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보다 매출은 줄었는데 인건비는 늘었어요. 직원 더 뽑기는커녕 구조조정을 검토 중입니다."

경기 안산 반월국가산업단지에서 금속 가공 기계 등을 만드는 A사(社)는 정부로부터 기술력을 인정받아 여러 차례 산업 훈장을 받은 '강소(强小)기업'이다. 20여명 직원이 매년 약 5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A사는 올해 초 영업력을 높이고 생산량도 늘리기 위해 인력을 보강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올해 1~4월 매출이 작년 같은 기간의 80%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채용 계획은 미뤄졌다. A사 임원은 "제조업 경기 위축으로 주문이 줄어 생산량은 줄고, 최저임금의 급격한 상승으로 인건비 부담은 커져 사람을 내보내야 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공장 출입문에 자전거 자물쇠 - 지난달 8일 부산광역시 강서구 녹산공단 내에 있는 조선기자재 납품 업체의 공장 출입문이 자물쇠로 잠겨 있다. 이 공장은 조선업 경기 하락으로 어려움을 겪다가 부도가 났고, 최근 법원에서 공장 건물에 대한 경매가 진행됐다.

같은 산업단지에서 건축용 철재 등을 생산하는 B사는 최근 공장을 임차료가 싼 경기도 화성으로 옮기기로 했다. 외국인 노동자를 상당수 채용하고 있는데, 올해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건비가 많이 들고 있다. 최근 건설 경기도 하강 중이다.

중소기업이 모여 있어 한국 제조업의 주춧돌이라고 불리는 산업단지가 위기를 맞고 있다. 한국산업단지공단에 따르면 올해 2월 기준 국가산단 가동률은 75.7%다. 작년 2월(80.8%)보다 5.1%포인트 떨어졌다. 전체 94%를 차지하는 직원 50인 미만의 '풀뿌리' 기업 가동률은 58.1%에 불과하다. 제조업이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10년 전인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때만큼 어렵다는 말도 나온다.

가동률 50~60%대 산단도 등장

지난달 말 찾은 경기도 안산시 반월·시화 국가산업단지의 교차로 가로수에는 '공장대지 급매' '공장 임대' 등이 적힌 현수막이 수십개씩 걸려 있었다. 공장 문은 열려 있지만 작업장 문이 닫혀 있거나 주차장이 비어 있는 '개점휴업' 상태의 공장도 보였다. 벤처기업이 모인 아파트형 공장에도 빈 공간이 많았다. 반월산단 내 한 식당 주인은 "여기서 식당을 3년 운영했는데 올해처럼 장사가 어려운 적은 없었다"며 "작년 말보다 손님이 30% 이상 줄었다"고 말했다. 안산상공회의소 관계자는 "최근 3~4년간 제조업 불황이 이어졌는데 상황이 나아지진 않고 최저임금 상승에 환율 하락까지 겹치다 보니, 공장주들은 이젠 어렵다고 말을 할 힘도 없다"고 말했다.

비수도권 산업단지 상황은 더 심각하다. 대기업 공장의 해외 이전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경북 구미국가산단은 현재 가동률이 65.7%다. 조선 기자재와 자동차 부품 공장이 많은 부산 강서구 녹산국가산단 가동률은 58.2%에 불과하다. 녹산산단 인근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공인중개사는 "부도나거나 법정관리에 들어가는 기업이 늘면서 팔려고 나오는 공장이 증가했지만 거래는 잘 안 된다"고 말했다.

제조업 대기업 부진, 인건비 증가 탓

어려움의 가장 큰 원인은 조선·자동차 등 제조업 대기업의 실적 부진 때문이다. 반도체·석유화학 등이 상대적으로 실적이 좋다고 하지만 장치 산업이라 노동력 투입이 적다. 반면 조선과 자동차는 고용 효과가 크고 협력업체도 많다. 대기업이 국내 공장 가동을 중단하거나 공장을 해외로 이전하면 국내 중소기업은 일감이 준다. 유환익 한국경제연구원 혁신성장실장은 "최근 대기업은 생산과 설비투자를 줄이고 있고 보호무역주의로 수출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과 원화 강세도 원인이다. 안산 시화산단 부품업체의 한 임원은 "수출 회사는 원·달러 환율이 1150원 정도는 돼야 살 수 있는데, 현재 환율이 1070원대라서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다"며 "최저임금과 금리 인상으로 인건비, 이자 비용도 늘었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 공장 사장들끼리 모여서 하는 소리는 '외국으로 나가거나 사업을 접어야 한다'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이경상 대한상공회의소 경제조사본부장은 "국내 중소기업 절반이 대기업 납품 회사로, 개발·혁신 능력이나 제조 비용 등에서 국제 경쟁력은 떨어지는 게 사실"이며 "그간 인건비 등 비용을 줄이면서 간신히 버텨왔는데, 임금 상승으로 한계 상황에 놓인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소기업 대표 김모(56)씨는 "정부가 강조하는 일자리를 늘리려면 기업이 활발히 움직여야 하는데, 현 정부는 근로자 소득을 늘린다면서 고임금만 강조해 기업의 비용만 늘려놓고 있다"고 말했다. 김경만 중소기업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중소기업 실태 조사 결과, 작년에는 경영 애로 사항으로 '내수 부진'을 가장 많이 꼽았지만 올해는 '인건비 상승'이 1위를 차지했다"며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현행 3개월에서 6개월~1년까지 확대하고, 내년 최저임금 인상도 최소화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