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는 지금 비정상이다. 기업의 혁신과 투자가 일어나지 않아 성장이 정체되고 있다."

"가족 지배를 없애고 싶다는 이유로 삼성·현대차 같은 국민 기업을 엘리엇 같은 투기 자본에 넘겨주려는 건 큰일 날 짓이다."

장하준〈사진〉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10일 국내 행사에 참석해 "출산율 최저, 자살률 최고 등 한국의 각종 지표는 창피해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는 수준"이라며 현 정부의 산업·경제에 대해 쓴소리를 쏟아냈다. 장 교수는 글로벌 베스트셀러 '사다리 걷어차기'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등의 책을 쓴 경제학자로 이날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마련한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교수와의 대담에 참석했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의 사촌 동생인 장 교수는 이날 현 정부 정책을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철강 등 주력 산업은 중국에 잠식당했고, 제약·기계·부품·소재 등 유망 산업은 선진국 장벽을 뚫지 못하고 있다. 반도체 생산은 1위지만, 반도체를 만드는 기계는 일본·독일서 수입하고 있다." 그는 "과거 고도 성장기 한국은 1인당 국민소득 기준 경제성장률이 6%가 넘었으나 외환 위기 이후 2~3%대로 떨어졌다"며 "성장률이 떨어지는 건 자연스럽지만, 이 같은 급격한 하락은 정상이 아니다"라고 했다.

장 교수는 성장 정체의 원인을 주주자본주의(주주만이 기업의 주인이라는 주주중심주의) 도입에 따른 기업의 투자 감소에 있다고 봤다. 그는 "외환 위기 이전 14~16% 수준이던 국민소득 대비 설비투자 비율이 7~8% 수준으로 반 토막 났다"며 "고배당을 요구하는 단기 외국인 주주들 때문에 대기업의 장기 투자가 힘들어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 정부가 재벌 개혁을 명분으로 기업 지배구조에 간섭하는 점을 비판했다. 그는 "지주사는 과거에 불법이어서 기업들이 경영권을 유지하기 위해 순환출자라는 재주를 부릴 수밖에 없었다"며 "어렵게 만들어놨더니 다시 지주사로 전환하라면서 기업의 존폐를 어렵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교수들이 만든 이론에 목을 매며 왜 우리 경제를 휘청거리게 하느냐. 지금 중요한 게 뭔가를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스웨덴의 발렌베리 가문은 5대째 기업을 일구고 있고, 포드 가문은 재단을 통해 경영권을 유지하고 있다. 폴크스바겐은 창업자와 정부, 노동자 등이 복합적으로 소유한 구조"라며 "기업 지배구조에 정답은 없으며 수단일 뿐이다. 목표는 기업이 혁신과 사업 다각화, 신산업 진출을 통해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장기 주주에게 가중의결권을 주거나 자본 이득세를 감면하는 등의 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대해서는 "최저임금 인상 자체는 반대하지 않지만 분야별 차등·금액 등은 제대로 논의해야 한다"며 "그러나 물만 부어 놓고 펌프질을 안 하면 소용이 없다. 중요한 것은 생산성 향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