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경기도 시화공단에 있는 비닐 포장지 제조업체 S사(社)의 공장. 4067㎡(약 1230평)의 공장에서는 집채만 한 비닐생산기계 12대가 쉴 새 없이 폭 1m의 비닐 원단을 뽑아내고 있었다. 바로 옆의 대형 인쇄기에서는 뽑은 비닐 원단에 한글·영어·중국어 등 여러 언어로 거래처의 상표를 인쇄하고 있었다. 이 회사는 현재 국내에서 직원 45명을 고용하고 있지만 이르면 연내 베트남에 1만㎡(약 3000평) 이상의 대형 공장을 건설할 계획이다. 베트남 공장에서는 현지인 100~200명을 고용할 예정이다. 주력 공장이 한국에서 베트남으로 바뀌는 것이다.

이 회사 창업자 원모 대표는 "난들 내 나라에서 사업하고 싶지 않겠느냐. 하지만 한국에서 제조업을 하는 건 한계에 다다랐다"고 말했다. 그는 "20년 넘게 한국 공장으로 버텼지만, 작년·올해 들어 최저임금이 너무 올랐고 근로시간 단축도 부담스럽다"며 "해외 공장을 운영해보고 잘 굴러가면 해외 투자를 더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국내 제조업의 탈(脫)한국이 가속되고 있다. 한국수출입은행에 따르면 국내 기업(개인 포함)의 해외 투자 금액은 작년에 436억9600만달러(약 44조원)로 해당 통계를 시작한 1980년 이후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대기업의 해외 투자는 2012년 255억5700만달러에서 작년 353억4100만달러로 5년 만에 38% 급증했다. 중소기업은 지난 5년 새 해외 투자 금액이 3배로 늘었다. 해외에 공장을 지은 중기 숫자도 작년 1884곳으로 같은 기간 700여 개 증가(60.3%)했다.

제조업 현장의 기업인들 사이에서는 "더 이상 한국에서는 제조업을 하기 힘들다"는 말이 자주 나온다. 급격한 인건비 상승과 정부 규제 탓에 삼성전자·현대자동차 같은 대기업마저도 한국에서는 원가 경쟁력을 유지하지 못해 해외로 떠나는 마당에 중견·중소업체들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 반(反)기업 정서가 갈수록 커지고 가업승계를 위한 상속세 부담도 눈덩이처럼 커지면서 기업인들 사이에서는 해외로 생산 기반을 옮기거나 아예 회사를 매각하겠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전자·현대자동차의 1차 협력사 같은 우량 중소·중견기업의 경영자들도 '기업 할 맛이 안 난다'며 제조업을 그만두고 싶어하고 매물로 나와 있는 기업도 많이 있다"고 했다.

실제로 국내 설비 투자는 경고음을 내고 있다. 국내 대기업의 국내 투자(산업은행 통계)는 2015년 147조4000억원에서 작년에 168조5000억원으로 늘어났지만, 반도체·디스플레이를 뺀 대기업의 투자는 같은 기간에 123조원에서 110조6000억원으로 감소했다. 반도체 착시(錯視)가 투자에서도 나타나는 것이다.

더 우려스러운 대목은 중소기업이다. 중소기업의 국내 설비 투자는 2015년 33조4000억원에서 작년 21조3000억원으로 10조원 이상 급감했다. 국내 전체 고용의 87%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의 투자 감소는 고용 감소 쇼크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2000년대 초 중소·중견 섬유업체의 해외 진출 바람이 분 뒤, 섬유업계 고용은 당시 33만여 명에서 현재 16만명으로 뚝 떨어졌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공장 설비 투자는 10년 후를 바라보는 장기 전략으로, 설비 투자가 준다는 것은 제조업 경쟁력이 앞으로 더 나빠질 것으로 보는 기업인이 많다는 의미"라며 "해외 공장 이전 붐은 2~4년의 시차를 두고 고용 감소를 유발할 위험성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