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한 일을 당한 것을 무척 죄송스럽게 생각한다. 유족들에게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지난 5일 아시아나항공(020560)의 ‘기내식 대란’ 4일째 만에 그룹 총수인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직접 기내식 재하청업체 유가족과 국민에게 공식으로 사과했다. 아시아나직원연대가 총수 일가의 경영 실패와 갑질 사례에 대해 제보받기 시작했고, 촛불시위까지 열린다는 말에 부랴부랴 사과하는 행동을 취한 것이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박 회장의 사과가 진정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한다. 우선 자신과 관련된 의혹에 대해서는 전부 변명으로 일관했고, 하청업체 갑질과 관련해서도 도의적인 책임을 느낀다는 정도로만 언급했다.

실제 박 회장은 전날 기자회견 시간의 대부분을 기내식 공급업체를 바꾼 이유에 대해 해명하는 시간으로 할애했다. 공급업체를 바꾼 것은 더 유리한 조건을 제시했기 때문으로 금호홀딩스에 대한 투자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다. 또 사과가 늦어진 이유도 중국 칭다오에서 열린 연세대학교 세브란스 병원 착공식에 참석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4일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서울 광화문 사옥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두 손을 모으고 생각에 잠긴 듯 눈을 감고 있다.

재하청업체 대표 사망과 관련해서는 "무거운 책임을 느낀다”고 말했으나 우리와 직접 계약을 한 게 아니고 기내식 공급업체인 샤프도앤코의 협력업체라는 전제를 달았다. 그러나 재하청업체 대표 A씨의 죽음은 아시아나항공이 샤프도앤코와 맺은 갑질 계약 때문이다.

지난 3월 게이트고메코리아가 설립 중이던 기내식 생산공장에 화재가 발생하면서 아시아나항공은 케이터링 업체인 샤프도앤코와 3개월 단기 계약을 맺었다. 하루 3000식 정도가 가능한 샤프도앤코가 3만여식에 이르는 아시아나항공의 수요를 결국 맞추지 못하면서 기내식 공급에 차질을 빚게 됐다.

이 과정에서 아시아나항공과 샤프도앤코와 맺은 계약에서 30분 이상 공급 지연 시 음식값의 절반을 지급하지 않아도 되고, 15분 지연 시 수수료를 주지 않아도 된다는 조건이 넣었다. 아시나아항공과 샤프도앤코가 맺은 이 같은 갑질 계약은 재하청업체에 부담으로 전해졌을 것이란 지적이다. 실제 재하청업체 대표 A씨는 “안 되는 일을 되게 하라고 한다. 내가 다 책임져야 할 것 같다”라는 말을 지인한테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아시아항공은 이에 대해 "샤프도앤코와 맺은 계약 조건은 해당 업계가 맺은 다른 계약들과 비교할 때 관대한 수준이며 초기 혼란을 고려해 8일 동안은 더 업체를 고려한 조건으로 배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아시아나항공은 3개월 뒤 게이트고메코리아의 공장이 정상가동되면, 샤프도앤코와 계약도 끝내겠다는 입장이다. 갑질 계약으로 샤프도앤코의 협력업체 대표까지 죽음에 이르렀으나, 책임질 것은 딱히 없다는 태도다. 샤프도앤코와 협력업체들은 아시아나항공과 납기를 맞추기 위해 연일 밤샘 작업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항공업계 한 관계자는 “안되는 일을 무리하게 요구하고, 일이 해결되면 바로 계약을 해지버리는 것은 갑질 계약의 전형”이라며 “도의적 책임을 이야기한 만큼 협력사들도 보듬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는 “샤프도앤코와 계약은 3개월 단기 계약으로 이후 게이트고메코리아에서 기내식을 조달받을 예정”이라며 “현재로는 계약이 연장될 가능성은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