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주(週) 최대 52시간 근무제 시행을 앞두고, 국내 4대 그룹 중 한 곳은 현재 사장급 이상 임원 30여 명에게 운전기사 운영과 관련한 두 가지 안을 놓고 설문을 진행 중이다.

1안은 지금처럼 한 명의 기사를 운용하되 새벽에 일찍 출근해 점심시간까지만 일하는 방안이다. 퇴근이나 저녁 약속 때는 택시를 이용한다. 2안은 추가로 기사를 고용해 한 명은 1·3째 주에 일하고 다른 한 명은 2·4째 주를 맡는 방식이다. IBK기업은행은 행장 운전기사를 두 명으로 늘려 각각 오전과 오후로 나눠서 운전을 맡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LG그룹은 계열사 자율에 맡겼지만 전자·화학 등 주요 계열사들은 대안을 확정하지 못한 상태다.

초과근무 많은 임원 운전기사… 기업들 골머리

주 52시간제 시행이 보름 앞으로 다가왔지만 여전히 많은 기업이 임원 운전기사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임원 운전기사는 업무 특성상 아침에 일찍 출근해 밤늦게까지 수행하는 경우가 많다. 주말에도 출장·골프 등 추가 근무가 잦아 주당 52시간 근무를 훌쩍 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임원은 주 52시간제 대상이 아닌데 운전기사만 적용되다 보니 이런 문제가 생긴 것이다.

그래픽=박상훈

300인 이상 대기업은 당장 7월 1일부터 운전기사도 주 52시간제가 적용되기 때문에 시급히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대기업은 보통 전무급 이상 임원에게 운전기사를 제공하고 중소·중견기업도 대표이사는 운전기사를 두는 곳이 많다. 국내 500대 기업의 임원 수는 약 1만5000명이다. 국내 임원 운전기사 수에 대한 공식 통계는 없지만 최소 1만명 이상이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삼성전자와 SK텔레콤은 '감시·단속적 근로자' 제도를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임원 운전기사는 실제 근무시간(운행 시간)은 짧고 대기 시간이 많기 때문에 경비원·보안 업체 직원처럼 '감시·단속적 근로자'로 볼 수 있다는 것이 고용부의 해석이다.

개별 기업에서 일정 조건을 갖춰 감시·단속적 근로자로 인정을 받으면 연장·휴일 근로에 대해 1.5~2배의 가산(加算) 수당도 줄 의무가 없다. 따라서 운전기사 입장에서는 똑같이 일하고 추가 수당은 받지 못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어 기업들이 소득 보전 등 대안을 마련 중이다.

반면 한 전자계열 중견업체는 대표이사 운전기사가 주 52시간 근무를 넘어가면 상황에 따라 대리기사를 부르거나 다른 기사를 대타로 활용하기로 했다. 한 소비재 중견업체는 6명의 정규직 운전기사 풀(pool)을 두고 52시간을 넘지 않는 범위에서 유연하게 운용하기로 했다.

기사들 "월급 최대 절반 줄어든다"

주 52시간제가 시행되면 운전기사들은 월급봉투가 얇아질 수밖에 없다. "월급이 최대 절반까지 줄어들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업계에 따르면 기사들의 연봉(세전 기준)은 3400만~4000만원 선이다.

기업 규모에 따라 사정이 다르지만 월 209시간 근무로 산정한 기본급에 평일·휴일 시간 외 수당은 별도로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국내 대기업 임원 운전기사는 "한 달에 보통 평일 40시간, 주말에 4일 정도 추가로 일하고 수십만원의 수당을 더 받는다"면서 "많이 받는 사람은 100만원도 넘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52시간 근무가 시행되면 이런 시간 외 수당은 고스란히 날아갈 공산이 크다. 임원 운전기사라고 밝힌 한 남성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주 52시간제가 시행되면 수입이 최대 반 이상 줄어 가정생활이 크게 타격받을 것"이라고 호소했다. 다른 대기업 운전기사는 "나는 기본급이 적기 때문에 야근·휴일 근무를 하더라도 수당을 많이 받는 게 좋은데 왜 나라에서 무조건 저녁 있는 삶을 강요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정부 의도와 달리 장기적으로 운전기사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한 중견기업 임원 기사는 "주 52시간제 시행 때문에 7월부터 계약 해지를 통보받았다"면서 "임원 수행 기사는 고용 해지로 피해를 보는 일이 다반사"라고 호소했다.

한 대기업의 고위급 임원은 "대표이사가 처벌받을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어느 기업이 전용 기사를 유지하겠느냐"면서 "장기적으로는 대표이사만 운전기사를 두고 나머지 임원은 기본적으로 자가운전을 하고 필요할 때마다 대리기사를 부르는 식으로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김영완 노동정책본부장은 "주 52시간 근무제가 산업 현장을 유연하게 반영하지 못하고 예외 없이 획일적으로 규정하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