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350만 소상공인들이 '최저임금 불복종 투쟁'에 나선다. 오는 14일 열리는 최저임금위원회에서 결정되는 최저임금 인상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의미다. 소상공인들이 요구해왔던 최저임금 업종별 차등화가 무산되자 집단 반발에 나선 것이다.

최저임금위원회는 지난 10일 업종별 차등 적용안을 표결에 부쳐 14대9로 부결시켰다. 정부가 선정한 공익 위원들은 중립적인 입장에서 노사 양측을 중재해야 하지만 모두 노동계 손을 들어준 것으로 알려졌다. 표결에 앞서 최저임금위원회 사용자 위원들과 중소기업중앙회·대한상의 등 경제 6단체가 연달아 차등화를 요구하는 공동 성명까지 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소상공인연합회 긴급회의 - 11일 저녁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 소상공인연합회에서 열린 최저임금 대책 긴급회의에서 최승재(맨 왼쪽) 소상공인연합회 회장을 비롯한 간부들이 최저임금 업종별 차등화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은 데 대한 대응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사용자 위원은 최저임금위원회 불참을 선언했고, 소상공인연합회는 11일 저녁 긴급회의 끝에 최저임금 불복종이라는 초강수를 던졌다.

최승재 소상공인연합회 회장은 이날 저녁 연합회 노동분과위원회 긴급회의를 가진 뒤 "이번 표결 결과는 한계 상황에 다다른 소상공인들을 배려하지 않겠다는 정부의 뜻이 드러난 것"이라며 "전국 소상공인들은 최저임금 모라토리엄(불이행) 선언 등 생존을 위한 불복종 투쟁을 전개해나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정부와 노동계가 짜고 친다" "정부가 소상공인들을 모조리 범법자로 몰고 있다"는 등 격앙된 반응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최저임금委, 사용자 위원 보이콧에 파행 - 11일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에서 한 근로자 위원이 얼굴을 감싸고 있다. 사용자 위원 9명 전원은 전날 업종별 최저임금 차등화가 부결된 것에 항의해 회의에 불참했다. 불참한 사용자 위원들의 자리가 비어 있다.

소상공인연합회는 12일 기자회견에서 불복종 투쟁을 공식화하고 조만간 이사회를 개최해 구체적인 행동 방침을 정할 계획이다.

최 회장은 "아무리 우리가 어렵다고 호소해도 듣지 않는다면 행동으로 보여줄 수밖에 없다"면서 "업종별로 구체적인 불복종 방안을 마련하고 국민청원 운동도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불복종 투쟁 방안으로는 편의점 업계가 심야 시간에 제품 가격을 더 높게 받는 심야 할증과 야간 영업 중단 등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소상공인은 직원 5명 미만인 서비스업이나 10명 미만의 제조업 등 영세 자영업자를 뜻한다. 소상공인연합회에는 메이크업미용사회, 부동산사업협동조합, 제과협회, 미용사회, 수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 주유소협회, 안경사협회 등 70여 개 협회·조합이 소속돼 있다.

중소기업연구원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소상공인 한 곳당 영업이익은 월 209만원으로 월평균 329만원의 소득을 올리는 임금 근로자의 63% 수준에 그쳤다. 여기에 올해 최저임금이 지난해보다 16.4% 급등하면서 전국 소상공인들은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 전국 숙박·음식·소매업 등 8대 업종의 폐업률(2.5%)이 창업률(2.1%)을 앞지른 데 이어 올 1분기 자영업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2.3% 급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법정 최저임금이 올라도 이를 제대로 주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최저임금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올해 최저임금 이하로 받고 있는 소상공인 업체 근로자는 116만7000명으로 전체의 26.7%에 이른다. 소상공인연합회 관계자는 "2020년 최저임금 1만원 달성을 위해 내년에도 15%가량 최저임금을 인상할 경우, 소상공인 근로자 55.4%가 최저임금을 제대로 못 받게 된다"면서 "결국 수많은 소상공인을 범법자로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소상공인들은 지난 5월 국회가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보완책으로 최저임금에 상여금과 복리후생비를 포함하게 한 것도 영세 소상공인에게는 도움이 안 된다고 주장한다. 5인 미만 소상공인의 경우 상여금을 지급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 데다 식비 등 복리후생비도 미미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소상공인들이 실력 행사를 통해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소상공인 업계의 조직력이 노동계처럼 탄탄하지 않은 데다 하루 벌이가 아쉬운 영세 자영업자들이 매출을 포기하고 집회에 참석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한 소상공인 업계 관계자는 "소상공인들은 헌법에 보장된 생존권을 스스로 지킬 수 있는 수단도 별로 없는 게 현실"이라며 "지금처럼 노동계에 일방적으로 밀리면 그대로 고사(枯死)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