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13일(현지 시각) 기준금리를 연 1.75~2.00%로 25bp 올린 데 이어 하반기 두 차례 더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을 시사하면서 한국은행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한은의 물가 목표치(2.0%)에 못미치는 1%대 저물가가 지속되는 가운데 고용 부진 등 경기 침체 상황이 이어지는 것을 감안하면 한은이 금리 인상에 나설 환경은 아니지만 미국 등 선진국의 본격적인 통화 긴축에 따라 신흥국의 ‘긴축 발작'이 확대될 경우 한국 금융시장의 안정을 위해 선제적인 금리 인상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기축통화국인 미국의 기준금리가 한국의 기준금리보다 오히려 높은 이례적인 한미 기준금리 역전 현상이 장기화되고 그 폭도 갈수록 커지는 상황을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지도 큰 고민거리다. 72개월 연속 경상수지 흑자 행진, 4000억달러에 육박한 외환보유액 등 한국의 양호한 대외신인도를 감안하면 한미 기준금리 역전으로 인해 당장 국내에 들어온 해외 자금이 대규모로 유출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그러나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통화 긴축에 가속 페달을 밟고 있어 만약 한국의 기준금리가 연말까지 동결된다면 연말쯤 한미 금리 역전 폭이 최대 100bp(1%포인트)로 확대될 수 있다. 이 뿐만 아니라 미국이 금리를 추가로 올릴 때마다 신흥국 금융시장이 극도로 불안해지는 이른바 ‘긴축 발작’이 반복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에 한미 금리 역전 현상이 장기화할 수록 한국 금융시장도 충격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한은의 설립 목표는 물가 안정과 금융 안정 두가지다. 결국 한은 금통위 내에서 두가지 설립 목표를 두고 국민 경제의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 기준금리를 어떻게 가져가야 할지 고민이 쌓여가는 시점이다.

아직 한은 금통위가 기준금리 인상에 신중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무엇보다 소비 등 수요측 물가 압력 부진으로 연 1%대 저물가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기준금리를 단기간내 올릴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흥국 금융시장의 ‘긴축 발작' 강도가 커질 경우에는 한국 시장으로 금융 불안이 전염되는 것을 막기 위해 예상보다 빨리 금리 인상 카드를 꺼내들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다.

이주열 총재가 지난 5월 열린 한은 금통위 회의에 앞서 생각에 잠겨 있다.

◇ 한은 고민의 근본 원인은 ‘경제 온도’ 다른 韓美

한은이 고민에 빠진 근본적인 원인은 한국과 미국의 경제 상황이 다르다는 데 있다.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통화 긴축에 가속 페달을 밟는 배경에는 경제 회복에 대한 자신감이 놓여있다. 특히 고용시장이 역대 최고 수준의 호조를 보이면서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선제적으로 억제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미국 고용시장 호조는 경제 회복의 마지막 고리로 여겨지는 임금 상승으로 이어졌다. 임금이 오르면서 물가 압력이 커지자 연준은 기준금리를 올려 경제가 내뿜는 ‘열기’ 식히기에 나섰다. 미 연준이 올해 금리 인상 예상 횟수를 총 3번에서 총 4번으로 늘린 것도 이 때문이다.

반면 한국은 고용 부진과 저물가에서 좀처럼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지난 2~4월 취업자 증가 수는 석 달 연속 10만명대에 그쳤다. 보통 경기 회복기에는 매월 30만명 정도 취업자 수가 늘어나는데, 최근 고용 상황은 이에 크게 미치지 못해 ‘쇼크’ 수준을 보인 것이다. 내수 회복세가 미약해 물가 상승률도 1% 중반대에 맴돌고 있다.

