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 금리 인상, 달러 강세, 미·중 무역 분쟁 등 3각 파도가 겹치면서 신흥국 주식 시장이 약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18일 블룸버그통신은 "올 한 해 들어 한국·인도·인도네시아·필리핀·타이완·태국 등 주요 아시아 신흥국 시장에서 해외 자금 190억달러가 빠져나갔다"며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가장 빠른 (자금 유출) 속도"라고 평했다. 인도 주식 시장 약세로 올해 들어 '배불러(베·브·러)'로 불리며 주목받았던 베트남·브라질·러시아 주식형 펀드도 큰 폭의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 중이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신흥국 시장의 변동성이 커질 전망인 만큼, '옥석 가리기'에 들어갈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美·中 싸움에 새우 등 터진 신흥국 펀드

올해 1분기만 해도 신흥국 투자에 대해서는 장밋빛 전망이 많았다. 글로벌 증시 호황, 양호한 경제 지표, 원자재 가격 상승 등이 긍정적인 요소로 꼽혔다. 지난해까지 실시된 해외 주식형 펀드 비과세 혜택의 막차를 탄 투자자도 많았다. 특히 베트남의 경우 지난해 베트남 주식에 투자한 외국인 순매수 금액(약 11억달러)의 40%가 한국의 투자금으로 채워지는 등 과열 열기를 보이면서 일부 운용사가 판매를 중단하기도 했다. 실제 1분기 투자처별 주식형 펀드 수익률을 보면 베트남(14.72%), 브라질(10.31%), 러시아(6.72%) 등에 투자한 펀드가 양호한 성적을 올렸다. 같은 기간 전체 해외 주식형 펀드의 평균 수익률(0.71%), 국내 주식형 펀드 수익률(-2.30%)을 수십 배 웃도는 수치다.

하지만 미국·유럽 등 선진국의 통화 긴축, 미국과 중국의 무역 전쟁이 가시화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지난 13일 0.25%포인트 올리면서, 올해 기준금리 인상 횟수를 기존 3회에서 4회로 조정했다.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상대적으로 신흥국의 투자 매력이 떨어져 외국인 투자금 유출, 화폐가치 급락 등의 현상이 벌어진다. 여기에 미국과 중국의 무역 분쟁이 본격화하면서 위험 자산에 대한 회피 성향도 커졌다.

박세원 현대차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 경기가 회복되며 글로벌 경기 동조화 현상으로 세계 경기가 확장세를 보일 것이라고 예상됐지만, 현재는 미국만이 '골디락스(완만한 경제성장과 낮은 물가 상승)'를 맞고 있다"며 "신흥국에서 통화가치 하락, 채권 금리 상승, 주가 하락이 연쇄 발생했고, 펀드 투자자는 환차손까지 이중 손실을 입고 있다"고 분석했다. 펀드 평가사 KG제로인에 따르면 18일 기준 해외 주식형 공모펀드의 연초 이후 수익률은 베트남(1.25%), 브라질(-15.4%), 러시아(-0.23%) 등 약세를 기록 중이다.

신흥국 시장 불안정 더 이어진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신흥국 시장 변동성이 커질 가능성이 큰 만큼, 보수적으로 대응하라고 주문한다. 신동준 KB증권 수석자산배분전략가는 "아직 충격이 확산되지 않은 신흥국은 중국·한국·대만·인도·러시아 정도지만, 이들 시장도 달러 강세와 무역 갈등으로 크게 흔들릴 위험이 있다"며 "3개월 관점에서 신흥국 시장 주식과 채권의 비중 축소를 권한다"고 했다. 김대준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의 중국산 수입품 관세 부과일인 다음 달 6일까지는 불확실성이 지속될 것"이라며 "한국 증시가 올해 가장 어려운 구간을 지날 것으로 보이는 만큼, 지수에 베팅하는 것은 무역 협상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다. 중·장기적으로도 올해 하락분을 만회할 신흥국 시장은 일부에 그칠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김영일 대신증권 연구원은 "연초 이후 부각된 신흥국 주식 약세 원인이 해결되지 않은 만큼, 상대적으로 저위험 국가인 한국과 중국으로 투자 대상을 제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날 국내 코스피는 전 거래일 대비 1.02% 오른 2363.91로 마감하며 6거래일 만에 반등했다. 외국인이 1114억원을 순매수하면서 8일 이후 처음으로 외국인 순매수를 기록했다. 중국 상하이종합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0.27% 상승한 2915.73으로 거래를 마쳤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전 거래일 대비 4.0원 내린 1105.1원으로 6일 만에 하락세로 돌아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