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영업익 신기록 행진 중단…현대차는 반 토막
AI 반도체·빅데이터 경쟁 치열한데 한국은 규제에 발목

국내 대표기업인 삼성전자(005930)는 올해 2분기에 영업이익 14조8000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4월부터 6월까지 매일 약 1626억원, 매시간 약 68억원을 벌어야 달성할 수 있는 엄청난 숫자다. 그럼에도 업계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2016년 4분기부터 올해 1분기까지 6분기 연속 기록했던 영업이익 신기록 행진이 멈췄기 때문이다. 2분기 영업이익은 올해 1분기(15조6400억원)보다 5.37% 감소했다.

현대자동차는 작년 1분기 1조2507억원이었던 영업이익이 올해 1분기 6813억원으로 거의 반토막이 났다. 사드 보복 후폭풍으로 중국 판매량이 여전히 과거보다 낮은 수준이고 내수 시장은 수입차가 잠식하고 있는 탓이다. 경쟁업체와 비교해 비용은 비싼데, 생산성이 낮은 구조도 문제다.

휴대전화, 디스플레이, 자동차 등 한국의 주력산업이 더이상 과거와 같은 성장세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17개월간 전년동월대비 증가세를 이어가던 수출은 올해 4월 감소세로 돌아섰다. 5월에 반등했지만, 6월엔 다시 줄었다. 주력산업이 주춤거리고 있지만, 이를 대체할 미래산업에서도 한국은 잘 보이지 않는다.

경기도 평택항에서 선적을 기다리는 자동차들.

◇ 디스플레이·자동차·조선 비틀…반도체만 유일한 버팀목

LG디스플레이(034220)는 올해 1분기 983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2012년 이후 6년 만이다. LG디스플레이가 작년 1분기 사상 최대 영업이익(1조268억원)에서 1년 만에 적자로 돌아선 이유는 전체 이익의 약 90%를 차지하는 액정표시장치(LCD) 부문의 수익성이 중국·대만 업체들의 물량 공세로 나빠졌기 때문이다.

한국은 1990년대 중반부터 세계 디스플레이 시장을 장악해왔다. 한국 업체들은 LCD에서 OLED(유기발광다이오드)로 주력 제품을 바꾸려고 하는데, OLED는 수율(收率·실제로 얻어진 분량과 이론상으로 기대했던 분량의 비율)부진, 낮은 생산성, 감가상각비 등으로 채산성을 채 확보하지 못했다. LCD에서 OLED로 주력 제품을 교체하지 못한 사이 중국과 대만 업체에 발목을 잡힌 것이다. 글로벌 산업 분석기관 IHS마킷에 따르면 55인치 UHD급 패널 가격은 작년 6월 212달러에서 올해 6월 152달러로 28.3% 감소했다.

국내 조선사들도 중국과 싱가포르 업체와의 경쟁에서 고전하고 있다.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010140)은 지난 4월 영국 석유화학 기업 BP가 발주한 토르투(Tortue) 가스전 개발 사업을 프랑스·중국 컨소시엄에 뺏겼다. 이 사업은 규모가 1조원대에 달한다. 한국 업체들은 작년에 노르웨이의 스타토일이 발주한 북해 FPSO(Floating Production Storage Offloading·부유식 원유 생산 저장 하역설비) 수주전에서도 가격을 앞세운 싱가포르의 셈코프(Sembcorp)에 밀렸다.

국내 조선사는 기술력에서는 세계 최고라는 평가를 받지만, 가격 경쟁력에서 밀리고 있다. 싱가포르는 동남아시아의 값싼 노동력을 활용해 인건비를 낮춘다. 강환구 현대중공업 사장은 BP의 토르투 사업을 뺏긴 뒤 “아직까지는 해양 구조물을 중국 야드에서 제작할 수 없다는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고 발주처는 제작비가 싼 중국업체를 선택했다”고 아쉬워했다.

