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벤처기업부와 중소기업중앙회는 지난 5월 100년 가는 중소·중견기업을 육성하자는 취지로 ‘명문 장수기업’ 4곳을 선정했다. 심사위원회는 45년 이상의 중소·중견기업을 대상으로 일자리 창출, 성실 납세, 법규 준수, 연구개발비 비중, 사회공헌 등을 평가해 지난해 6곳에 이어 올해 이 4개사를 선정했다. 본지는 올해 선정된 명문 장수기업 최고경영자(CEO) 인터뷰 기사를 시리즈로 싣는다.

"대한민국 최초의 전광판 회사에서 이제 세계 최고의 디스플레이 회사로 커 나가겠습니다."

지난달 23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본사에서 만난 이재환(76) 삼익전자공업 사장은 "스포츠 경기장용과 광고용 옥외 전광판을 넘어 쇼핑몰 미디어아트, 공항 안내용 전광판 등으로 시장을 확대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1969년 우리나라 최초의 전광판 전문업체로 출발한 삼익전자공업은 올림픽, 월드컵, 아시안게임 등 국내에서 열린 굵직굵직한 스포츠 이벤트마다 빼놓을 수 없는 역할을 해온 기업이다. 88서울올림픽 때에는 잠실주경기장과 야구장에 전광판을 공급했고, 2002 한·일 월드컵 땐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을 비롯해 대구, 광주, 제주 경기장에 제품을 설치·운영했다.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때도 주경기장 전광판은 삼익전자공업의 몫이었다. 2017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이 열린 고척스카이돔을 비롯해 대구삼성라이온즈파크,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 창원마산야구장 등 전국 18개 야구장에도 삼익전자공업 제품이 설치돼 있다.

27세에 직원 두 명과 시작

그는 지난 1969년 다니던 광고회사를 그만두고 창업의 길에 들어섰다. 우연히 카탈로그에서 본 해외 야구장 전광판 사진이 그를 움직였다. 이 사장은 서울 서대문 집을 담보로 100만원을 대출받고, 지인들에게도 자금을 빌려 직원 두 명과 함께 사무실을 차렸다. 이 사장은 "지금으로 치면 가능성만 믿고 스타트업(초기 벤처기업)에 뛰어든 것"이라며 "당시 국내에는 경기장이라고는 서울에만 몇 곳 있는 게 다였지만 5년, 10년 뒤는 다를 것이라는 생각으로 버텼다"고 말했다.

지난달 29일 인천 부평구 청천동 공장에서 이재환 삼익전자공업 사장이 대형 전광판에 LED(발광다이오드) 모듈을 조립하는 모습을 시연하고 있다. 가로·세로 24㎝인 작은 모듈 하나에는 빛을 내는 LED 소자 256개가 들어 있다.

1970년 서울운동장(동대문운동장)에 국내 최초 전광판을 설치한 데 이어 1973년에는 전국체전을 여는 부산구덕운동장 납품에 성공했다. 1977년 설치한 국내 1호 컴퓨터 주식시세판은 회사 성장의 발판이 됐다. 이 사장은 "1976년 대신증권이 일본에서 주식시세판을 수입한다는 소식을 듣고 일본 제품의 70% 수준인 4000만원에 납품하겠다고 했지만 믿지를 못하더라"며 "제가 직접 고(故) 양재봉 회장님을 찾아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대금을 받지 않겠다고 제안해 주문을 받아냈다"고 말했다. 이후 대신증권 전국지점에 시세판을 설치하면서 5년간 해당 매출만 200억원에 달했고, 이를 발판으로 국내 주식시세판 시장의 80%까지 장악할 수 있었다. 이 밖에 1980년 지하철 2호선에 처음 설치한 지하철 행선 안내 게시기, 1982년부터 마라톤 중계 때마다 등장하는 차량 전광시계도 삼익전자공업이 국내에서 최초로 선보인 제품이다.

삼익전자공업은 국내 전광판 산업을 이끌어온 기업답게 한글 표시와 관련한 특허도 갖고 있다. 이 사장은 "1970년대 당시 타자기에 쓰이던 글자 표시 방식으로는 전광판에서 한글이나 한자를 제대로 표현하기 어려웠다"며 "가로 10칸, 세로 15칸 모눈종이 위에 많이 쓰는 글자 4000자를 하나하나 그려가며 개발한 끝에 1980년 관련 특허를 받았다"고 말했다. 삼익전자공업은 모듈 제작부터 화면을 구동하는 소프트웨어 설계, 현장 설치까지 모두 서비스하는 국내 유일한 업체다. 1970년대에는 백열전구, 이제는 1㎜ 크기 LED(발광다이오드) 칩으로 모듈을 만든 뒤 이를 이어 붙여 가로 가로·세로 수십m 크기 전광판을 만든다.

"고객이 다시 찾는 제품 만든다"

이 사장은 "(자신이) 가장 중시하는 경영철학은 신뢰"라고 했다. 한 번 삼익전자 제품을 산 고객이 20년 이상 안심하고 쓰고 다시 삼익에 주문하게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삼익전자공업이 1982년 처음 설치한 잠실야구장 전광판은 1998년에 이어 2009년 교체까지 전담했고, 상암월드컵경기장 전광판도 한·일 월드컵을 앞둔 2001년 설치한 이후 17년 만인 올 5월 다시 수주했다. 2016년 경기 과천경마공원에 설치한 가로 127.2m, 세로 13.6m 초대형 전광판은 세계 최대 규모다. LED 소자만 3300만개가 들어간 전광판이다.

지난해 매출은 인천공항 제2여객터미널 대형 전광판 등 신규 수주가 늘어나며 400억원에 달했다. 올해는 450억원까지 확대하는 게 목표다. 이 사장은 "영국 프로축구 우승팀인 맨체스터시티의 홈 경기장과 노르웨이 로젠버그BK의 스타디움 전광판도 우리 제품"이라면서 "세계 최고 품질의 명품 제품으로 해외 시장으로 나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