엇갈리는 한미 경제 상황은 양국 중앙은행 총재의 발언에서도 확인된다.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은 13일(현지시간) 기자회견에서 “미국 경제가 상당히 좋다. 물가 상승과 금융 불안정이 과열로 확산되지 않도록 단기적으로 금리 인상 속도를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고 했다. “수요 측면에서의 물가 상승 압력이 아직 높지 않아 통화 정책의 완화 기조를 유지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한 이주열 한은 총재의 한국 경제 진단과는 차이가 크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미국이 올해 4차례 기준금리를 인상하는 사이 한은의 금리 인상은 한 차례에 그칠 것으로 전망한다. 이 경우 연말이 되면 한미 금리 역전 폭은 75bp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 한은, 신흥국 금융 불안 확산 가능성에 ‘촉각’

한은은 일단 미 연준이 올해 두 차례 추가로 금리를 인상하더라도 한국 시장에서 외국인 자금이 대규모로 유출될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글로벌 자금의 움직임은 금리뿐 아니라 다양한 요인에 영향을 받고 한국 경제의 대외 건전성과 기초 체력(펀더멘털)이 건실하기 때문이다. 이 총재는 미 연준의 금리 인상 결정 직후 기자들과 만나 “미 연준의 금리 인상 가능성이 한 차례 더 높아졌지만 국내 금융시장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올해 미 연준 위원들의 금리 인상 횟수 전망이 3월 3회에서 6월 4회로 늘어났지만, 연준의 태도가 크게 바뀐 것은 아니라는 판단도 깔려있다. 지난 3월 점도표에서는 올해 4회 금리 인상을 전망한 위원이 7명이었는데 6월에는 8명으로 늘어 과반이 된 것이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외국인 자금 유출입은 금리 수준뿐 아니라 환율 등 다른 변수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기 때문에 미 연준이 올해 두 차례 더 금리를 인상한다고 해서 당장 자금 유출을 우려할 필요는 없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의 대외건전성이 양호하다는 것만으로 안심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아르헨티나, 브라질, 터키 등 경제 상황이 취약한 일부 신흥국에서 발생하는 금융 불안이 언제든 신흥국 전체로 확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의식한 듯 이 총재는 “미국의 금리 인상 속도가 빨라졌고, 유럽중앙은행(ECB)도 양적완화(채권 매입을 통한 시중 돈 풀기) 축소를 시사했기 때문에 이것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어떤 영향을 줄지 (보고 있다)”며 “일부 취약 신흥국의 금융 불안이 어떻게 진행될지 추이를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권구훈 골드만삭스 수석 이코노미스트 역시 미 통화 긴축 속도가 예상보다 빨라지면 한국도 안심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최근 “미 금리 인상이 빨라져 신흥국에서 외국인 투자자금이 무차별적으로 빠져나가면 오히려 유동성과 펀더멘털이 좋은 한국에서 자금을 더 많이 빼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미 금리가 가파르게 인상되면 한은의 금리 정책 효과가 반감될 것이라는 점도 한은에 큰 걱정거리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낮은 수준에 묶어두더라도 시중 금리는 미 금리에 연동돼 상승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 금리 추가 인상 신중한 한은…서두르지 않을 듯

시장 참여자들이 주목하는 것은 한은의 추가 금리 인상 시점이다. 이 총재는 지난 12일 “수요 측면에서의 물가 상승 압력이 아직 높지 않아 통화 정책의 완화 기조를 유지해 나갈 필요가 있지만 이 과정에서 금융 불균형이 커질 수 있는 점, 그리고 보다 긴 안목에서 경기 변동에 대응하기 위한 통화정책 운용 여력을 늘려나갈 필요가 있는 점을 함께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통화정책 방향은 분명히 긴축을 향하겠지만 언제 금리 인상에 나설지는 좀 더 지켜보겠다는 의미다.

이 총재는 미 연준의 금리 인상 결정 직후, 빨라진 미 금리 인상 속도가 한은 통화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느냐는 물음에 “금통위원들이 다 고민하고 있다”며 “상황이 가변적이어서 금통위원들과 계속 협의하겠다”고 말했다.

지난달 기준금리를 동결했던 금통위의 회의록을 보면 일부 금통위원들이 낮은 물가 수준에 주목하고 있다는 점은 한은이 추가 금리 인상을 서두르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하는 근거다.

오창섭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경기 개선에도 불구하고 금통위원들은 전체적으로 국내 물가 상승 압력이 높지 않고 경제 성장의 상·하방 위험이 상존하고 있어 금리 인상을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입장으로 평가된다”며 “금통위원들이 보는 금리 인상의 선제조건은 물가 상승률 확대로, 앞으로 통화정책 방향을 가늠하려면 물가에 주목해야 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