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교통부가 미국 국적인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가 불법 등기이사를 지냈던 진에어에 대해 두달 가까이 감사를 진행하고 있지만 결과물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진에어 면허를 취소할 경우 대량 실직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와 솜방망이 처벌로 끝날 경우 국토부의 ‘제식구 감싸기’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는 우려가 충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토부는 이르면 이달말쯤 진에어에 대한 행정처분을 결정해 발표한다는 계획이지만 어떤 결과가 나오든 논란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서울 강서구에 있는 대한항공 본사.

21일 정부 관계자와 항공 업계에 따르면 외국인(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 불법 등기이사 재직 사실만으로도 국토부는 진에어의 면허를 취소할 수 있습니다. 국내 항공사업법과 항공보안법상 외국인 국적을 가진 자를 임원으로 등록할 경우 정부는 해당 항공사의 항공운송사업 면허를 취소할 수 있습니다. 진에어는 지난 2010~2016년 6년간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차녀인 조현민씨를 기타비상무·사내이사로 등재했습니다. 조씨는 1983년 하와이에서 출생해 현재 국적은 미국입니다.

국토부가 조씨 조사 과정에서 아무런 직책이 없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과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이 진에어 경영에 참여했다고 볼 수 있는 서류를 발견한 점도 진에어로선 불리한 요인입니다.

국토부는 지난달 18일 “미국인인 조현민(본명 조에밀리리) 전 대한항공 전무가 진에어의 등기임원으로 재직한 것과 관련해 진에어로부터 지난달 16일 제출받은 소명자료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조양호 회장과 조원태 사장이 진에어 내부 문서 75건을 결재한 사실을 발견했다”고 밝혔습니다.

진에어에서 공식적인 권한이 없는 자가 내부 문서를 결재한 것은 한진그룹 지배구조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고, 이는 진에어의 경영이 비정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증거라는 게 국토부의 판단입니다. 국토부는 이같은 행위들이 공정거래법상에서 문제가 없는지 소관 부처인 공정위에 자료를 넘겨 조사를 의뢰했습니다.

국토부 관계자는 "법무법인에 법률자문을 받으며 면허취소를 포함해 제재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국토부는 현재 3곳의 법무법인에서 구두로 대략적인 내용을 전달받아 내부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지난 2012년 조현민 당시 진에어 전무가 객실승무원을 맡아 탑승객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미국 국적인 조 전무는 항공안전법을 어기고 진에어 등기임원을 맡았었다.

그러나 항공 업계와 정부 안팎에서는 국토부가 면허취소 카드를 내놓을 가능성은 낮다고 봅니다. 면허취소라는 강경한 처분을 내릴 경우 약 2000명의 진에어 인력이 한순간에 실직자로 내몰릴 수 있다는 우려 때문입니다.

한 국내 항공사 임원급 관계자는 “일자리 문제를 최우선으로 삼는 문재인 정부가 2000명에 가까운 진에어 직원들이 대량 실직하는 사태를 만들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보고 있다”며 “국민이 한진그룹 총수일가에 대해 감시의 눈을 거두지 않고 있어 국토부로서도 면허취소에 상응하는 처벌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을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고용노동부 등 다른 정부 부처에서도 진에어의 면허취소는 신중해야 하며, 면허를 취소한다고 해도 충격파를 최소화할 수 있는 별도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입장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에 대해 국토부 고위 관계자는 “엄정한 대처도 중요하지만 대량 실직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 게 우선이라고 국토부 담당자들에게 주문했다”고 말했습니다. 국토부가 면허취소 외에 내놓을 수 있는 조처로는 대규모 과징금이 있습니다.

국토부가 직원들을 처벌해 뼈를 깎는 고통을 감내할 지도 관건입니다. 국토부는 진에어에 대한 처분과 함께 면허 발급에 개입된 국토부 직원들까지 한꺼번에 징계를 내려야 합니다. 조 전 전무의 불법 등기임원 재직 사실이 드러나면서 대한항공과 국토부의 유착관계를 의미하는 이른바 ‘칼피아(대한항공의 영문 약자 KAL과 마피아의 합성어)’ 논란이 여전하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진에어 문제는 감독 당국인 국토부의 묵인이 없었다면 어려웠다는 겁니다.

국토부는 현재 진에어에 유리한 유권해석을 내려주고 진에어 경영 상황에 대한 관리감독에 소홀했던 국토부 관계자들에 대해 별도의 감사를 진행 중입니다. 국토부 관계자는 “구체적인 제재 방안을 빠른 시일내로 결정해 발표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