현재 한국경제의 유일한 버팀목은 반도체다. 삼성전자가 올해 2분기에 갤럭시 S9 판매 부진 등의 영향으로 IM(IT·모바일) 부문의 영업이익이 감소해 신기록 행진을 멈췄지만, 반도체의 성장세는 이어졌다. 삼성전자는 올해 1분기 반도체로만 11조6000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뒀는데 2분기 반도체 부문 영업이익은 12조원으로 추정된다. 2분기 반도체 부문 영업이익률은 56.3%로 예상돼 1분기(55.6%)보다 더 좋을 전망이다. SK하이닉스(000660)의 2분기 영업이익 전망치는 5조2673억원으로 사상 첫 분기 영업이익 5조원이 예상된다.

한국경제의 반도체 쏠림이 심화되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반도체 호황이 곧 끝날 수 있다는 경고의 목소리가 나온다.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등 새로운 반도체 시장이 열리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스마트폰이 성장 정체기에 접어들었고 PC 시장이 줄고 있는 점은 부담이다. 또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이 공격적으로 설비를 증설해 공급 부족이 곧 해소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2019년부터는 메모리 반도체 공급이 수요를 뛰어넘을 것으로 예상했다.

전 세계 IT 기업들이 자율주행차, AI 반도체 등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한국은 규제가 많아 이들과의 경쟁에서 밀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 미래산업 경쟁에서 미·중에 뒤처지는 한국

주력산업에서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의 거센 추격을 받는 한국은 미래산업 경쟁에서는 미국, 중국 등 경쟁국에 뒤지고 있다. 인텔, 구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등 미국의 공룡 IT 기업들은 현재 AI 반도체 시장을 잡기 위해 경쟁을 벌이고 있다. AI 반도체는 정보를 입력한 순서대로 빨리 계산하는 기존 중앙처리장치(CPU)와 달리, 이미지나 음성 등 많은 연산을 동시에 처리하는 게 특징이다.

AI 반도체는 자율주행차, 드론, 수술 로봇 등에 들어가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JP모건에 따르면 지난해 40억달러(약 4조5000억원) 수준이었던 AI 반도체 시장은 2022년에 300억달러(약 33조8000억원) 이상으로 커질 전망이다. AI 반도체 시장엔 미국 업체 외에 하이실리콘, 캠브리콘, 호라이즌 로보틱스, 디파이 등 중국 업체들도 뛰어든 상태다. 한국에선 삼성전자가 거의 유일하게 AI 반도체 경쟁에 뛰어들었는데, 미국이나 중국보다 기술 격차가 최소 1년 이상 벌어진 것으로 업계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김용균 정보통신기술진흥센터 수석은 “AI 반도체는 지능을 학습하고 활용하는 도구여서 기업과 국가의 경쟁력을 좌우할 수 있는 전략 기술이다. AI 반도체 기술 자립을 이루지 못하면 한 수 아래라고 생각했던 중국 기업으로부터 수입해 써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될 수도 있다”고 했다.

빅데이터 활용과 빅데이터 인프라인 클라우드(가상 저장공간) 서비스에서도 한국은 뒤처져 있다. 중국의 마윈(馬雲) 알리바바 회장은 “빅데이터가 21세기의 원유가 될 것”이라며 데이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알리바바는 빅데이터를 활용해 소비자 구매 성향, 트렌드 등을 파악하고 금융, 유통 등으로 서비스 범위를 확대했다. 알리바바의 금융 자회사 앤트파이낸셜은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소비 패턴 등을 분석한다.

반면 한국은 개인정보보호법, 신용정보법 등에 막혀 관련 산업이 거의 발전하지 못했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는 작년 11월 정부 방침에 따라 빅데이터 사업을 시작한 한국인터넷진흥원 등 4개 기관과 현대차, SK텔레콤 등 20개 기업을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기도 했다. 스위스 국제경영대학원(IMD)이 발표한 ‘빅데이터 사용 및 활용 능력’ 순위에서 한국은 63개 나라 중 56위를 기록해 터키, 브라질, 멕시코보다도 순위가 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