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국무총리와 김동연 경제부총리 모두 취임 1주년을 조용히 지나갔고, 어제(13일) 지방 선거라는 정치 행사가 있었기 때문에 오늘 공직자로서 매우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14일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마이크를 잡자 마자 “오늘 새로운 내용은 없을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기자간담회 마다 폭탄 발언을 했던 김 위원장이 이날은 로우키(l​ow-key) 전략을 취한 것이다. 청와대와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엇박자 논란 속에서 김 위원장이 ‘실세 장관’중 한명으로 거론되고 있는 것과 전날 여당이 압승한 지방 선거 등을 의식한 것이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간담회 후반부로 가면서 “대기업 총수 일가는 비주력·비상장사 보유 주식을 정리해라”, “진보와 보수 모두 성찰이 필요하다” 등 어김 없이 강한 발언을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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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정위 본연 역할 소홀 인정…경제민주화 TF 큰 역할 없다”

김 위원장은 지난 1년간 재벌 개혁과 갑을(甲乙) 관계 문제 해소 모두 성과가 있었다고 자평했다. 그는 “일관된 원칙을 갖고 기업 집단의 지배 구조와 경영 관행에 대한 자발적 변화를 유도했다”며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적어도 과거로 회귀하지 않는 비가역적인 변화가 시작됐다는 측면에서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고 밝혔다. 갑을 관계 해소에 대해서도 “가맹, 유통, 하도급, 대리점 분야별로 순차적으로 대책을 마련하고 이를 차질 없이 추진해 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지난 1년간에 대한 반성도 언급했다. 대표적으로 시장 경쟁 활성화라는 공정위 본연의 역할에 대한 반성이다. 그는 “지난 1년간 갑을 관계 개혁과 재벌 개혁이 상대적으로 부각되다 보니 시장 경쟁 활성화라는 공정위 본연의 역할이 위축됐다는 지적도 제기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개선 방향도 밝혔다. 김 위원장은 “이같은 지적을 고려해 혁신 성장을 뒷받침 하도록 경쟁 제한적 규제 개선은 물론이고 4차 산업 혁명에 대한 적극적 대응하는 생태계 구축에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했다.

그는 “농산물도매시장, 공동주택 관리․유지보수 등 독과점이 고착되거나 소비자불만이 큰 분야는 시장 분석을 실시해 경쟁 활성화 방안을 모색하겠다”며 “혁신 성장을 선도하는 중소·벤처기업의 기술이 시장에서 제값을 받을 수 있도록 기술 유용 행위를 근절하고, 인수·합병(M&A)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신속한 기업 결합 심사도 할 생각이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실제 장관’ 소문을 의식한 듯 공정위에 생긴 경제민주화 태스크포스(TF)에 대한 해명도 내놨다. 정부 안팎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 지시로 공정위에는 경제 민주화 정책을 점검하는 TF가 꾸려진 상태다. 이에 따라 김 위원장에게 더 많은 힘이 실린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다.

그는 “경제 수석실에서 정부 출범 1주년을 맞아 경제 민주화 공약 64개 이행 결과를 점검했고, 그 과정에서 주기적으로 점검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행정 부처 중심의 회의가 생긴 것”이라며 “공정위가 64개 공약 중 3분의 2인 26개를 갖고 있어 간사 역할을 한 것이지 일부 신문에 보도된 것 처럼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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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수 일가 非주력 계열사 지분 팔아라…정부-시민 긴장 유지해야”

김 위원장은 간담회 후반으로 갈수록 강한 발언을 쏟아냈다. 김 위원장은 대기업 총수 일가에 대해 “비주력·비상장 계열사 주식을 팔라”고 요구했다. 그렇지 않으면 강한 조사와 제재에 들어가겠다는 것이다. 그는 “총수일가가 지분을 보유한 곳이 핵심 계열사면 지분을 보유하면서 책임을 지는 게 시장 경제 원칙에 맞겠지만, 그룹의 핵심 사업과 관련 없는 SI, 물류, 부동산 관리, 광고 등의 계열사에 총수 일가가 다수의 지분을 보유하면서 일감 몰아주기를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또 “경영에 참여하는 직계 위주의 대주주 일가는 주력 핵심 계열사 주식만 보유해 주시고 나머지는 가능한 (정리) 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경영에 참여하지 않는 사촌, 육촌, 팔촌 일가의 경우 지분 매각이 어렵다면 가능한 빨리 계열 분리를 해주시길 바란다”고 요청했다. 또 “대기업 집단 대주주 일가들이 비주력·비상장 계열사를 보유하면서 일감 몰아주기 논란이 계속되면 언젠간 공정위의 조사와 제재 대상이 될 것임을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경고했다.

김 위원장은 하청업체 등에 '갑질'을 반복해 공정위에 여러 차례 신고된 38곳 기업을 상대로 본부 차원의 관리·조사도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38곳에는 대기업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은 정부의 경제 정책에 대한 본인의 생각도 언급했다. 그는 “현 정부의 대통령 임기는 4년 남았지만, 행정부의 사활은 경제다”며 “(국민들은) 경제 문제 판단에 긴 시간을 주지 않을 것이다. 길게 잡아도 정부 출범 2년차가 끝날 때 국민 한분 한분 체감할 수 있는 성과를 만들어 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현 정부는 촛불 혁명으로 탄생해 국민 목소리를 경청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책무지만, 국민들 요구 하나 하나를 모두 반영할 수 없다”며 “제한된 정책 자원이라는 우선 순위를 판단할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이어 “그런 의미에서 정부와 시민 사회간 건강한 긴장 관계가 있어야 한다”며 “국민들과 시민 사회 요구를 모두 끌어 담는 방식은 실패로 가는 첫 걸음이다”고 했다. 또 “진영간 토론 뿐만 아니라 진영 내 토론이 더 필요할 수 있다”며 “보수와 진보 모두 성찰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