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차 브랜드 파격 할인 공세
국산차 판매 질도 나빠져

지난 4월 현대차 그랜저 구매를 준비하던 직장인 A씨는 폴크스바겐 매장을 갔다가 생각을 바꿨다. 파사트 GT 가격을 최고 1000만원까지 할인하고, 보증 수리 기간도 2년 연장해 판매하고 있어, 그랜저를 꼭 사야할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A씨는 결국 파사트 GT를 계약했다.

국내 수입차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3000만원대 수입차가 크게 늘면서 수입차 진입 장벽이 낮아졌고, 다양한 신차 출시로 소비자 선택의 폭이 넓어졌기 때문이다. 또 수입차 브랜드들이 서비스센터를 확장하는 등 국내 투자를 늘리면서 국산차의 최대 강점인 애프터서비스에 대한 격차도 많이 줄였다.

자동차업계 전문가들은 “수입차가 부유층의 전유물이 아닌, 누구든 삶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소비할 수 있게 됐다”며 “수입차의 대중화는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 올해 시장 점유율 16% 돌파 예상...판매량 급증

올해 상반기 수입차 업체는 국내에서 총 14만109대를 팔았다. 전체 자동차시장 중 지난해 같은 기간 13.2%였던 수입차 점유율은 올해 15.6%까지 증가했다. 수입차 업계는 올해 국내 수입차 판매량이 역대 최대인 25만6000대, 점유율 16%를 기록할 것으로 보고 있다.

파사트 GT.

올해 수입차 판매가 사상 최대를 예상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우디·폴크스바겐의 판매 재개다. 아우디와 폴크스바겐은 2015년까지는 연간 판매량이 3만 대를 넘어서며 수입차 중 판매 순위가 3~4위였다. 하지만 판매 중지로 인해 작년 폴크스바겐은 국내에서 한 대도 팔지 못했다. 아우디도 962대에 불과했다.

수입차 업체들이 소형차를 잇달아 내놓으며 2000만~3000만원대 시장을 꾸준히 공략하고 있는 것도 수입차 대중화에 한몫을 하고 있다. 수입차의 소형차 바람은 독일 고급 브랜드까지 번져 있다. 이들은 그동안 고가의 중·대형차에 집중했지만, 최근에는 소형차 시장을 통해 외연을 넓히고 있다. 메르세데스-벤츠와 BMW, 아우디 같은 고급 브랜드를 3000만원대에 손에 넣을 기회가 생긴 것이다.

서비스센터와 전시장을 공격적으로 확대하는 것도 판매량 급증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실제 메르세데스-벤츠는 상반기에만 4곳의 전시장 및 서비스센터를 열었다. 1월 구리를 시작으로 부천, 창원, 6월 말 대구 서구통합 전시장까지 연이어 오픈했다. 볼보도 상반기에만 전시장과 서비스센터를 4곳 늘렸다. 캐딜락은 올 상반기 분당판교 전시장과 서울 강서 마곡전시장을 새로 오픈하면서 강남을 넘어 서남쪽으로 판매영토를 넓혔다.

메르세데스-벤츠 E클래스

수입차 업계 한 관계자는“국산차 브랜드 가치가 수입차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에서 가격 격차가 줄다 보니 수입차를 막아내지 못하고 있다”면서 “디자인과 성능에서 획기적인 차별화를 이루지 못하면 앞으로도 상당기간 수입차의 성장은 이어질 것 같다”

◇ 쪼그라드는 완성차업계...한국GM·르노삼성 위기감 커져

현대·기아차, 쌍용차, 한국GM, 르노삼성 등 국내 완성차 5개사의 올 상반기 국내 총 판매량은 75만7003대로, 지난해보다 2.91% 줄어들었다. 특히 한국GM과 르노삼성의 경우 위기감이 더 크다. 한국GM은 한국 시장 철수설이 불거지면서 판매량이 급감했고, 르노삼성도 마땅한 신차가 없어 판매량이 줄어들고 있다. 실제 수입차 판매 1위인 벤츠는 같은 기간 지난해보다 8.9% 늘어난 4만1069대를 팔았다. 이는 르노삼성의 판매량(4만920대)보다 많고, 한국GM(4만2497대)도 위협하는 수준이다.

말리부.

판매의 질도 점점 나빠지고 있다. 이익이 많이 남는 고급·대형차는 점점 수입차에 빼앗기고 큰돈이 안 남는 경차·소형차 시장만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한국GM은 지난달 내수 시장에 총 9529대를 판매했다. 이 가운데 경차 뉴 스파크 판매가 3850대를 기록했다. 수입해 판매하는 전기차 볼트EV는 총 1621대가 팔렸다. 반면 주력 세단인 말리부는 1045대 팔리는데 그쳤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국산차업계가 대립적 노사관계로 인해 고비용· 저효율 생산구조가 심화하고 있는 데다 국산차 판매 3~4위권 업체의 내수 판매는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며 “현대·기아차를 제외한 다른 완성차 업체는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고, 브랜드 인지도를 끌어올리지 못하면 내수 점유율 하락을 피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