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경제 정책의 싱크탱크 역할을 하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문재인 대통령의 ‘2020년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문 대통령의 “최저임금 긍정 효과 90%” 발언 이후 통계 근거 논란이 확산된 가운데 KDI는 4일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올해 최저임금 인상(16.4%)에 따른 일자리 감소 영향은 크지 않았다고 분석하면서도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을 위해 2019년과 2020년에 15%씩 최저임금을 올리면 2019년 9만6000명, 2020년 14만4000명 고용이 감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향후 2년간 24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지는 고용 한파가 몰아칠 수 있다며 최저임금 인상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고 주문한 것이다.

연합뉴스

KDI는 “내년과 내후년에도 최저임금 대폭 인상이 반복되면 임금중간값 대비 최저임금 비율이 그 어느 선진국보다 높은 수준에 이르면서 고용 감소폭이 커지고 임금 질서가 교란돼 득보다 실이 클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인상 속도를 조절하는 방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대선 기간 동안 ‘2020년까지 시간당 최저임금 1만원 달성’을 약속했다. 이에 정부는 올해 시간당 최저임금을 7530원으로 지난해(6470원)보다 16.4% 올렸다. 이는 지난 5년간 평균 인상률인 7%의 두배를 넘어선 수준이다. 그러나 2~4월 취업자수 증가폭이 10만대 초반에 그치는 등 고용 한파 조짐을 보이면서 과도한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정부가 문 대통령의 공약을 이행하려면 내년과 내후년에도 최저임금을 평균 15% 이상 인상해야 하는 상황이다.

KDI 분석에 따르면 올해 최저임금은 임금 중간값(전체 임금 근로자를 임금 순서대로 배열했을 때 중간 순위에 해당하는 임금)의 55% 수준이다. 내년과 내후년 최저임금을 15%씩 인상할 경우 이 비율은 각각 61%, 68%로 올라간다. 이 수준은 유럽에서도 이 비율이 가장 높은 프랑스의 60%보다도 높다.

문제는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최저임금의 120% 수준 미만으로 받는 임금 근로자 비중이 급격히 높아지면서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일자리 감소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이다. KDI의 분석에 따르면 전체 근로자 대비 최저임금 120% 미만의 근로자 비중은 올해 17%에서 2019년 19%, 2020년 28%로 급상승한다. 프랑스는 최저임금이 2005년 임금중간값 60%에 도달한 이후 추가 인상을 멈췄는데, 최저임금을 계속 인상한다면 임금질서의 교란으로 득보다 실이 많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KDI는 설명했다.

KDI는 내년과 내후년 최저임금을 15% 인상할 경우 사업주의 부담이 커지면서 2019년 고용 감소 규모가 최대 9만6000명, 2020년에는 최대 14만4000명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KDI가 예측한 고용 감소 규모는 정부의 일자리안정자금(영세 사업장의 최저임금 인상분을 정부가 일부 지원해 주는 제도)이 없는 경우를 가정한 것이다.

KDI는 또 최저임금이 내년 이후에도 15%씩 인상될 경우 고용 감소와 함께 노동 시장 임금 질서 교란도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서비스업 저임금 단순 노동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단순 기능 근로자의 취업이 어려워 지며,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으로 하위 약 30% 근로자가 동일한 임금을 받으면서 지위 상승 욕구가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KDI는 최저임금을 매년 15%씩 계속 인상할 경우 일자리안정자금 같은 정부 지원금도 급속히 확대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올해 일자리안정자금 규모는 3조원이다. 더구나 사업주는 이같은 정부 지원금을 받기 위해 근로자들의 임금을 오히려 더 인상하지 않는 부작용도 발생한다고 밝혔다.

다만 KDI는 올해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고용 감소 효과는 아직 미미하다고 주장했다. KDI는 지난해 보다 16.4% 오른 올해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고용 감소 규모는 최소 3만6000명, 최대 8만4000명일 것으로 추정했다.

KDI는 올해 4월까지 고용 동향을 살펴 보면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고용 감소 효과가 이런 전망치 만큼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KDI는 최저임금이 적용되는 임금 근로자 증가폭(전년대비)이 올해 1월(32만명)에서 4월(14만명)으로 18만명 축소했지만, 인구가 감소하는 추세를 감안하면 실제 감소한 고용 규모는 7만명이라고 주장했다. 올해 1월 32만명 임금 근로자 증가폭은 이례적으로 높았던 것이며, 2017년 연평균 증가폭이 26만명인 것을 고려하면 1~4월 증가폭 축소는 12만명(26만명-14만명)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전년 대비 인구 감소로 인한 1~4월 임금 근로자 축소를 5만명으로 계산하면 실제 증가폭 감소는 7만명이라는 설명이다. KDI는 이 마저도 제조업 구조조정 등을 감안하면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고용 감소 규모는 더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또 KDI는 최저임금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는 15~24세 근로자와 50대 여성, 고령층 근로자의 고용 감소가 크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올해 4월 전체 근로자 중 15~24세 남녀 근로자 비율은 24.7%로 전년(26.3%) 대비 1.6%포인트 감소했는데, 이 기간 15~24세 남녀 실업률이 2%포인트 하락했기 때문에 단순히 최저임금 인상 영향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아울러 전체 근로자 중 50대 여성 임금 근로자 비율은 44.0%로 전년(43.3%)보다 오히려 0.7%포인트 증가했다고 언급했다.

KDI는 “2018년 4월까지의 고용 동향을 보면 최저임금 인상의 고용 감소 효과는 전망치(최소 3만6000명~최대 8만4000명)만큼 나타나지 않고 있다”며 “정부가 도입한 일자리안정자금 효과이거나 최저임금 영향이 추정치 보다 작은 것인데, 아직 어떤 영향인지 정확하게 말하긴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