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는 2016년 이른바 '알파고(AlphaGo) 쇼크' 이후 인공지능연구원(AIRI)을 설립했다. 민·관 합작으로 만들어진 독일 인공지능연구소(DFKI)를 벤치마킹해 정부가 설립을 주도하고 SK텔레콤·삼성전자·LG전자 등 대기업 7곳이 30억원씩 출자했다. 알파고를 통해 인공지능(AI)의 엄청난 위력을 실감한 정부와 기업이 힘을 합쳐서 선진국을 따라잡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정권교체 전후로 AIRI에 대한 정부 지원이 중단됐다. AIRI는 만들 때에도 기술 발전과 미래에 대한 심각한 고민 없이 졸속으로 만들었고 정부가 바뀌면서는 적폐 취급을 받은 것이다. 10~20년 뒤를 보고 해야 할 기술 투자가 정치 논리와 시류에 따라 왔다갔다하는 것이다. AIRI는 당초 계획과 달리 기업으로부터 단기 프로젝트를 수주해 근근이 연명하고 있다. 연구 인력도 처음 계획했던 200명의 10분의 1에 불과해 제대로 된 AI 연구를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김진형 AIRI 원장은 "정부 주도로 만든 인공지능 연구소가 예산과 인력 모두에서 낙제점 수준"이라고 말했다.

IT(정보기술) 업계에서는 정부의 4차 산업혁명 관련 예산 지원도 지나치게 보수적으로 운영된다는 지적이다. 한 예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한국연구재단은 지난해 말 AI·빅데이터 분야 '국가 전략과제'를 공모했다. 당시 연구재단은 "국가가 AI와 빅데이터 분야 신기술 개발을 지원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하겠다"고 취지를 밝혔다. 선정된 과제에는 최대 5년간 매년 1억~3억원씩의 정부 예산을 지원한다. 하지만 최종 선발된 161곳은 모두 정부 출연 연구소와 대학이었고, 기업이나 스타트업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수퍼컴퓨팅 기업 클루닉스 관계자는 "정부 과제에 새로운 기술을 제안하면 실현 가능성이 낮다며 지원하지 않는다"면서 "이런 구태의연한 원칙만 지키면 혁신적인 기술은 나오기 힘들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