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전망을 바탕으로 통화정책을 운용하는 한국은행이 경기 예측력을 높이기 위해 민간 카드사의 빅데이터 활용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한은은 28일 하나카드와 빅데이터 기반 경기예측력 제고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고 밝혔다. 지난 2016년 신한카드와 빅데이터를 공유하는 업무협약을 맺은 이후 두 번째다.

한은과 하나카드는 이번 협약을 통해 경기동향 모니터링을 위한 카드 빅데이터를 공유하고 경제동향 파악을 위해 필요한 사업과 업무 등을 위해 협력하기로 했다. 한은은 앞으로도 다양한 기관과 업무협약을 통해 가계소비와 서비스업 관련 기초자료를 확충함으로써 경기동향 모니터링과 경기 예측의 정확도를 높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 빅데이터 가장 큰 무기는 ‘시의성’…아직은 보조 지표

국내 최고 경제 전망 기관인 한은이 민간 금융사의 미시 데이터에 주목한 이유는 빅데이터의 ‘시의성’ 때문이다. 한은이 민간소비 동향을 파악하려면 한 달~한 분기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어떤 경제·사회적 사건이 발생했을 때 가계 소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파악하기도 쉽지 않다. 반면 카드사의 빅데이터는 실시간으로 자료를 수집할 수 있고 사용자의 성별, 연령, 소득 등 다양한 분류를 통해 소비 변화를 파악할 수 있어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게다가 한국 가계의 카드 사용 비중이 매우 높기 때문에 정보의 정확도도 어느 정도 확보됐다는 평가다. 한은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의 지급 수단 중 카드(신용카드·체크카드·직불카드 모두 포함) 사용 비중은 70%에 달한다. 현금 사용 비중은 30%가 채 되지 않는다. 카드 사용 내역만으로도 가계의 소비 패턴을 분석하기 충분하다는 의미다.

‘빅테이터 기반 경기예측력 제고를 위한 업무협력 양해각서’를 체결한 윤면식(왼쪽) 한국은행 부총재와 정수진 하나카드 대표이사.

이미 세계 많은 중앙은행은 신속한 경기 예측을 위해 빅데이터 등 미시 자료를 활용하는 사례가 많다. 미 연준이나 유로존의 ECB(유럽중앙은행), 중국 인민은행도 미시 데이터를 경제 상황이나 금융시장을 신속하게 파악하는 데 활용하고 있다.

다만 아직은 빅데이터가 전통적인 거시 데이터의 보조 지표로 활용되는 수준이다. 빅데이터 범위가 지나치게 방대하고 분석이 쉽지 않다는 단점이 있기 때문이다. 빅데이터의 경우 지속적으로 안정적인 자료를 확보하기 어렵다는 한계도 있다. 빅데이터에 민감한 개인 정보가 포함돼 있다는 점 역시 이를 활용할 때 고려해야 할 요인이다.

◇ 美 뉴욕 연은, 날씨 예보처럼 빅데이터로 일주일 GDP 예측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일찌감치 빅데이터를 정책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해왔다. 세계 금융위기 이후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충분한 미시 데이터가 활용되지 않은 점이 정책 실패로 이어졌다는 반성이 나왔다. 이에 따라 소비, 물가 등 경제 상황을 신속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뿐 아니라 시스템 리스크를 평가하는 과정에서도 빅데이터가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다.

미국 뉴욕 연방준비은행은 2016년부터 빅데이터를 활용해 일주일 단위로 GDP 전망치를 추정하는 ‘나우캐스팅(Nowcasting)’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보통 한 달이나 한 분기 이후 발표되는 경제 성과를 일주일 단위로 분석하는 실시간 경제 진단 서비스를 구축한 것이다.

유럽에서는 빅데이터를 활용해 물가 상황을 보다 빠르게 진단하고 있다. 유럽연합(EU) 공식 통계기구인 유로스타트(Eurostat)가 발표하는 물가는 보통 한 달 정도 후에 나온다. 서베이를 통해 물가를 파악하려면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ECB는 물가 자료를 신속하게 수집하기 위해 온라인 거래는 물론 소매점 바코드 자료 등 다양한 빅데이터 자료를 수집해 활용하고 있다. ECB는 “빅데이터는 전통적인 거시 경제 자료의 단점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해준다"며 “정책 당국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은 증권사 보고서와 언론 뉴스 등 다양한 빅데이터를 이용해 시스템 리스크 평가에 이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한은 관계자는 “실시간으로 축적되는 빅데이터는 사전 설계와 긴 조사 과정을 거쳐야 하는 전통 서베이 방식보다 비용이 저렴하고 다양한 부가 정보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경제통계 분석에 매우 유용할 것”이라며 “빅데이터를 쉽게 적용할 수 있는 영역을 발굴해 시범 사업을 실시하고 이미 빅데이터를 활용한 해외 사례를 통해 적극적인 활용 방안을 연구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