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모바일 중심으로 소비 생활이 변하며 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이 고전하고 있다. 정부의 출점 규제에 인건비 상승까지 겹치면서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 반면 일본 유통업계는 전자상거래에 따른 고객 이탈을 막기 위해 산업간 경계를 허물고 소비자 밀착형 서비스 회사로 변신했다. 소비자가 브랜드를 믿고 따르도록 해 단순 고객이 아닌 ‘팬’으로 만드는 것이다. 팬이 된 고객은 필요한 것을 사기 위해 매장을 찾는 것이 아니라 기분 전환을 하거나 특별한 목적 없이 매장에 들른다. 이렇게 늘어난 팬들은 유통 회사의 수익성을 보장한다. 일본 유통업계의 사례를 통해 국내 유통산업이 나아갈 방향을 알아본다.

지난 6일 오후 2시, 일본 후쿠오카 모모치 해변 인근에 위치한 프리미엄 슈퍼마켓 본라파스(ボンラパス) 백도(百道)점과 사토 신선관. 모모치 해변 지역은 후쿠오카 내에서도 부유한 곳으로 꼽힌다. 이들 두 매장은 품질 좋은 신선식품을 무기로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본의 프리미엄 슈퍼마켓 본라파스 트레조. 건강에 관심이 많은 일본인을 타깃으로 고품질·고가격 정책을 운영하고 있다. 신선식품을 강화한 것이 특징.

특히 본라파스는 프랑스 파리의 고급 식료품 매장을 본떠 만든 도시형 푸드마켓으로 고품질·고가격 정책을 운영하고 있다. 2016년 9월 일본 대형 슈퍼마켓 체인인 할로데이(Hallo day)가 인수한 후 한층 고급화된 본라파스 트레조(Trezo)를 추가 출점하는 등 성장세를 확대하고 있다.

신선함을 강조하기 위해 방울토마토의 줄기까지 넣어 포장했다. 건강에 관심이 많은 일본인을 위해 소비자 밀착형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이 매장은 포장용품과 인테리어에 심혈을 기울였다. 소고기·생선 등을 포장하는 투명 랩은 기존 제품보다 2~3배 비싸다. 시각적으로 식욕을 높이는 색감을 연출하기 위해서다. 등급 매기는 것을 좋아하고 건강에 관심이 많은 일본인의 특성에 맞춰 고기·생선·과일 등 신선식품 코너에 많은 공을 들였다.

포장과 품질에 공을 들인 본라파스 포도. 12알에 1620엔(약 1만6400원, 세금포함)에 판매된다.

본라파스와 사토 신선관을 비롯해 일본 슈퍼마켓에서 판매되는 생선은 공통점이 있다. 가시가 없다는 점이다. 생선을 통째로 파는 국내 슈퍼마켓 신석식품 코너와는 다른 광경이다.

국내 대형마트나 슈퍼에선 생선을 토막으로 잘라 판매하더라도 가시를 제거해 파는 세심한 배려는 없다. 생선구이를 먹을때 가시가 목으로 넘어가 따가웠던 경험도 종종 있다.

일본에선 생선의 가시를 제거한 후 구이 및 조림 요리용으로 토막으로 자른 제품이 기존 시장에서 주류가 됐다. 예전에는 어종이 한정돼 있었지만, 최근에는 손질뿐 아니라 조리가 돼 있어, 데우기만 하면 되는 제품이 다양하게 출시되고 있다. 시중에 판매되는 어종도 약 50 종류에 이를 정도로 많다.

일본 주부의 기피대상이었던 생선은 가시를 제거한 손질제품이 나오면서 수요가 커졌다. 후쿠오카의 24시간 슈퍼마켓 ‘써니’의 생선코너

생선은 손질이 어려워 한때 일본 주부들에 기피대상 1호였다. 하지만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다양한 제품이 시중에 나오면서 손질된 생선에 대한 수요가 커졌다. 이는 일본에서 최근 맞벌이 가구가 증가하면서 편리함을 추구하는 소비가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기준 일본 맞벌이 세대 수는 총 1188만 세대로 10년 전보다 17% 증가했다.

일본에선 메뉴별로 손질된 식재료를 택배로 보내주는 ‘밀키트’가 2017년 히트상품 4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시간절약·간편함이 맞벌이 부부를 위한 주요 키워드로 부상한 것이다.

