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6일(현지시간) 중국에서 수입하는 340억달러(약 38조원) 규모의 제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하면서 ‘미·중 무역전쟁’의 포문이 본격적으로 열린 것에 대해 경제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대중(對中) 중간재 수출이 심각한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미국의 관세부과 대상 품목은 항공기 엔진·타이어, 일부 승용차·트럭·오토바이·헬기·항공기·우주선, 선박 모터, 원자로, 푸드프로세싱 설비, 착유기·부화기 등 축산설비, 프린터·복사기 부품, 볼 베어링, 범용 스냅 스위치, 변압기, 리튬배터리, 레이더·무선 설비, 엑스레이 등 의료 설비, 현미경·망원경, 산업자석 등 광범위하다.

이에 맞서 중국은 농산품, 자동차, 수산물을 포함한 340억 달러 상당 품목에 대한 관세를 먼저 부과하고 미국처럼 화학 공업품, 의료 설비, 에너지 제품에 대한 관세부과 여부를 추후 발표하겠다는 방침이다.

미국은 중국이 추가로 보복하면 또다른 관세 부과안을 내놓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어 무역전쟁이 확전될 가능성도 있다.

미·중 무역 분쟁은 중국과 연계된 밸류체인(부가가치 형성 과정)을 형성하고 있는 국내 제조업에 직격탄이 될 가능성이 높다. 중국은 한국의 수출 1위 국가이며 대중국 수출 중 부품 등 중간재 비중이 80%에 이른다. 이들 중간재는 중국에서 완성품 제조에 사용돼 주로 미국으로 수출되기 때문에 중국의 미국 수출길이 막히면 한국의 대중국 수출이 악화될 수밖에 없다.

서정민 숭실대 글로벌통상학부 교수는 “한국이 중국을 통해서 미국에 수출하는 상품들이 직접적인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한국이 중국에 공급하는 중간재와 중국에서 조립 및 가공돼 중국 원산지로 미국 등에 수출되는 완성품 전체가 타격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미국이 EU(유럽연합) 등 3국에 대한 보호무역조치를 취하면 미국, 중국 등이 아닌 3국 등 우회로를 통한 수출이 막힐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국내 업체들이 다각도로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현욱 KDI(한국개발연구원) 경제전망실장은 “관세부과로 미국에 대한 최종재 수출이 줄어들 경우 중국은 한국으로부터의 자본재 조달을 줄이고,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생산을 대체하는 방식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또 “한국산 중간재 수입을 대체할 수 있을 정도로 중국 내부의 기술 발전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미국 무역 분쟁은 중국에 자본재 수출을 하는 국내 업종에 심각한 타격을 줄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중국에 대한 관세 부과가 한국산 제품에 대한 보호무역조치로 불똥이 튈 가능성도 제기됐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우리나라도 대미(對美) 무역흑자 규모가 크다는 점을 감안하면 미국 정부가 중국에 관세를 부과한 것과 비슷한 양상으로 보호무역조치를 취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면서 “미·중 무역전쟁으로 글로벌 교역과 경기가 위축되면 우리 무역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미국과 중국의 경제 헤게모니 싸움에서 비롯된 만큼 우리 정부가 대응할 여지가 많지 않다는 점을 지적했다. 미국과 중국 어느 한 쪽편을 들 경우 엉뚱한 피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미·중 무역 분쟁으로 피해를 입는 업종과 기업에 대해 미시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제현정 한국무역연구원 연구위원은 “통상 분쟁에서 정부의 역할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기업들이 자생력을 키울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바람직한 대응”이라며 “미중 무역분쟁으로 피해를 입는 업종과 기업이 미국과 중국 이외 시장을 개척하는 데 정부의 네트워크를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정민 교수도 “미국과 중국이 서로 치고 받을 때 한국이 끼어들 여지가 전혀 없지만, 미중 분쟁이 제3국으로 확전될 경우에는 다른 나라와 연계해 목소리를 내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면서 “우리나라뿐 아니라 무역전쟁으로 피해를 보는 국가들간 연계 방안도 정부와 산업계가 공조를 통해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의 대미 수출 감소로 인한 미국 최종재 시장의 공백을 겨낭한 통상협상의 필요성도 제기됐다. 김현욱 실장은 “중국산 제품의 미국 수출이 줄어들 경우 한국산 최종재 제품이 미국 시장에 접근할 기회가 넓어질 수 있다”면서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등을 활용해 한국산 제품이 미국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여지를 넓히는 노력이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