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한국 경제의 추락 징후를 보여주는 경제지표가 또 나왔다. 5월 중 설비투자가 전달 대비 -3.2%, 소매 판매가 -1.0%를 기록했다. 설비투자는 3개월 연속, 소매 판매는 두 달 연속 마이너스(-)다. 1분기 중 저소득층 소득 감소, 5월 일자리 쇼크에 이어 우리 경제가 뒷걸음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수치들이다. 지표에 민감한 외국인 투자자들이 이달 들어 국내 증시에서 투자금 1조5870억원을 회수해 갔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28일 더불어민주당과 간담회를 하며 "반도체와 상위 몇 기업을 제외하면 기업들 수익성이 좋지 않다"면서 "우리 경제가 구조적 하향 추세인 현실을 직시하고, 처방을 내놔야 하는 시기"라고 말했다. 간접 화법으로 문재인 정부에 경제 노선의 궤도 수정을 요청한 셈이다.

문재인 정부는 한국 경제의 패러다임을 바꾼다면서 성장 정책의 두 축으로 '소득 주도 성장'과 '혁신 성장'을 내세웠다. 소득 주도 성장은 수요 쪽, 혁신 성장은 공급 쪽을 자극해서 성장 동력을 끌어내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두 성장 축은 새 정부 출범 1년 만에 총체적 위기를 맞고 있다. 최저임금을 16.4%나 인상했지만 저소득층 소득은 1년 전에 비해 8%나 감소했다. 연간 30만개씩 늘던 일자리가 7만개로 추락했다. '일자리 정부'의 역설이다.

혁신 성장 부문은 성과가 전무하다. 문 대통령이 혁신 성장 컨트롤타워로 김동연 경제부총리를 지명하며 독려에 나섰지만, 혁신 성장은 힘없는 경제부총리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보수 정부 10년 동안 '녹색 성장' '창조 경제'란 이름으로 공급 사이드의 성장 정책을 추진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영리(營利)병원·원격의료는 의사, 차량 공유 사업은 택시 기사, 스마트팜은 농민에게 가로막혔고, 인터넷 은행은 은산(銀産) 분리, 핀테크는 개인 정보 보호 규제가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혁신 성장은 지지율 70%대 대통령이 선두에 서고, 여야 정치권이 공조해서 이익 집단의 저항을 돌파해야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현 집권 여당은 야당 시절 사사건건 규제 완화의 발목을 잡았던 사람들이다. 진보적 시민 단체는 벌써부터 문재인 정부의 궤도 수정을 견제하며 압력을 넣고 있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조국 민정수석 등 문재인 정부 실세를 배출한 참여연대는 28일 '문재인 대통령, 과거 경제정책으로 회귀해선 안 돼'라는 제목의 논평을 내고 "슬그머니 공약을 뒤집으면서 규제 완화의 당위성을 찾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문재인 정부가 이른바 촛불 진영의 압력에 굴복해 '규제 개혁'을 포기하면 일자리 창출은 요원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지층 반발을 무릅쓰고 한·미 FTA, 파주 LCD 공장 허가 등의 결단을 내린 바 있다. 한 전직 고위 경제 관료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늘 강조했던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 감각의 조화'를 되새겨야 할 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