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가계 빚이 1500조원 돌파를 눈앞에 뒀다. 20일 한국은행이 국회에 제출한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올 1분기 가계 부채 총액은 1468조원으로 1년 사이 8%(110조원) 늘었다. 작년 3월 기준 국내 부채 가구가 1100만 가구임을 감안할 때 가구당 평균 1억3300만원 빚이 있는 셈이다. 최근 정부의 부동산 규제 정책과 금리 인상 등의 영향으로 가계 대출 증가율은 무뎌지는 추세지만 올해 1500조원은 무난히 넘어설 것이란 전망이 많다.

가계 부채 1000조원을 돌파한 지난 2013년 4분기 이후 5년이 채 안 돼서 1500조원을 돌파하는 것으로 500조원→1000조원으로 불어난 기간(8년 6개월)보다 4년 가까이 빠른, 가파른 상승세다.

주택 담보 대출 줄고, 신용 대출 늘어

지난 수년간 가계 부채 증가는 주택 담보대출이 주도해왔다. 부동산 호황에 따른 주택 수요가 크게 늘면서 은행에서 수월하게 돈을 빌렸다. 하지만 정부가 LTV(담보 인정 비율)와 DTI(총부채 상환 비율) 한도를 축소하는 등 부동산 대출 규제를 강화하면서 주택 담보대출 증가세는 최근 꺾였다. 2016년 하반기만 해도 분기별 20조원을 넘던 주택 담보대출 증가액이 작년에는 10조원대로 꺾이더니 올 1분기에는 6조9000억원까지 떨어졌다.

반면 신용 대출 등의 기타 대출은 올 1분기 10조원이나 불어나면서 가계 부채 증가세를 떠받쳤다. 올 1분기 기타 대출은 전년 동기 대비 9.1% 증가한 것으로 주택 담보대출 증가율(6.9%)을 2014년 1분기 이후 4년 만에 앞질렀다. 한은 관계자는 "금융기관들의 신용 대출 확대 노력에 더해 주택 관련 자금을 신용 대출로 대체 조달하는 등 주택 담보대출 규제에 따른 풍선 효과가 일부 있었다"고 말했다.

"대출 금리 2%포인트 오르면 고위험 가구 부채 33조원 늘어"

가계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남에 따라 대출금 상환에 어려움을 겪는 가구도 늘고 있다. 소득의 40% 이상을 부채 원리금 갚는 데 쓰며, 빚이 자산보다 많은 '고위험 가구'는 작년 3월 말 기준 34만6000가구로 전체 부채 가구(1100만)의 3.1%를 차지했다. 1년 전보다 3만4000가구 늘어난 것이다.

한은이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대출 금리가 2%포인트 오를 경우 고위험 가구는 11만6000가구가 늘어 46만2000가구가 된다. 고위험 가구의 금융 부채도 57조4000억원에서 90조4000억원으로 33조원 불어난다. 이 수치는 작년 3월을 기준으로 산출한 것이기 때문에 그간 대출금리가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고위험 가구는 가정치에 상당 부분 근접했을 수 있다.

다중 채무자(3건 이상)면서 저소득(하위 30%) 또는 저신용(7~10등급)인 취약 차주(借主)의 여건도 악화되고 있다. 이들의 올 1분기 소득 대비 대출 비율(LTI)은 250.9%로 전체 평균(213.1%)보다 높고, LTI가 500% 이상인 취약 차주 비중(14.6%)도 지난 4년 새 5%포인트 넘게 증가하는 등 대규모 부실 위험이 커지고 있다.

전세 가격 20% 급락하면 60만 가구 부실 위험

한은은 최근 전국적 전세 가격 하락에 따른 임대 가구의 위험이 커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전세 가격이 많이 떨어지면 여윳돈이 충분치 않은 집주인은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내주기 위해 추가 자금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여러 채를 세놓은 다주택 임대 가구는 금융 자산보다 금융 부채가 많은 비중이 1주택 임대 가구(15%)보다 2배 이상 높아(34.2%) 전세 가격 하락에 따른 부실 위험이 훨씬 큰 것으로 조사됐다.

한은이 전세 가격이 20% 급락하는 경우를 가정해 임대 가구의 전세 보증금 반환 능력을 살펴본 결과 전체 임대 가구(약 274만 가구)의 78.4%(약 214만 가구)만 문제없이 보증금을 돌려줄 수 있었다. 전체의 21.6%(약 60만 가구)는 거주 주택 담보대출이나 신용 대출 등을 추가로 받아야만 보증금을 돌려줄 수 있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전세 가격이 20% 넘게 떨어지는 등의 부동산 경기 침체 상황에서는 은행이 돈을 쉽게 빌려주지 않기 때문에 자금 조달이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