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컴오피스로 잘 알려진 토종 소프트웨어 기업 한글과컴퓨터(한컴)는 다음 달 블록체인 소프트웨어 '에스렛저'를 출시한다. 에스렛저는 인증을 통해 허가된 이용자에게만 서비스를 제공하는 블록체인 플랫폼. 한컴 관계자는 "에스렛저는 전자정부 등 행정 서비스를 비롯해 금융, 유통, 헬스케어 등 다양한 사업 영역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며 "앞으로 블록체인 기술 관련 컨설팅부터 플랫폼 구축, 운영까지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1980~1990년대 탄생하고 성장한 이른바 '20세기 벤처'들이 앞다퉈 신사업에 진출하고 있다. 이 1세대 벤처기업들은 한때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주력 사업이 정체기를 맞으면서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4차 산업혁명 바람이 불며 다양한 신기술이 부각되자 축적된 기술 노하우를 발판으로 새로운 도전에 나선 것이다.

◇스마트시티, 자율주행차, 헬스케어 등 진출

한컴은 블록체인에 이어 스마트시티 사업에서도 속도를 내고 있다. 스마트시티는 인공지능(AI), 드론, 로봇, 클라우드(가상 저장 공간) 등을 기반으로 교통·안전·에너지·환경·복지 등 다양한 도시 문제를 통합·관리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전 세계 스마트시티 시장은 2020년 1조5000억달러(약 1620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될 만큼 큰 규모다. 한컴은 앞서 지난해 12월 서울시, 한국스마트카드 등과 컨소시엄을 결성하고,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터키 이스탄불과도 수출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인구 1000만의 서울시에서 구축한 스마트시티 시스템을 바탕으로 해외 시장에 진출하는 것이다.

1990년대 케이블 TV 확대와 함께 급성장했던 디지털 셋톱박스(방송 수신 기기) 업체 휴맥스도 인포테인먼트 등 자동차 전장(電裝·전자장비) 사업으로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휴맥스는 1996년 아시아 최초로 디지털 위성방송용 셋톱박스를 개발하고, 미국·유럽·일본 등 해외 시장 공략에 나서면서 2010년 매출 1조원을 돌파한 대표적 1세대 벤처다.

회사는 지난해 12월 차량용 안테나 국내 시장 점유율 50%가 넘는 위너콤을 인수한 데 이어 올 3월에는 카셰어링(차량 공유)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디지파츠 지분 74%를 270억원에 사들였다. TV가 있는 거실을 벗어나 자동차로 사업의 무게 중심을 옮기고 있는 것이다. 휴맥스 관계자는 "기존 방송·통신사업과 자동차 전장 분야 기술이 유사점이 있는 데다 글로벌 영업 네트워크와 제조 기반을 활용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라며 "최근 인수한 위너콤, 디지파츠와도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보안 시장 1위인 안랩은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 연구에 뛰어들었다. 지난 4월 분당서울대병원과 관련 업무협약(MOU)을 체결하고 연구, 투자 기술 개발 등을 협력하기로 한 것. 1995년 설립 후 보안 프로그램 외 분야로는 사업 확장이 거의 없었던 안랩으로서는 이례적 결정이었다. 안랩은 블록체인 기반 디지털 헬스케어, 의료 IoT(사물인터넷) 기기 보안 연구, 사용자 건강관리 등에서 공동 연구를 진행하기로 했다. 안랩 관계자는 "올 1월 CTO(최고기술책임자) 부문을 신설하고 연구·개발(R&D)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며 "글로벌 수준의 보안 기술력을 바탕으로 디지털 헬스케어 등 신사업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라고 말했다.

◇클라우드 서비스도 눈길

클라우드 서비스 관련 신사업도 잇따른다. 1983년 설립, 국내 벤처 1호로 꼽히는 비트컴퓨터는 회사의 전공인 전자의무기록(EMR) 사업에 클라우드를 결합한 신제품을 내놓으며 사업 확대에 나서고 있다. 과거 병·의원마다 맞춤형으로 시스템을 구축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각 병원이 클라우드에 올려져 있는 각종 서비스 가운데 원하는 것만 골라 쓰고 매월 사용료를 내도록 비즈니스 모델을 바꾸는 것이다. 비트컴퓨터 관계자는 "병원은 비용 부담을 절반으로 낮출 수 있고, 회사도 수의 계약에 비해 이익률을 높일 수 있는 윈윈 모델"이라며 "하반기부터 계약 등 구체적 성과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데이터베이스 관리 등 시스템 소프트웨어 분야 강자인 티맥스는 클라우드 서비스도 준비하고 있다. 지난 4월에는 강원도, 춘천시와 데이터센터 설립을 위한 협약도 맺었다. 티맥스 관계자는 "올해 행정절차를 마무리하고, 내년부터 설계 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라며 "2020년 공사를 시작해 2021년 완공하고 서비스를 시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정민 혁신벤처연구소 부소장은 "이 기업들은 PC와 인터넷 등의 발달을 기반으로 오피스, 보안, 셋톱박스 등 각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고 성장한 곳들"이라며 "또 한 번의 성장을 위해 신기술에 관심을 쏟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