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부터 근로시간이 주 52시간으로 단축됐지만 직장인들 사이에선 "퇴근 후에도 카톡 등으로 수시로 연락이 온다. 업무와 여가의 경계가 사라지고 있다"는 불만이 있다. 직장인들이 "퇴근 후 업무 지시가 전혀 없다면 임금을 8.7%까지 덜 받아도 괜찮다"고 생각한다는 조사 결과(노동연구원)도 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이와 관련한 연구 용역을 발주하는 등 해결 방안을 모색한 결과, 아직 뚜렷한 대응 방안을 제시하긴 어렵다는 잠정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5일 본지가 입수한 고용부의 연구 용역 보고서도 "퇴근 후 업무 지시를 입법 등으로 전면 금지하기는 어렵다. 노사 협의를 통해 푸는 게 바람직하다"고 했다.

◇"연락 유지 상태는 근무 아냐"

일부 직장인은 "퇴근 후에도 '언제든 연락 가능한 상태'를 유지한다면 사실상 일하는 것 아니냐"고 주장한다. 현행법상 근로시간은 '실질적으로 사용자의 지휘·감독 아래 놓여 있는 시간'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한국법정책학회가 고용부 의뢰로 작성한 보고서는 그렇지 않다고 판단했다. 보고서는 "항상 연락 가능한 상태에 있다고 해도 휴식 시간을 어디서 보낼지,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자유가 침해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근로시간으로 보기 어렵다"고 했다. 김기선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상사가 메신저 등으로 내일 일정을 물어봐 답하거나, 이메일에 간단히 응대하는 정도까지 근로시간으로 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다만 퇴근 후 명시적·묵시적 업무 지시가 있고, 이에 따라 실제로 일한다면 근로시간으로 봐야 한다는 게 연구진 판단이다. 예컨대 오후 7시 퇴근한 직장인이 집에서 쉬다가 오후 9시쯤 "자료를 찾아보라"는 연락을 받고 10시까지 일한다면, 실제 업무를 수행한 1시간은 근로시간이라는 것이다. 다만 고용부 관계자는 "통일된 원칙으로 근로시간 여부를 가리기는 어렵다"면서 "개별적 사안마다 그 성격에 따라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해외 금지 사례 없어… "노사 협의로 풀어야"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근로시간 외 업무 지시 금지 등을 포함한 '칼퇴근법'을 공약했다. 현재 국회에도 관련 법안이 발의돼 있다. 그러나 보고서는 "(퇴근 후 업무 연락을 줄여야 한다는) 필요성이나 방향성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으나, 실효성 측면에서는 효과적 대책이 되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우선 기업이나 노동 현장에서 업무상 연락이 꼭 필요한 경우를 배제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발의된 법안에 '정당한 사유가 있을 때는 연락해도 된다'는 규정이 있지만, '정당한 사유'를 무엇으로 해석할지 노사 간 의견이 엇갈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고용부 역시 퇴근 후 업무 지시를 규제할 방안을 검토했으나, 판례 등 판단 기준이 부족해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현재 퇴근 후 업무 지시를 일괄 금지한 사례는 해외에도 없다. 프랑스는 지난해 '연결되지 않을 권리(right to disconnect)'를 법에 반영했으나, 사실상 선언적 규정일 뿐 실제 규제 방안은 노사 합의에 맡겨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