갈수록 심화되는 고령화 역시 손질과 조리가 간편한 식품에 대한 수요를 끌어올리고 있다. 작년 9월말 기준 일본 65세 이상 노인은 전체의 약 28%인 3514만명에 달한다. 국민 4명 중 1명 이상이 65세가 넘은 노인인 셈이다.

후쿠오카의 프리미엄 슈퍼 본라파스 생선코너. 가시를 뺀 상태에서 판매된다.

가시 없는 생선과 함께 ‘샐러드 치킨’이 반찬 시장의 주력상품으로 급부상 한 것도 같은 이유다. 닭의 뼈를 제거하고 닭가슴살을 가열해 반찬으로 바로 먹을 수 있도록 했다.

최초로 시장에 판매됐을 때는 이름 그대로 샐러드 재료 용도로만 판매됐다. 현재는 스프에 넣어서 끓이기만 하면 삼계탕이 되는 제품, 허브와 카레 맛으로 양념한 제품, 일본식 냉면에 곁들여 넣는 제품 등 다양한 제품으로 진화됐다.

건강을 챙기면서도 간편하게 먹을 수 있다는 장점이 일본 맞벌이 부부·노인층의 니즈와 맞아 떨어진 결과다.

또 샐러드 치킨은 ‘길트프리(ギルトフリー)’의 대명사로 인식되면서 2030세대에도 인기를 얻었다. 길트프리는 죄책감을 의미하는 ‘길트(guilt)’와 ‘없다(free)’를 결합시킨 일본 신조어다. 칼로리가 비교적 낮아 야식으로 먹어도 죄책감을 덜 느끼게 하는 음식이라는 의미다.

본라파스에서 판매중인 다양한 종류의 샐러드 치킨. 약 2800원에 판매되고 있다. 건강을 챙기는 노인층과 여성들에게 인기가 높아 주력 반찬으로 급부상했다.

샐러드 치킨을 최초로 상품화한 일본 동북지방 이와테현(岩手県)의 양계 및 닭고기 가공 전문 기업 ‘아마타케’는 매년 1100만개 이상의 샐러드 치킨을 판매하고 있다. 샐러드 치킨 인기에 아마타케의 지난해 매출액은 2014년보다 두 배 이상 급증했다.

샐러드 치킨이 일본 트렌드로 자리잡은 것은 일본 3대 편의점이 샐러드치킨을 주력 제품의 하나로 보고 다양한 제품을 내놓은 것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러한 분위기는 일본 슈퍼로도 이어져 슈퍼마켓에서도 다양한 종류의 샐러드 치킨을 판매 중이다.

일본 최대 편의점 체인인 세븐일레븐은 2013년에 최초로 샐러드 치킨을 내놓은 이후 연평균 20% 이상의 폭으로 판매량을 늘리며 누적판매 수 1억8000만개를 기록했다.

일본 1위 편의점 세븐일레븐에서 판매되는 다양한 종류의 샐러드치킨. 스프에 넣어서 끓이기만 하면 삼계탕이 되는 제품, 허브와 카레 맛으로 양념한 제품, 일본식 냉면에 곁들여 넣는 제품 등 다양한 제품이 판매되고 있다.

로손은 자체브랜드(PB) 제품으로 가장 일반적인 샐러드 치킨 제품을 출시한 이후 현재 7종류의 PB제품을 출시했다. 샐러드 치킨의 주요 타깃인 여성과 건강에 대한 관심도가 높은 노인층을 의식해 바질·레몬 등의 조미료로 맛을 낸 제품을 주로 판매한다.

뿐만 아니다. 일본 유통사들은 고령층을 타깃으로 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일본 1위 유통기업 이온리테일은 노인에 초점을 맞춘 대형마트 G.G.(grand generation, 고령자층을 지칭)몰 이온스타일을 운영 중이다.

개점 시간은 오전 7시. 일반 마트(9~10시)보다 빠르다. 노인들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데 갈 곳이 없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마트 내에서 라디오체조(한국의 국민체조)와 건강 상담 등 각종 이벤트를 연다. 체조 후 카페에서 가벼운 아침을 먹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김창주 리츠메이칸대 교수는 “일본 소비자는 간편성·즉시성 등 편의성 추구는 물론, 최근에는 건강지향 상품에 대한 요구까지 까다로워지고 있다”며 “일본 유통사는 자신의 점포에서만 만끽할 수 있는 쇼핑의 즐거움을 어떻게 창출해 갈지가 과제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