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십년간 한국 자동차 산업의 ‘뿌리’ 역할을 해 왔던 부품산업이 위기를 맞고 있다. 완성차 판매대수가 지속적으로 감소하면서 실적 부진의 골이 깊어지는 가운데 최근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미국의 무역규제 등 여러 대외적인 악재까지 겹치며 경영난이 심화된 것이다. 국내 부품업체들은 한 때 독일의 보쉬, 일본 덴소와 같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기를 꿈꿨지만, 이제 생존을 걱정해야 할 처지에 몰렸다. 한국 자동차 부품산업의 위기 원인과 새로운 도약을 위한 발전 방안을 분석해 본다.


28년된 車 부품회사 제이피씨오토모티브 윤관원 회장
"주문량 줄고 실적 악화돼...직원들 급여도 제대로 주기 어려워"
"은행은 부품사를 '잠재적인 부도위험군'으로 보고 대출 중단"
"IMF, 리먼사태 다 겪었지만 지금이 가장 힘들어...모두 죽을 것"

지난 16일 오전 11시, 인천 서구 제이피씨오토모티브 청라공장. 한창 조업이 진행되고 있어야 할 시간이었지만, 공장 내부는 가동을 멈춘 채 방치된 기계들이 여럿 눈에 띄었다. 공장 한 켠에는 쓰일 곳을 찾지 못한 부품 원재료를 담은 상자들이 쌓여있었다.

“올해 상반기 매출액이 지난해 같은 기간의 절반 수준에도 미치지 못했어요.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와 10년전 리먼브라더스 사태 등 숱한 위기를 겪었지만, 지금이 가장 어려운 시기인 것 같습니다.”

이 곳에서 만난 윤관원 제이피씨오토모티브 회장은 어두운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올들어 부품 주문량이 크게 줄어들면서 실적이 악화됐다”며 “이대로 가다간 직원들의 급여도 제대로 주기 힘들 것 같아 밤잠을 설칠 지경”이라고 토로했다.

윤관원 제이피씨오토모티브 회장이 가동을 멈춘 생산라인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다. 한국GM의 1차 부품 협력사인 이 업체는 올들어 완성차 판매 감소 등으로 인해 경영난을 겪고 있다.

제이피씨오토모티브는 한국GM의 1차 협력업체로 옛 대우자동차 시절부터 부품을 공급했다. 에어벤트와 오버헤드콘솔, 플로어콘솔 등 차량용 플라스틱 부품을 주로 생산한다. 지난 1990년 중원화학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돼 올해로 28년째를 맞았지만, 올들어 한국GM의 철수설이 불거지고 자동차 판매량이 크게 줄면서 부품업체인 이 곳 역시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다.

그 동안 한국 자동차 산업의 한 축을 담당했던 부품업체들이 고사(枯死) 위기에 몰리고 있다. 완성차 판매 감소의 ‘직격탄’을 맞은 가운데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인건비 부담까지 커진 상황이다. 윤관원 회장은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지금 부품사들이 겪는 어려움은 어쩌면 시작에 불과할 수도 있다”며 “한국 자동차 부품산업은 종말을 향해 가는 것 같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가동 멈춘 기계, 비어가는 공장…최근 가동률 60% 이하로

―공장에 가동을 멈춘 설비가 많아보인다. 최근 경영상황은.

“제이피씨오토모티브의 공장 가동률은 2015년까지 매년 100%를 유지했다. 현재 가동률은 60%도 안 된다. 2016년부터 부품 주문량 감소로 가동률이 점차 떨어지다 올들어 한국GM 철수설이 나오고 쉐보레 브랜드 차량의 판매가 ‘반토막’이 나면서 우리 공장의 주문량도 급감했다. 올 상반기 매출액도 전년동기대비 절반 수준으로 감소했다”

―부품 주문량이 감소하면 타격도 클 것 같다.

“지난해 공장 자동화에 대한 투자를 진행하면서 플라스틱 사출기 7대를 새로 구입했는데 올해 주문 감소로 3대만 가동을 하고 있다. 최근 청라공장을 새로 지으면서 2층까지 공장으로 만들었지만, 기계도 놓지 못했다. 수주 경쟁을 하고 완성차 업체로부터 주문을 따내려면 지속적으로 설비를 투자해야 한다는 압박이 있다. 최근 몇 년간 무리해서 진행한 재투자가 지금은 고스란히 부담으로 남았다. 지난 2월 한국GM이 군산공장을 폐쇄하면서 우리도 오랜 기간 가동해 온 군산의 생산시설을 정리했다.”

가동을 멈춘 공장의 플라스틱 사출기. 제이피씨오토모티브는 지난해 신형 사출기 7대를 구매했지만, 올해 주문량 감소로 단 3대만 가동을 하고 있다.

―한국GM 사태는 지난 4월 정부와 산업은행의 추가 지원으로 일단 급한 불을 끈 상태다. 차츰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는 의견도 있는데.

