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이 500억달러 규모의 상대국 제품에 대한 25% 보복관세 부과를 선언, '무역전쟁'이 본격화했다. 세계 1·2위 경제대국 간 갈등은 EU(유럽연합)·일본에까지 도미노처럼 번져 글로벌 무역전쟁으로 비화할 수 있다. 이미 생산·투자·소비·고용 악화로 '4중고'를 겪고 있는 한국 경제의 마지막 버팀목인 수출도 직격탄을 맞게 됐다. 한국은 대외의존도가 높은 경제 체제를 갖고 있어 글로벌 무역전쟁의 최대 피해자가 될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미국 정부는 15일(현지 시각) 1100여 개 중국 제품에 대해 관세 부과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미 대통령이 중단을 요구해온 중국의 제조업 육성 정책인 '중국제조 2025'를 견제하는 차원에서 첨단산업을 타깃으로 삼았다. 중국은 곧바로 미국산 농산물과 자동차·오토바이 등에 동일한 관세 부과를 발표하며 맞불을 놓았다. 국제 유가와 금속·곡물 등 국제 원자재 가격은 2% 이상 급락했다. 글로벌 무역전쟁이 1930년대 대공황과 같은 상황을 불러올 수 있다는 공포감이 투자 심리를 위축한 것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 등 석학들은 "마치 대공황 당시에 발생했던 상황"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한국 경제 기초 체력은 바닥 근처까지 떨어졌다.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소비·투자·생산 등 경제지표들이 하반기부터 모두 증가세가 둔화되거나 심지어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실업률(4%)은 5월 실업률로는 2000년(4.1%) 이후 18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치솟았다.

중국·미국은 우리의 1·2위 무역 상대국이다. 우리 수출 중 대중(對中) 수출은 25%, 대미(對美) 수출은 12%를 차지한다. 수출이 줄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미·중 무역전쟁으로 자유 무역주의 대신 보호무역주의가 자리를 잡으면서 세계 교역량이 줄어드는 것이다. 한국무역협회는 "미국과 중국, EU가 관세를 10%포인트씩 올리면 우리 수출은 367억달러 감소한다"고 전망했다. 이는 작년 우리 수출의 6.4%다. 안팎으로 악재가 겹치면서 최저임금 인상과 주52시간 근로제 등 문재인 정부 핵심 경제 정책인 '소득주도 성장'도 속도조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는 "현 정부의 경제정책을 받아줄 만큼 우리 경제의 체질이 튼튼하지 않다"며 "규제 혁파 등으로 경제의 숨통을 먼저 틔워야 할 때"라고 말했다.

미 무역대표부(USTR)는 15일 오전 9시(현지 시각) 818개 품목 340억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대해 7월 6일부터 25% 관세를 부과한다고 발표했다. 또 반도체·플라스틱 등 160억달러어치 제품에 대해선 미국 업체들의 피해 청원 접수와 공청회 등을 거친 뒤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중국은 약 6시간 뒤 같은 수준의 보복을 발표했다. 중국 국무원 관세세칙위원회는 중국 시각으로 16일 토요일 오전 3시 미국산 대두·옥수수·SUV·담배 등 659개 품목 500억달러어치에 25%의 관세 부과를 발표했다. 정부 공식 발표를 주말 새벽에 한 것이다. 중국도 340억달러어치는 7월 6일에, 나머지 160억달러어치에 대한 관세 부과는 미국의 조치에 맞추기로 했다.

미·중 무역전쟁은 우리나라에 직·간접적 피해를 준다. 우선 중국에 대한 중간재(부품·소재 등) 수출이 1차로 충격을 받는다. 중국은 한국산 반도체·석유화학 제품·기계류 등 중간재를 수입해서 완제품을 만들어 미국에 수출한다. 미국의 관세 부과로 중국 수출이 타격을 받으면 우리 기업도 연쇄적으로 피해를 받게 되는 구조다. 작년 우리의 대중 수출(1421억 달러) 중 중간재의 비중은 78.9%에 달했다.

특히 한국 반도체 산업은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꼴'이 됐다. 미국이 공청회 등을 거쳐 앞으로 2차 관세 부과 대상에 포함시킨 중국산 메모리 반도체는 실제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현지 생산하는 제품들이다. 국내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미국이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견제하려고 꺼내든 칼에 엉뚱하게 한국 기업이 베일 상황"이라고 했다.

미·중 무역전쟁은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미국이 철강 관세를 높이면서 중국 철강이 유럽으로 몰려들자, EU 역시 철강 무역장벽을 높였다.

최원목 이화여대 교수는 "미국과 중국이 상호 보복전에 나서면서 무역전쟁이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단계에 이르렀다"며 "우리 통상 당국도 불공정한 관세 부과 등에 대해선 WTO(세계무역기구)를 활용해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