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 등 인터넷전문은행에 한해 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소유 한도(의결권 기준 4%)를 늘리자는 논의에 청신호가 켜졌다.

그동안 은산분리(은행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 규제 완화를 강하게 반대해온 여당이 규제 완화의 필요성을 밝히고 있는 상황에서 은산분리 반대론자였던 진보학자 출신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25일 특별법 도입을 통한 인터넷전문은행 은산분리 완화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처음으로 밝혔다. 인터넷전문은행에 한해 은산분리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촉구해온 최종구 금융위원장의 입장에 동조한 것이다.

다만 시민단체와 금융노조는 은산분리 규제 완화에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정부는 보수적인 은행권에 변화의 바람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메기효과'를 노리고 지난 2016년 인터넷전문은행을 도입했다. 그러나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가 은산분리 규제에 가로막혀 자본확충(증자)에 애를 먹으면서 당초 기대했던 메기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비판이 제기됐고 최근들어 정치권이 전향적인 입장으로 돌아선 상태다.

윤석헌 금융감독원장.

◇ 윤석헌 “특례법 도입통한 은산분리 완화 찬성”

윤 원장은 이날 오전 금감원의 국회 정무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을 통한 은산분리 완화에 찬성한다”며 “필요한 감독조치를 준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금감원장 취임 전 금융행정혁신위원장 시절까지만 해도 고수했던 은산분리 완화 반대 입장과는 정반대의 발언이었다. 그간 은산분리 규제 완화를 수차례 주장해온 최종구 금융위원장도 이날 “윤 원장과 생각이 같다”고 했다.

최근 여당에서도 특례법 도입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은 지난 17일 국회 규제개혁토론회에서 “특례법 도입을 통해 인터넷은행 산업자본 지분보유 한도를 현행 4%에서 34%까지 상향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은산분리는 금융회사가 아닌 비금융주력자(산업자본)가 은행 지분을 10%(의결권 행사 한도 4%)까지만 가질 수 있도록 제한한 규정이다. 이는 은행의 사금고화 등 산업자본과 은행자본의 유착을 막기 위해 지난 1961년 경제개발시대 초창기에 도입됐다. 이후 수차례 은행법 개정을 거쳐 2002년 현재와 같은 지분보유 한도가 정해졌다. 그동안 은산분리는 사실상 건드릴 수 없는 법칙처럼 여겨져왔다. 특히 지금의 여당이 은산분리 규제 완화를 강하게 반대해 왔다.

그러나 최근 정치권에서는 핀테크 활성화, 메기 효과 등을 위해 인터넷전문은행에 한해 은산분리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최근 공청회를 열고 인터넷전문은행을 위한 특례법을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힌 민병두, 정재호 의원은 각각 정무위원장 및 여당간사로 임명됐다. 또 현재 24명의 정무위원 중 뚜렷한 반대의사를 밝힌 의원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정무위 관계자는 “김종석 정무위 자유한국당 정무위 간사, 유의동 바른미래당 정무위 간사도 인터넷은행 특례법에 사실상 찬성하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유 의원은 앞서 관련 특별법 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관련 은행법 개정안은 강석진(자유한국당)·김용태(자유한국당) 의원안 2건, ‘인터넷전문은행 설립 및 운영에 관한 특례법’ 제정안은 정재호(더불어민주당)·김관영(바른미래당)·유의동(바른미래당) 의원안 3건이 발의돼 있다. 이들 법안에는 산업자본이 의결권이 있는 은행 지분을 최대 34~50%까지 보유할 수 있도록 하자는 내용이 담겨있다.

연합뉴스

◇ 제3의 인터넷은행 나올까...시민단체와 노조 반발 변수

금융위는 지난 5월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에 이은 제3의 인터넷전문은행을 선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금융위는 “은산분리 조정은 국회의 몫이며 인터넷전문은행 추가 선정 여부를 확정할 시점은 밝히기 어렵다”고 했다.

이에 대해 금융권에서는 케이뱅크, 카카오뱅크가 은산분리 규제로 증자에 어려움을 겪는 등 발목이 잡혀있는 현실에서 금융위가 적극적인 돌파 의지보다는 사실상 그 책임을 정치권에 떠넘긴 게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최근 15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에 실패하고 300억원만 모은 케이뱅크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우리은행과 함께 케이뱅크 설립을 주도한 KT 지분이 10%에 그치고 있고 소수 주주들이 많아 증자에 사실상 실패한 것이다. 은산분리 규제 완화로 KT가 더 많은 지분을 보유했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일이었다. 그런데 사업자금인 자본 확충이 어려워지면서 신규 서비스 도입이나 사업 모델 확장 속도도 더뎌지고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가 출범 당시의 예상보다 성장하지 못하는 주요 원인이 은산분리 규제 탓인데, 규제 완화 없이 인터넷은행을 하겠다고 나설 사업자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인터넷전문은행 은산분리 규제가 완화되면 제3의 인터넷전문은행 설립 움직임은 빨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시민단체와 금융노조는 은산분리 규제 완화에 대해 격하게 반대하고 있다. ‘지식인 선언 네트워크’는 지난 18일 서울 마포 기린캐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문재인 정부의 담대한 사회경제 개혁을 촉구하는 지식인 선언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선언문에서 “최근에는 과거 야당 시절 스스로 반대했고, 금융 전문가 그룹인 금융행정혁신위원회도 반대했던 인터넷 전문은행을 개혁의 상징처럼 밀어붙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식인 선언에는 이병천 강원대 명예교수, 김태동 성균관대 명예교수 등 32명이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전체 서명자는 교수·시민단체 활동가 등 323명에 이른다.

지난 17일에는 참여연대를 비롯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금융정의연대, 빚쟁이유니온, 주빌리은행, 청년지갑트레이닝센터, 한국파산회생변호사회 등 7개 시민단체가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금융소비자 연대회의’ 출범 기자회견을 열고 은산분리 규제완화 움직임에 대해 비판했다. 금융노조도 최근 성명을 내고 “산업자본과 은행자본을 분리한 한국 금융정책의 기본원칙인 은산분리를 완화하려는 시도가 가시화하면 총력투쟁을 불사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