“한국GM에 지원자금이 투입돼도 실제로 경영 정상화까지는 갈 길이 멀 것이다. 정부와 산은의 지원도 부품 협력업체들에게는 남의 얘기일 뿐이다. 일단 완성차 판매가 살아나야 하는데 여전히 지난해보다 판매가 부진해 부품 주문도 감소세가 이어지고 있다. 지금 같은 분위기로는 예전과 같은 수준으로 주문량이 회복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한국GM 사태 당시 부품사 대표들은 은행권이 ‘돈줄’을 조여 자금난이 심화되고 있다고 호소했다.

"그동안 한국GM의 협력업체들은 납품 대금을 현금 대신 60일 만기의 전자어음으로 받았다. 협력사들은 이 어음을 은행에 담보로 제공하고 약 3%의 할인된 금액을 만기 전에 대출로 받아 운영자금으로 써왔다. 그러나 한국GM 사태로 은행들이 어음 할인을 통한 대출을 중단하면서 자금 조달의 통로가 막히게 됐다. 지금도 은행들은 한국GM 부품사들을 '잠재적인 부도위험군'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

◇ 최저임금으로 인건비 부담은 가중…“앞으로 직원 뽑기 어려울 것”

―실적 부진이 계속되면 인건비에 대한 부담도 커질텐데.

“2010년 초반까지만 해도 제이피씨오토모티브의 직원 수는 500명이 넘었다. 지난해 직원 수는 350명 정도였고 지금은 300명 정도만 근무를 한다. 매년 직원들은 감소하고 있지만, 회사가 버는 돈이 줄어들다 보니 인건비 부담은 계속 커지고 있다. 현 상황에서 실적이 회복되지 못할 경우 월급을 제대로 주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그 때는 회사를 접을 생각이다.”

―올해 최저임금이 16.4% 올랐고 내년 인상률은 10.9%로 결정됐다. 이에 따른 영향은 없나.

“제조업체들에게 더 이상 회사를 운영하지 말라고 하는 것 같다. 지금 근무 중인 직원 300명 가운데 150명 이상이 생산직 근로자다. 올해 최저임금 인상을 반영해 급여를 지급하는 것도 힘든 상황인데 내년에는 더욱 버거울 것 같다. 만약 기적적으로 주문량이 회복되고 매출이 다시 증가해도 현 수준에서 직원을 더 뽑지는 않을 것 같다.”

제이피씨오토모티브는 옛 대우차 시절부터 20년 넘게 부품을 공급해 온 업체로 그 동안 수출에 기여한 공로로 여러 차례 정부의 포상을 받기도 했다. 윤 회장은 우량 제조업체들이 고사 직전에 있다고 호소했다.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 등 최근 정책으로 인해 어려움을 호소하는 중소기업들이 많다.

“지금 제대로 돈을 버는 업종이 반도체를 빼고 무엇이 있나. 일종의 ‘착시효과’라고 생각한다. 삼성이나 SK 같은 일부 대기업들이 돈을 크게 버니까 아직도 경제가 잘 돌아가고 있다고 보는 것 같은데, 중소기업들은 지금 살아남기 위한 전쟁을 벌이고 있다. 정책을 집행하는데 있어서도 기업들의 현실을 감안해 어느 정도 속도 조절을 해줬으면 한다.”

◇ “美 수입차 고율관세 현실화 되면 부품사 공멸(共滅)할 것”

―최근 가장 우려하고 있는 위험은 무엇인가.

“미국이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수입차와 부품에 대한 관세를 25%로 올린다고 한다. 만약 현실화되면 국내 부품업체들은 다 죽는다. 한국GM의 경우 국내 생산량의 절반은 미국으로 수출되는데 관세를 올리면 GM이 한국 공장을 그냥 두겠나. 부품업체들에게는 ‘사형선고’와도 같다.”

―사정이 어렵겠지만, 미국에 공장을 세우는 방안은 검토해 봤나.

“GM과 오랜 파트너십을 유지하면서 실제로 미국 테네시주에 공장을 설립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도 했지만, 결국 접었다. 공장 설립에 필요한 자금도 부족할 뿐 아니라 제대로 수주를 받지 못할 것이라는 부담도 있었다. 고율관세 부과에 대응해 미국 현지에 공장을 세우는 것도 자금력이 되는 완성차나 일부 대형 협력사들이 가능하지, 영세 부품업체들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제이피씨오토모티브가 생산해 납품하는 자동차 부품들

―최근 현대차 1차 협력업체인 리한이 워크아웃을 신청했다고 한다. 부품업계 전반으로 위기가 확산되는 것으로 보인다.

“다들 사정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현대·기아차도 지난해부터 미국과 중국에서 판매량이 급감하지 않았나. 완성차 업체들은 판매가 감소하면 납품단가 조정을 통해 최대한 실적을 방어하려는 경우가 많다.”

―1차 협력업체인 제이피씨오토모티브가 어려움을 겪을 정도면 2, 3차 협력사들은 사정이 더욱 안 좋을 것 같다.

“업무 관계로 매주 2차 협력사 대표들을 만나는데 최근 폐업을 고려하고 있다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2, 3차 협력사들은 규모도 훨씬 영세할 뿐더러 자금 사정도 더 나쁘다. 제조업의 풀뿌리가 점차 말라죽어가고 있다. 부품사들이 어느 정도 숨통을 틀 수 있도록 정부나 재계가 좀 더 관심을 가져줬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