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노후자금 626조원을 운용하는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의 수장 자리가 1년째 비어있다. 정부가 곧 임명할 것이라고 발표한 이후로도 수개월이 흘렀다. 기금운용본부장(CIO) 선임에 뜸을 들이자 시장에서는 재공모설, 해외 영입설 등 각종 루머가 쏟아지고 있다. 금융투자 베테랑들의 국민연금 CIO 기피현상이 점점 뚜렷해지고 있어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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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보 3인 추리고도 감감무소식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21일 조선비즈와 만나 “국민연금 CIO 선임과 관련해 아직까지 최종 후보에 관한 보고가 올라오지 않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연금 CIO는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공개모집 과정을 거쳐 뽑은 최종 후보 1인을 복지부 장관에게 임명 제청하면 장관이 승인하는 방식으로 선임된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 자리는 7대 CIO인 강면욱 전(前) 본부장이 지난해 7월 돌연 사표를 낸 후 1년째 비어있다. 국민연금 기금이사추천위원회는 공석 8개월째인 올해 2월부터 후임자 공모에 착수해 4월 중순 곽태선 전 베어링자산운용 대표, 윤영목 제이슨인베스트먼트 고문, 이동민 전 한국은행 투자운용부장 등 3명을 적임자 후보로 추천했다.

국민연금은 추천을 받은 후 지금까지 이들 3인에 대한 인사 검증을 진행하고 있다. 당초 예상과 달리 검증 작업이 두 달 이상 지속되자 시장에서는 “최적임자를 찾지 못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박능후 장관도 “뭔가 문제가 있어서 검증이 더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전했다.

이런 의구심에 대해 인사 검증 책임자인 김성주 국민연금 이사장은 “국민 눈높이를 강조하며 (검증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과거에 비해 엄격해진 국민의 눈높이를 맞추는 일이 녹록지 않음을 간접적으로 인정한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온갖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최근에는 해외 영입설이 불거졌다. 김성주 이사장이 이달 17일부터 24일까지 유럽 출장길에 오른 것이 루머를 키웠다. 민간 자산운용사의 한 고위 관계자는 “김 이사장이 국내에서 찾지 못한 CIO 적임자와 외국에서 접촉하고 있다는 소문이 돈다”고 말했다.

아예 재공모에 착수할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국민연금이 검증 과정에서 결격 사유를 발견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점점 설득력을 얻고 있다. 박 장관과 김 이사장의 애매한 태도도 재공모설에 불을 지폈다. 이에 대해 국민연금 관계자는 “인사 검증을 면밀히 진행하고 있으니 좀 더 지켜봐달라”며 말을 아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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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피현상 심화…은퇴자만 기웃

만약 국민연금이 현 후보 3명이 아닌 전혀 다른 인물 중 CIO 적임자를 다시 찾을 경우 가장 큰 문제는 과연 추가 지원자가 나오겠냐는 것이다. 국내 금융투자업계 종사자들 사이에서 국민연금 CIO 자리는 기피대상이 된 지 이미 오래다.

임기는 최대 3년(2년 + 연임 1년)에 불과한데 퇴임 후 3년 동안 재취업도 할 수 없고, 연봉은 민간 금융회사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청와대, 복지부 장관, 공단 이사장 등 직속상관이 많아 독립성도 떨어진다. 정치 외풍도 국민연금 CIO의 인기를 떨어뜨리는 이유 중 하나다. 역대 CIO 가운데 임기 3년을 모두 채운 사람은 두 명에 불과하다.

한 외국계 자산운용사 대표이사는 “한창 주가가 높은 현직자들에게는 훨씬 매력적인 조건의 민간 회사 자리로 이동할 기회가 넘쳐난다”며 “굳이 많은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국민연금 CIO를 택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홍완선 전 CIO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찬성 논란에 연루돼 구속된 뒤로 국민연금 CIO 기피현상이 훨씬 더 심해졌다고 말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역 출신인 한 증권사 관계자는 “감옥에나 안가면 다행이라는 말이 나오는 상황에서 누가 선뜻 지원하려고 하겠는가”라며 “현장감 떨어지는 은퇴자만 몰리는 자리로 변해가고 있다”고 전했다.

국민연금 기금은 2010년 324조원에서 2013년 427조원, 2016년 558조원으로 매년 빠르게 증가해왔다. 올해 3월 말 기준으로는 626조원이다. 2043년에는 2561조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연금은 일본 공적연금펀드(GPIF), 노르웨이 국부펀드(GPF)와 함께 세계 3대 연기금으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