궤양성 대장염 신약을 개발하는 바이오 벤처기업인 '브릿지바이오'는 최근 코스닥 상장에 실패했다. 브릿지바이오는 국내 벤처캐피털로부터 283억원을 투자받아 미국에서 신약 임상시험을 진행할 정도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기술특례상장 첫 단계인 기술성 평가 문턱조차 넘지 못했다. 2005년 제정된 기술특례상장 제도는 벤처기업을 위해 매출이나 수익성 대신 기술력을 평가해 상장을 허용해주는 제도다. 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삼성바이오로직스·셀트리온 등 바이오 기업의 회계 처리가 논란이 되면서 심사기관들이 잔뜩 움츠려 있다"면서 "2~3년 전이라면 상장할 수 있었던 기업들이 줄줄이 탈락하고 있다"고 말했다.

'K(코리아) 바이오' 열기가 빠르게 식어가고 있다. 올 상반기 15개 기업이 기술특례상장을 신청했지만 증시에 입성한 기업은 2곳에 불과하다. 기술특례상장 업체는 2015년 10개까지 치솟았지만 지난해 5개로 줄었다. 엄격해진 상장 평가 기준 탓에 상장을 늦추거나 아예 포기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최근 삼성바이오로직스가 공시 누락으로 정부로부터 중징계를 받은 데 이어, 줄기세포 업체 네이처셀의 라정찬 대표가 주가 조작 혐의로 구속되면서 바이오 업계에 대한 신뢰도도 크게 떨어졌다. 여기에 금융 당국이 올해 초부터 바이오 기업의 연구·개발(R&D) 회계 처리의 적정성에 대해 대대적인 감리를 벌이는 것도 큰 부담이다.

꿈쩍 않는 각종 규제도 바이오산업의 성장을 막고 있다. 2016년 3월 바이오산업 성장에 장애가 되는 규제를 개혁하겠다며 정부 주도로 바이오특별위원회가 출범했지만 활동 종료 시점인 올해 1월까지 2년 동안 철폐한 규제는 한 건도 없었다. 당시 업계에서는 유전자 가위 효소를 이용한 배아 실험과 의료 데이터의 민간 활용 등을 강력하게 요구했지만 관련 법 문구는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미국 과학 매체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에 따르면 한국은 규제 환경과 연구 인프라 등을 기준으로 매긴 국가별 바이오 기술 경쟁력 순위에서 2016년 24위로 2009년(15위)에 비해 9계단 하락했다.

이은규 한양대 교수(생명나노공학과)는 "각종 규제에 막혀 주춤거리면 한국 바이오산업이 도약할 수 있는 골든타임(최적기)을 놓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바이오 기업들의 고민은 기술 개발을 위한 투자금 확보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의 대표 유전자 가위 기업 툴젠은 최근 코넥스에서 코스닥으로 이전을 두 차례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유전자 가위는 질병 유전자를 원하는 대로 교정할 수 있어 현재 전 세계 바이오 업계에서 가장 각광받는 기술이다. 툴젠은 이 분야에서 세계 시장을 선도할 만한 기술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럼에도 툴젠이 난항을 겪는 이유는 아직도 하버드대·MIT(매사추세츠공대) 등과 특허 분쟁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거래소에서는 특허 분쟁을 하는 기업을 주식 시장에 상장시킬 수 없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바이오 전문 벤처 투자 기업 임원은 "유전자 가위 기술을 둘러싼 특허 분쟁은 기술 주도권을 쥐기 위해 벌어지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면서 "다른 해외 기업들은 특허 분쟁 속에서도 상장에 성공해 막대한 자금을 유치한다"고 말했다.

게다가 정부는 한쪽에서는 바이오산업을 육성하겠다고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최근 증권선물위원회에서 중징계를 받은 삼성바이오로직스는 향후 사업 확대와 해외 수주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연구·개발(R&D) 투자의 회계 처리 방식을 둘러싼 논란도 바이오 업체들에는 타격이 크다. 금융감독원이 R&D 회계 기준에 대한 조사에 들어가자 바이오 기업들이 뒤늦게 R&D 자금을 자산 대신 비용으로 처리하면서 수백억원의 적자(赤字)를 기록한 기업들이 속출했다. 예컨대 면역항암제 분야 대표 기업인 제넥신은 지난 3월 회계 기준을 변경하자 작년 영업 손실 규모가 64억원에서 269억원으로 4배 이상 늘었다. 한 바이오 벤처기업 고위 임원은 "연구 인프라부터 투자금 조달 등 모든 여건이 완벽하게 갖춰진 바이오 선진국과 이제 걸음마를 하기 시작한 한국을 단순 비교하기 어렵다"며 "정부는 바이오 업체들의 회계 기준을 강화하되 국내 기업들의 사정에 맞춰서 점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