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대문구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김모씨는 올 초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최대 13만원을 지원해주는 ‘일자리 안정기금’을 신청하려다 당혹스러운 경험을 했다. 아르바이트 직원들이 이를 한사코 사양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일자리 안정기금을 신청하기 위해선 4대 보험을 지급해야 하는데, 직원들이 보험과 세금 대신 현금으로 받기를 원했다”며 “일자리 안정기금이 보험료와 비슷한 규모여서 직원들의 뜻에 따라 신청하지 않았다”고 했다.

정부가 2년간 29%에 달하는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대책으로 내놓은 ‘일자리 안정자금’이 무용지물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지원 대상이 4대보험과 소득세를 내는 근로자로 한정돼 있어 세금을 달가워하지 않는 근로자들마저 이를 기피한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올해 16.4%에 이르는 최저임금 인상을 앞두고 2017년 11월 ‘일자리 안정자금 시행계획’을 발표했다. 시행계획에는 30인 미만 사업장의 근로자에게 1인당 최대 월 13만원의 정부 보조금을 지급하는 내용이 담겼다.

문제는 단기 아르바이트 근로자들이 4대보험 가입을 꺼리는 경우가 많다는 데 있다. 사업주가 일자리 안정자금을 신청하기 위해선 근로자가 고용보험에 가입돼 있어야 한다. ‘정식 고용’을 하는만큼 소득세도 내야 한다. 한푼한푼이 아쉬운 단기 근로자 입장에서 달가울리 없다.

‘전국 편의점 알바생 모임’ 카페에는 4대보험 가입을 기피하는 아르바이트 근로자들의 게시물이 올라와있다.

20일 편의점 아르바이트들이 정보를 교환하는 네이버 ‘전국 편의점 알바생 모임’ 카페에는 4대보험을 기피하는 의견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4대보험을 꼭 가입해야하나요?’ 라는 제목의 게시물 작성자는 "나는 (4대보험을) 넣기 싫은데 점주가 넣어야 된다고 한다"며 "4대보험 넣으면 월급에서 얼마나 빠지느냐"고 묻고 있었다. 월 99만원에서 4대보험을 제하고 94만원을 받았다는 한 회원은 "안 그래도 쥐꼬리만한 알바비에서 다 떼인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아르바이트 근로자들은 두세가지 일을 동시에 하는 경우도 흔하다. 이들은 정식 고용의 형태로 일할 수 없다. 때문에 현금 수령을 선호하기도 한다. “4대보험 없이 일할 수 있는 곳이 있느냐”고 묻는 한 회원의 게시물엔 "GS편의점 두곳에서 투잡을 하고 있는데 4대보험을 안 들었다", "쓰리잡을 하는데 현금 수령한다"는 답변이 달려 있었다.

올해 최저임금은 시간당 7530원으로 주 40시간 근로하면 주휴수당을 포함해 총 157만3770원이다. 식대 10만원을 비과세액으로 제외한 147만3770원을 기준으로 공제액을 계산해봤다. 국민연금(9%, 6만6310원), 건강보험료(6.24%, 4만5980원), 장기요양보험료(건강보험의 7.38%, 3390원), 고용보험료(0.65%, 9570원) 등을 고용주와 절반씩 나눠 내야 한다. 여기에 소득세 8250원과 지방소득세 820원을 추가로 뗀다.

총 13만4320원이 월급에서 공제돼 실수령액은 143만9430원이다. 최대 13만원의 일자리 안정자금은 결국 4대보험과 세금을 고용주에게 보전해주는 제도인 셈이다. 굳이 4대보험 가입을 원하지 않는 근로자 입장에선 이득이 없다.

단기 근로자들에게 4대보험은 시급을 갉아먹는 세금일뿐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해들어 지난 13일까지 일자리 안정자금을 신청한 근로자는 누적 220만4679명이다.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지난 6월 기준 전체 비임금근로자(자영업자+무급가족종사자)는 688만명으로, 일자리 안정자금의 수혜를 받은 근로자는 31.9%에 불과하다. 고용노동부의 발표가 누적 수치임에 미뤄볼 때 실제 수혜 대상 근로자는 이보다 적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각에선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자영업자 타격, 일자리 감소 등 부작용을 세금으로 무마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정부는 당초 올해 한시적으로 시행하기로 했던 일자리 안정자금을 내년까지 연장 시행할 계획이지만, 국회가 3조원에 달하는 지원 규모를 1조원으로 축소할 것을 요구하고 있어 진통이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