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지난 정권에서 미르·K스포츠 재단 출범에 관여하는 등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되면서 현 정권 들어 ‘적폐'로 꼽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우선 국정농단 사태 이후 4대 그룹이 전경련을 탈퇴했습니다. 4대 그룹의 탈퇴는 전경련의 재정에 큰 타격을 가져왔죠. 4대 그룹에서 냈던 회비가 전체 회비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했기 때문입니다. 전경련은 회비 급감으로 재정이 악화하자 직원들을 60% 줄이는 등 큰 폭의 구조조정을 진행했습니다.

4대 그룹이 탈퇴한 후 전경련의 가장 큰 회원사는 롯데그룹입니다. 신동빈 롯데 회장은 전경련 존치를 주장했습니다만, 회비는 내지 않고 있습니다. 신 회장이 국정농단 사건에 휘말려 구속된 상황에서 회비를 냈다가 오해를 받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 입니다. 전경련 재정을 더욱 어렵게하는 일입니다.

또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50층 규모의 전경련회관은 현재 30% 이상 텅텅 비었습니다. 전경련회관에 입주해있던 LG그룹 계열사가 지난해 말부터 마곡 사이언스파크로 대거 이전하면서 현재 무려 22개층이 공실입니다. 엎친 데 덮친 것이죠. 창립이래 가장 큰 위기를 맞은 전경련의 상황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전경련회관의 대규모 공실 사태로 임대료 수입도 급감했습니다.

전경련 CEO 하계포럼이 열린 제주 롯데호텔.

경제단체들 중 전경련의 위상도 떨어졌습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전경련 회장은 경제단체장 자격으로 해외 순방에 동행한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청와대의 각종 경제 행사에도 초청받지 못했습니다. 정경유착의 연결고리 역할을 했다는 눈총을 받으며 전경련을 해체시켜야 한다는 부정적인 여론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습니다.

전경련은 분위기를 쇄신하고 회원사간 단합을 도모하기 위해 18일부터 3박4일간 제주도에서 '2018 전경련 CEO 하계포럼'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CEO 하계포럼은 전경련이 1986년부터 매년 여름에 열고 있는 행사입니다.

유영민 과학기술부장관이 문재인 정부 들어 장관으로는 처음으로 전경련 행사에 참석합니다. 반기문 전 UN 사무총장, 조성범 알리바바클라우드 한국대표, 이해선 코웨이 대표이사, 최두환 포스코ICT 사장의 강연과 가수 설운도의 콘서트도 펼쳐집니다. 이 자리에는 기업과 기관 최고경영진 임원과 가족 400여명이 참석합니다.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

하지만, 경제계 일각에서는 이번 하계포럼 행사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옵니다. 사상 최악의 위기를 맞은 전경련이 하계포럼 행사를 여름 휴가지인 제주에서, 그것도 가장 비싼 호텔로 꼽히는 제주 롯데호텔에서 개최하는 것이 합당한가 하는 지적입니다. 텅빈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개최하면 회원사들 간에 위기감도 공유하고, 국민들에게도 변화하는 노력을 보여줄 수도 있을텐데, 여름철 국내 최대 휴양지인 제주도에서 행사를 하는 것은 결국 전경련이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반증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하계포럼이 그동안 꼭 제주도에서만 열린 것은 아닙니다. 전경련은 하계포럼을 매년 제주에서 진행해오다 2014년~2016년에는 평창동계올림픽 성공을 기원하며 평창으로 옮겨 개최했습니다.
하계포럼 주관은 전경련 국제경영원에서 준비하는데 이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부부 1커플 기준으로 전경련 회원사는 200만원, 전경련국제경영원 회원사는 150만원, 비회원사는 200만원의 참가비를 냅니다.

이벤트 업계 관계자는 "서울 지역 호텔은 여름 성수기에 휴가를 떠나는 사람이 많아 이 시기가 컨퍼런스를 개최하기에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면서 "반대로 제주도는 여름 휴가 시즌이어서 연중 가장 비싸다"고 말했습니다. 전경련 관계자는 "국제경영원은 전경련의 유관기관으로 교육사업을 수익모델로 하는 별도법인"이라며 "회원사 회비를 받아 운영하는 전경련과 재무회계도 별도로 운영되고 있다"고 해명했습니다.

전경련은 지난 10일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와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교수를 초청해 '기업과 혁신생태계'를 주제로 특별대담을 개최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장하준 교수는 “전경련이 어떻게 변화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고, 반성을 할 때에는 왜 이렇게 잘못됐는지, 구체적으로 무엇을 잘못했는지 처절하게 분석해야 한다"며 "잘못을 철저히 분석해 보고서를 만들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현재의 전경련처럼 잘못했다고 사과를 하고서도, 뭘 잘못했는지 모르고 해결책도 없으면 안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전경련은 어떻게 변화해야할지 고민만 할 것이 아니라 이제는 행동으로 자신의 역할을 찾아야만 합니다. 그래야 장기화된 '전경련 패싱'을 극복하고 과거의 위상을 회복할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