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가 하나도 안 남았나요?"(고객 K씨)

"물량이 얼마 없다 보니 순식간에 동났네요."(은행 PB)

KB국민은행이 지난 2일 내놓은 아산 SG아름다운 골프장 부동산 펀드는 60억원어치가 순식간에 팔렸다. 골프장을 담보로 잡고, 골퍼들이 내는 라운드 비용 등에서 나오는 수익을 투자자들에게 연 4%대 배당으로 돌려주는 구조다.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퍼블릭 골프장이어서 회원권 가격 등락 리스크가 있는 멤버십 골프장에 비해 안정적이라는 것이 매력 포인트로 꼽혔다. 이민황 국민은행 WM상품부장은 "골프를 즐기는 큰손들이 골프장 입지 등을 듣고선 그 자리에서 수억원씩 투자했다"면서 "보유세나 세무조사 등 정책 변수가 많은 부동산보다는 부동산 펀드가 낫다고 판단하는 자산가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아파트 대신 부동산 펀드나 리츠 같은 간접투자 상품에 눈 돌리는 투자자가 늘고 있다. 사진은 오는 25~27일 공모 예정인 ‘신한알파리츠’의 투자 대상인 판교 알파돔시티 빌딩 6-4구역. 게임 ‘배틀그라운드’로 유명한 블루홀, 네이버 자회사 스노우, 무인양품 등이 임차인이다.

아파트 투자를 고집해 왔던 큰손들이 규제 강화라는 흐름에 맞춰 아파트 대신 부동산 펀드로 포트폴리오를 조정하기 시작했다. 부동산 펀드란 빌딩·호텔, 유통·물류 시설 등에 투자한 뒤 임대료나 매매 차익 등으로 거둔 수익을 투자자에게 돌려주는 상품을 말한다. 아파트는 최근 2~3년 새 가격이 급등해 추가 상승 가능성이 낮아진 데다 무거운 세금과 세무조사 등의 우려가 커지고 있어 인기가 한풀 꺾였다. 금융회사들도 달라지는 투자 트렌드에 맞춰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KB국민은행은 올해 부동산 펀드 판매 목표치를 3300억원대로, 작년 대비 65% 높여 잡았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상반기(1~6월)에만 부동산 펀드를 1600억원어치 판매했고, 최근 정부의 세제 개편안 발표 전후로 관심이 더 높아지고 있어 올해 목표는 무난히 달성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수요 몰리며 완판(完販) 행진

요즘 금융업계에선 연이은 부동산 펀드 완판 행진에 혀를 내두른다. 지난 6월 말 기준 부동산 펀드 규모(순자산 총액)는 약 68조원으로, 3년 만에 두 배로 커졌다. 수요는 부쩍 늘었지만 물량은 부족해 품귀 현상까지 빚어지고 있다. 업계에선 'BTS(방탄소년단) 콘서트 티켓보다 구하기 어렵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온다.

서울 강북의 건대 CGV 건물에 투자하는 부동산 펀드는 지난달 시장에 나오자마자 208억원어치가 단숨에 팔려나갔다. 서울 핵심 상권에 위치해 있고, 대기업 계열사인 CJ CGV가 15년 장기 계약을 해서 공실(空室) 우려가 낮다는 것이 인기 요인이었다.

우량 물건을 구하기가 어려워지자, 거액 자산가가 몰려 있는 PB센터에선 자체적으로 물건을 제작해 판매하기도 한다. 하나은행 클럽원이 이달 말 내놓을 예정인 부동산 펀드는 해당 지점 고객의 11층짜리 수도권 빌딩이 투자 대상이다. 고객이 은행 측에 건물 매각을 의뢰했는데, 은행이 이를 부동산 펀드로 만들어 다시 같은 지점 고객들에게 판매하기로 했다. 하나은행의 이재철 클럽원 센터장은 "은행이 자체적으로 발굴해 상품화했기 때문에 고객이 챙기는 수익이 연 7%대까지 올라간다"면서 "출시 전인데도 60억원어치 선주문을 받아 예약 마감됐고, 대기자만 받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3년 만에 덩치 더블 된 부동산 펀드

강남에 사는 은퇴 생활자 김모씨는 올 초 수도권 상가를 처분한 현금 중 일부를 부동산 펀드에 가입했다. 김씨는 "부동산을 사서 이자와 세금 내고 세입자 관리하느라 스트레스 받느니 차라리 부동산 펀드에 가입해 연 5~6% 정도씩 마음 편하게 이자로 돌려받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국민은행 KB스타자문단 김현섭 팀장은 "은퇴자들에겐 안정적인 수익이 나오는 부동산 펀드 가입이 나쁘지 않지만, 은행 예금처럼 원금이 보장되진 않으니 전체 자산의 10~20% 투자가 적당하다"고 조언했다. 부동산 펀드는 중도 해지가 어려워 환금성이 떨어지며, 만기 시점에 건물이 팔리지 않으면 자금 상환도 연기될 수 있다. 소액 투자자는 공모형 부동산 펀드에 투자하면 된다. 하지만 특정 금융사에서만 팔고, 정기적으로 파는 것도 아니어서 정보 구하기가 만만치 않다. 이럴 땐 리츠(REITs·부동산투자신탁)가 대안이 될 수 있다. 리츠는 부동산 펀드처럼 오피스나 상가 등에 투자하지만, 주식시장에 상장해 소액(통상 5000원)으로 매매할 수 있고 주주 구성을 다양하게 분산해야 하며 공모(公募) 의무가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

정부는 시중 자금을 리츠로 흡수해 부동산 시장을 안정화한다며 리츠 관련 규제를 풀고 있다. 신한지주가 금융지주사 중에선 지난해 첫 리츠 회사를 세웠고, 이달 25~27일 판교 알파돔시티에 투자하는 리츠 공모(연 7% 예상)에 나선다. 박우철 신한리츠운용 이사는 "지난해 우리나라 리츠의 평균 배당률은 가격상승분을 포함해 7.6%에 달했다"고 말했다. 물론 리츠도 투자 상품이기 때문에 시장 상황이 나빠지면 주가가 빠져 원금 손실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