를 안겼다. 블룸버그는 “블랙아웃 당시 대만은 차이잉원 총통의 탈원전 정책과 폭염, 태풍으로 인한 시설 파괴로 충분한 전력을 공급할 수 없었다”면서 “대만의 원자력 비중은 2013년 17%에서 2016년 12%로 낮아졌다”고 전했다.

대만은 한국처럼 원전을 대체할 에너지원이 없는 상황에서 무리하게 탈원전을 추진하다 블랙아웃의 위기를 경험했다. 2018년 7월 우리의 현실과 닮았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동욱 중앙대 교수(에너지시스템공학부)는 “블랙아웃이 발생하면 회복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리며, 국가적으로도 엄청난 손실이 발생한다”면서 “올 여름 최대 전력수요가 예상되는 8월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2017년 8월 15일 대만을 상징하는 ‘타이베이101’ 빌딩이 블랙아웃으로 암흑천지가 됐다.

◇ 독일, 예비율 넉넉해도 ‘블랙아웃’ 간신히 모면

한국원자력학회는 지난해 8월 “탈원전 정책으로 원전 축소와 신재생에너지 발전이 확대될 경우, 전력 공급이 불안해지기 때문에 (전력)예비율을 높여야 한다”고 했다.

일례로 독일은 신재생에너지를 포함한 전력설비 예비율이 120%를 넘는다. 그러나 지난해 1월 24일 전력예비율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블랙아웃이 발생할 뻔했다. 흐리고 바람이 없는 날이 계속되면서 태양광·풍력 발전량이 대폭 줄었기 때문이다.

갈탄을 사용하는 화력발전을 두고 있는 독일은 예상치 못한 날씨로 전력 공급이 불안해지자 비상발전기 등 응급조치를 취했다. 전력 수출량도 블랙아웃을 막기 위해 대폭 줄인 것으로 알려졌다.

원자력학회는 “대만 대정전에서 보듯이 예비율 축소는 결국 대규모 정전 사태라는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용훈 KAIST 교수(원자력·양자공학)는 “(전력예비율은) 올해만의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가 더 문제”라며 “올해만 덥고 추운게 아닌데 원전을 배제하고 어떻게 위기를 넘을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했다.

◇ 전력 수급 불안…“블랙아웃 우려 당연”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전력예비율이 7.7%(7월 24일 기준)까지 떨어졌는데도 “충분히 관리 가능한 예비력 수준”이라며 “국민 여러분께서는 크게 걱정을 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했다.

백 장관은 “2028년에는 원전이 석탄보다 비싼 발전원이 될 것이라는 산업연구원의 보고서가 있다”며 “원전을 건설하기까지 8~10년이 소요되는데, 경제성만 보더라도 (원전 확대로) 갈 수 없다”고 했다.

에너지업계는 정부가 지난 겨울 기업에 10차례나 전력수요 감축 요청을 한 것은 물론 올 여름에도 전력수요 예측이 빗나가고 있는데, 여전히 탈원전 정책을 방어하기 위해 무리수를 두고 있다고 지적한다. 국민들은 연일 보도되는 전력예비율 비상에 2011년 9월 일어난 블랙아웃의 악몽을 떠올린다.

신규 원전을 계속 건설하고 가동률을 높여야 경제성이 확보되는데, 월성 1호기처럼 2022년까지 가동할 수 있는 원전도 조기 폐쇄하면서 경제성이 없다고 설명하는건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이라는 것이다.

바른미래당은 24일 “전력예비율이 안정적 전력 수급 기준 이하로 내려가면서 국민들이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과 블랙아웃을 우려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대한민국 신재생에너지 환경과 현실에 부합되지 않는 탈원전 정책을 내세우고 구체적 대안 없이 폭염을 맞아 원전 가동을 늘리려는 정부의 우왕좌왕을 비판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