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문제는 언제나 어렵다. 깎아준다 하면 군소리가 없지만, 더 내라는 경우에는 목에 핏대를 세우고 반대 목소리를 높인다. 필요한 데 쓰는 세금이라는 것을 알더라도 정작 내 주머니에서 돈이 빠져나가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도대체 내가 낸 세금을 어디에 쓰는지 모르겠다”는 말도 빠지지 않는다.

그런데 증세를 하면 모두가 싫어하기만 할까?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담뱃세를 올린다고 했을 때 비흡연자 중에서는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이 상당수였다. 지난해 정부가 시행한 부자 증세를 놓고서도 박수를 치는 사람이 꽤 됐다. 정부가 소득세와 법인세의 명목세율 인상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했다가 갑자기 말을 바꾼 상황이었는데도 말이다. 제대로 된 절차를 거쳤는지 명분이 정당한지는 별로 중요치 않은 듯 보였다.

조세라는 것이 이렇게 사안에 따라 국민감정이 요동을 치는 사안이다 보니 정책 자체가 혼선을 빚은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 세제개편을 하면서 청와대 경제수석이 거위의 깃털을 뽑듯 아픔을 느끼지 않게 하려는 취지였다는 발언을 했다가 연말정산 파동으로까지 이어진 것이 그런 예다. 이럴 때는 보수와 진보가 따로 놀지 않는다. 결국 당위성도 중요하고 상황논리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수사(修辭)’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올해 뜨거운 이슈로 떠오른 조세정책은 단연 부동산 관련 세제다. 부동산과 관련한 대표적인 세금은 집을 살 때 내는 취득세와 보유하는 동안 내는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 팔 때 이익이 났다면 거기에 대해 내는 양도소득세 등 3가지가 대표적이다.

서울을 비롯한 일부 지역의 부동산 값이 크게 오르면서 정부는 지난해 다주택자의 양도세를 강화하는 방안을 내놨고, 올해 4월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이 조처로 상당수 다주택자가 4월이 되기 전에 집을 팔거나 임대주택사업자로 등록을 했다. 등록된 임대주택은 여러 세금을 깎아주는 대신 임대 조건이 세입자에 유리해져 공공성이 강화된다. 어느 정도 효과도 봤다.

최근엔 보유세의 하나인 종부세를 강화하는 방안도 정했다. 주택을 여러 채 보유할 유인을 줄이고 불평등을 완화하는 역할을 기대한 조처다. 이명박 정부가 완화한 세율을 참여정부 수준으로 되돌리지 못했다고 진보 진영조차 비판했지만, 이 카드 역시 정부 고위 관계자들의 입에서 나올 때마다 부동산 시장을 진정시키는 역할을 분명히 했다.

이 과정에서 정부가 세제를 동원해 부동산 시장을 진정시키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반면 주거안정 역시 정부가 달성해야 하는 중요한 목표라는 것이 분명하기에 동의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 결국 고통받는 것은 서민이고, 자산 양극화가 심화하는 것이 경제를 심하게 왜곡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일리 있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 두 가지 세금과 맞물려 움직여야 하는 나머지 두 가지 세금에 대해서는 아무 말이 없는 것은 문제다. 바로 취득세와 재산세인데, 취득세는 줄이고 재산세는 늘리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한국은 선진국 평균보다 보유세 비중은 작고 거래세 비중은 크다. 이 두 세금을 ‘정상화’하는 것이 부동산 세제의 기본을 고치는 데 더 핵심이지 않나 싶다.

종부세 개편안을 준비한 재정개혁특별위원회에 따르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보유세 비중은 0.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1%에 한참 못 미친다. 미국은 이 비중이 3.1%나 된다. 기획재정부가 내놓은 자료를 봐도 부동산 자산총액 대비 보유세 비중은 OECD 13개국 평균이 0.33%인데 한국은 그 절반인 0.16%에 불과하다.

노동이나 자본과 달리 공급이 상대적으로 고정된 부동산을 보유하는데 들어가는 세금은 여러 세목 중 가장 성장 친화적인 조세라는 평가를 받는 만큼 지금보다 높일 여력이 있어 보인다.

다만 보유세 문제는 종부세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종부세로 걷을 수 있는 금액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다수가 내는 재산세 증세가 뒤따라야 한다. 특히 복지 지출을 크게 늘린 정부 입장에서도 세수 확충이 필요한 상황이라 재산세 개편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대다수 서민이 싫어할 것이 분명한 세금이다 보니, 정부나 여당이 쉽게 이야기를 꺼내지 못한다. 한국의 주택 소유 현황을 보면 2016년 기준 1937만 가구 중 절반이 넘는1074만 가구(55.5%)가 주택을 소유하고 있다 보니, 재산세 인상은 곧 선거 표의 절반 이상 떨어져 나갈 수 있다는 것을 감내해야 할 리스크에 다름 없어서다.

취득세가 지나치게 높다는 것은 재정개혁특위도 인지한 사실이다. 보유세 대비 거래세 비중을 보면 OECD 평균치가 0.36에 그치는 데 비해 한국은 2.5로 상당히 높다. 취득세는 어렵게 내 집 마련에 나서거나 이사를 해야 하는 1주택자에게는 큰 부담인 세금이지만, 정부 입장에서는 가만히 앉아서 세금 걷기에 딱 좋은 세목이다. 이걸 줄인다면 다른 곳에서 더 걷어야 하는데 뾰족한 대안도 없다.

어느덧 집권 2년차다. 부동산 세제에 대한 전반적인 개편은 올해 세법개정안에도 못 담았으니 발 빠르게 준비해 내년에 담는다 한들 2020년에나 실현 가능한 얘기다. 지금부터 솔직하게 터놓고 논의하지 않는다면 문재인 정부 임기 중엔 불가능한 일이다. 임기 말에 이런 증세를 시도하는 정권은 없다. 하려면 당장 해야 한다.

인기가 없는, 다시 말해 표가 떨어질 수도 있는 정책을 왜 하지 않느냐고 다그치는 말로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근본적인 개편은 뒤로 한 채 시장 대응에만 세제를 활용하는 지금의 상황이 계속되면, 부동산 정책이 아닌 부동산 정치를 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세제 개편은 집값 잡기의 수단도 아니고 증세의 명분도 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