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CU를 운영하는 BGF리테일(282330)은 지난해 8월 인적분할을 실시했다. 기업을 지주회사와 사업회사로 나눈 것이다.

BGF리테일은 작년 6월말 기준 연결기준 자산총액이 2조881억원이었다. 그리고 회사를 쪼갰더니 1분기 말을 기준으로 BGF(지주회사)는 1조6416억원, BGF리테일(사업회사)은 1조2844억원이 됐다. 둘을 단순 합산하면 2조9260억원이다. 회사를 쪼갰더니 자산이 9000억원가량 증가한 것이다. 그렇다면 순자산(자본총계, 자산 - 부채)은? 분할 전 9941억원이었으나, 분할 이후 각각 1조4992억원, 3915억원이 됐다. 마찬가지로 9000억원 가까이 급증했다.

3분기만에 9000억원을 번 것은 물론 아니다. ‘숫자의 마술’이란, 이런 것을 두고 하는 얘기일 것이다.

BGF뿐만이 아니다. 최근 기업을 쪼갠 현대산업개발이나, 작년에 나눈 롯데지주(004990)SK케미칼(285130), 현대중공업등이 모두 ‘숫자의 마술’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기업을 분할하기만 했을 뿐인데 자산이 늘었다. 효성(004800)을 쪼개 만든 효성티앤씨, 효성중공업, 효성첨단소재, 효성화학도 13일 상장 예정인데, 당연히 자산은 증가할 것이다.

조선DB

최근 증권업계 일각에서 “기업 쪼개기 마술로 ‘숫자상 자산’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이런데 어떻게 ‘PBR 1배’를 신뢰할 수 있겠느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PBR(주당순자산비율) 1배는, 최근 증시가 급락하면서 주목받은 지표다. PBR이 1배라는 것은 상장기업들이 순자산(자기자본)을 모두 팔아치우면 시가총액을 메울 수 있다는 뜻이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나 2011년 유럽 재정위기 당시 PBR 1배선까지 떨어졌다가 반등한 경험 때문에 관심 받는 지표다. 우리나라 코스피지수의 PBR 1배는 2300이다. 이때문에 “2300까지 왔으니, 글로벌 금융위기 때만큼 떨어졌다. 이제는 사도 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하지만 우리 기업들은 그사이 쪼개지고, 또 쪼개졌다. 기업이 분할돼 자산이 늘었는데 시가총액은 그대로인 경우가 많다 보니(앞에 예를 든 BGF리테일은 오히려 시총이 많이 감소했다), PBR은 점점 더 떨어지는 걸로 보이는 것이다. “정말 지금 PBR이 1배라고 해도 되나”라는 얘기가 나온다.

한 리서치센터장은 “미국 자금순환표를 보면, 이런 경우 계열사 가치를 삭감하고 부채비율 등을 계산한다. 우리도 이제 정상으로 되돌릴 때가 됐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만 이럴까. 아마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IFRS는 ‘자율’에 방점이 찍힌 회계처리 방법이니까. 하지만 우리나라는 유독 ‘페이퍼 컴퍼니’급 지배회사가 많다. 다른 나라에 비해 왜곡됐을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 증시는 싸지 않다”고 하려는 얘기가 아니다. 투자자 차원에서 ‘스트레스 테스트’를 실시해야 한다는 얘기일 뿐이다. 진짜 속살을 정확히 파악해야 투자자도 신뢰를 갖고 접근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