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계가 사면초가 상태에 빠졌다. 대외적으로는 미국과 중국, 유럽연합(EU) 등이 무역전쟁을 벌일 태세고 국내에서는 대기업을 옥죄는 규제가 점점 강화되고 있다. 기업들은 국내에 투자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달라고 건의하지만, 규제 완화는 반기업 정서에 막혀 지지부진하다. 편집자 주

국내 태양광 업체 한화큐셀코리아는 올해 대(對)미국 수출 목표치를 작년의 30%로 대폭 줄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월 7일 수입산 태양광 셀(cell·전지)과 모듈(module·셀을 이어붙인 판)에 세이프가드(safeguard·긴급수입제한조치)를 발동하면서 수출 물량에 관세 30%가 붙었기 때문이다. 관세는 올해 30%, 2019년 25%, 2020년 20%, 2021년 15% 등 향후 4년간 부과될 예정이다. 한화큐셀코리아는 줄어든 대미 수출 물량을 다른 나라로 돌려 만회할 계획이다.

국내 철강업체의 올해 대미 수출도 줄어들 전망이다. 미국이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라 한국업체의 대미 수출 물량을 2015~2017년 평균의 70%로 제한했기 때문이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열연봉강, 전기강판 등 대미 수출 철강제품 53개 중 13개는 이미 수출 쿼터(할당량)를 모두 소진했다. 미국은 그동안 관세를 부과하지 않았던 한국산 대형 구경강관에 대해서도 반덤핑·상계관세 조사를 벌이고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이 한국 산업계에 암운을 드리우고 있다. 미국의 보호무역주의는 전 세계로 퍼져 국가 간 무역전쟁으로까지 번질 태세다. 강대국 간 무역전쟁으로 세계교역이 줄면 수출 비중이 큰 한국은 타격이 불가피하다.

지난해 11월 한국을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국회 본의회장에서 연설하고 있다.

◇ 트럼프가 촉발한 세계 무역전쟁

태양광·세탁기 세이프가드, 수입산 철강 수입제한 등의 조치를 취한 미국은 이미 예고한 대로 6일(현지시간) 0시부터 340억달러(약 38조원)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 818개 품목에 25%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미국이 중국과의 거래에서 손해를 보고 있다는 게 이유다. 미국은 2주 이내에 160억달러 규모의 중국산 284개 품목에 대해서도 관세를 부과할 예정이다.

중국은 즉각 반격에 나섰다. 중국은 미국산 수입제품 중 340억달러 규모 545개 품목에 관세 25%를 부과할 예정이다. 관세 부과 품목은 농산물, 자동차, 수산물 등이다. 중국은 미국이 160억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관세를 부과하면, 똑같이 160억달러 규모의 미국산 제품에 보복관세를 매길 계획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여기에 더해 2000억달러(약 224조원)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추가로 10%의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고 밝혔다. 또 중국이 보복을 철회하지 않으면 2000억달러 규모를 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말이 현실화되면 관세 부과 대상이 총 4500억달러에 달하는 것이다. 이는 작년에 미국이 중국에서 수입한 전체 물량(5055억달러)의 90% 수준이다. 중국의 미국산 수입 물량은 작년에 1299억달러였다. 중국이 미국산 물량에 추가로 보복관세를 부과하면 사실상 미국과 중국의 전체 교역량에 관세가 부과되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국가안보를 이유로 수입산 자동차와 부품에도 관세를 부과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미국의 자동차와 부품 수입액은 각각 1917억달러, 1431억달러에 달한다.

미국이 다양한 수입산 제품에 관세를 부과하거나 부과를 검토하자 유럽연합(EU), 캐나다 등도 반격에 나서고 있다. EU는 수입산 철강제품에 세이프가드 발동을 검토하고 있다. EU는 미국이 수입산 자동차에 관세를 부과하면 전 세계에서 연간 3000억달러가 넘는 미국산 제품에 대한 보복을 촉발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캐나다는 미국산 철강, 알루미늄 제품에 각각 25%, 10%의 관세를 부과하고 50여개 소비재 상품과 식기세척기 등에도 10%의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 세계 무역성장률 벌써 둔화…한국도 영향권

세계 1, 2위 경제대국인 미국과 중국이 맞붙으면서 세계 무역성장률은 이미 둔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JP모건의 6월 글로벌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 내 신규 수출주문 지수(new exports sub-index)는 50.5로 나타나 2016년 7월(50.2) 이후 가장 낮았다. 기업 구매담당자의 심리를 수치화한 이 지수는 50이 넘으면 수출 주문이 늘어날 것으로 본다는 의미이고, 50 아래는 그 반대다. 수출주문 지수가 아직은 50이 넘었지만, 올해 1월(54.1)과 비교하면 크게 악화된 것이다.

선진국 간 무역전쟁으로 세계 교역량이 감소하면 수출 비중이 큰 한국은 타격을 입게된다. 국회예산처가 작성한 ‘한국에 대한 미국의 수입규제조치 파급효과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수입규제 조치로 철강의 수출 손실액은 올해부터 2022년까지 12억4000만달러(약 1조4000억원)~28억5000만달러(3조2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됐다. 이로 인한 취업유발 손실은 6538~1만5012명이다.

또 세탁기의 수출손실액은 올해부터 2020년까지 7억6000만달러(약 8500억원)~8억8000만달러(약 9800억원), 태양광전지의 수출손실액은 2021년까지 4억7000만달러(약 5300억원)로 추정됐다.

포항시 철강산업단지에 있는 넥스틸 1공장 내부. 미국의 관세 부과로 유정용 강관의 미국 수출이 어려워지자 설비가 멈춰있다.

국내 업체들은 미국의 수입규제를 피해 다른 나라로 눈을 돌리고 있지만, EU나 다른 나라까지 무역전쟁에 동참하면 대체 판로를 찾기도 어려워진다. 실제 한국 철강업체의 대미 수출량은 올해 1월 27만5710톤에서 5월 15만8065톤으로 42.3% 줄었지만, 같은 기간 EU로의 수출은 29만5756톤에서 32만7010톤으로 10.6% 늘었다. 그러나 EU까지 수입산 철강에 관세를 부과하면 다른 시장을 찾아야 한다. 이 경우 수출 경쟁이 심해져 수익성 악화가 우려된다.

국제 신용평가회사 피치는 미국이 수입산 자동차에 관세를 부과하고 EU 등 다른 국가들이 보복 관세에 나서면 이로 인한 피해 규모가 최대 2조달러(2240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한국무역협회는 미국, 중국, EU가 각각 관세를 10%포인트씩 인상하면 세계 국내총생산(GDP)이 1.4% 감소하고 무역은 6% 줄어 우리나라 수출도 6.4%(367억달러·약 41조원) 감소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신동진 국회예산처 경제분석관은 “미국이 수입규제 조치를 확대하면 이로인한 수출손실액이 점차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보호무역주의에 대한 대응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