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9일 오전 국내 한 통신업체의 '5G 버스'가 서울 강남대로를 달렸다. 버스 안의 노트북PC 모양 시험 장비 화면에는 19.98기가비트(Gbps)라는 수치가 떴다. 1초에 영화를 2편씩 다운로드할 수 있는 엄청난 속도다. 이 통신업체는 실제 도로에서 현재의 LTE(4세대 이동통신)보다 20~100배 빠른 5세대 기술을 구현했다. 하지만 이날 현장 시험에 투입된 국산 통신장비는 하나도 없었다. 강남대로에 깔린 12개 기지국 장비는 모두 중국 화웨이 제품이었다.

국내 통신업체들은 18일 5G용 주파수를 낙찰받은 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5G망 구축에 나선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지난 20여 년간 세계 최고 수준의 통신 인프라를 구축하며 IT(정보기술) 강국으로 발돋움한 것과 달리, 5G 시대에서는 통신 기술 속국(屬國)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통신 3사는 5G 통신망의 장비 시장을 중국 화웨이, 핀란드 노키아, 스웨덴 에릭슨 등 해외 업체들이 장악한 상황에서 향후 5~6년간 최소 20조원을 5G 통신망 구축에 쏟아부어야 한다. 남의 장비를 사다가 망만 구축하는 '속 빈 강정' 신세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장비뿐이 아니다. 중국 화웨이, 미국 인텔과 퀄컴은 이미 5G용 반도체 통신칩을 개발했고 중국 스마트폰 업체들은 이를 탑재한 5G 스마트폰도 올해 공개할 계획이다. 우리보다 적어도 6개월 이상을 앞서가는 것이다.

5G는 음성과 데이터를 넘어 자율주행차, 로봇, 드론(무인기), VR·AR(가상·증강현실), 스마트시티 등 4차 산업혁명의 기반이 되는 대동맥 역할을 한다. 이 대동맥 위에 누가 먼저 킬러 서비스(killer service·핵심 서비스)를 내놓느냐에 미래 산업의 패권이 달려 있다.

여기에서도 미국과 중국 기업들이 이미 한참 앞서 있다. 구글·애플과 GM·도요타는 미국의 실제 도로에서 자율주행차를 시험하고 있다. 2020년 5G망이 상용화되면 전 세계로 서비스를 확장할 계획이다. 김창경 한양대 과학기술정책학과 교수는 "5G 상용화는 한국이 기술 경쟁에서 밀려나는 변곡점이 될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