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9일 중국 저장성 항저우(杭州) 공쇼구에 있는 항저우 제11 중학교. 학생들은 점심시간에 식당으로 가 순서대로 배식구에 있는 카메라에 얼굴을 댔다. 1∼2초 지나자 모니터에 '결제가 완료됐다'는 표시가 뜨고 곧바로 조리사들이 음식을 내줬다. 이 학교는 작년 10월 중국 알리바바가 개발한 얼굴 인식 인공지능(AI) 결제 서비스를 도입했다. 학생들은 자기 얼굴을 카메라로 찍어 결제 시스템에 미리 등록만 하면 된다. 식당 바로 옆 음료수 자판기에도 안면 인식 AI 결제 기능이 담겨 있었다. 음료를 선택하고 자판기를 쳐다보면 자동으로 음료가 나오고 학생 카드에서 돈이 차감된다.

이 학교는 학생들이 받는 수업 내용이나 참여도까지 안면 인식 AI로 분석한다. 교실에 설치된 카메라 3대는 학생들의 표정 변화나 읽기·쓰기·듣기·서기·손들기·졸기 등 6가지 행동을 실시간으로 분석해 교사들의 수업 능력과 참여도를 판단한다. 예를 들어 수학 시간에 학생들이 많이 웃고 손을 많이 들면 AI가 "수학 수업은 학습 질이 높다"고 판단하고, 무표정하거나 조는 학생이 많으면 개선이 필요하다고 조언해준다.

지난달 18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21세기 중국 베이징 국제 하이테크 엑스포’에서 관람객들이 학교 교실에 설치돼 있는 얼굴인식 인공지능(AI) 기술을 보고 있다. 항저우의 제11 중학교에서는 교실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학생들의 얼굴·표정 변화, 수업 참여도 등을 AI가 분석해 교사들의 수업 능력과 학생들의 집중도 등을 판단하고 있다.

인터넷 기업 구글의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가 등장한 지 3년 만에 AI는 이미 세계인의 삶 곳곳에 파고들고 있다. AI가 스마트폰과 가전제품에 탑재되는 수준을 넘어서 집과 사무실, 방범시스템 등 도시 전체로 확산되고 있다.

신용평가부터 근무관리까지 삶에 밀착

중국 2위 생명보험사인 핑안보험은 대출을 신청한 사람들의 신용도를 판단하는 데 AI를 활용한다. AI가 대출 신청자에게 "대출 상환 계획은 어떻게 되느냐" "현재 소득 수준은 얼마냐" 등의 질문을 하고, 답변하는 대출 신청자들의 표정 변화, 눈썹·입술 움직임 등 50여 가지의 특징을 파악해 클라우드(가상 저장공간)에 저장돼 있는 빅데이터와 비교·분석한다. 이를 통해 대출자가 얼마나 정직하게 말하는지 판단해 신용 등급을 책정한다. 소득 수준이 높아도 거짓말을 했거나 거짓말로 의심되는 사람에게는 더 높은 금리를 책정한다.

미국의 소프트웨어 업체인 워크데이는 직원들의 근무 상태부터 이직 여부를 스스로 판단하는 AI를 개발해 기업들에 제공한다. 워크데이의 AI는 임직원들의 급여, 출퇴근 시각 체크부터 상사와의 관계가 어떤지, 업무에 얼마나 몰입하는지 등 총 60여 가지의 데이터를 분석해 근무 상태를 판단한다. 이를 통해 직원들의 이직 가능성에 대해서도 파악한다. 우수 인재(人材)가 회사를 떠날 가능성이 있다는 평가가 나오면 관리자가 애로 상담 등 대응에 나선다.

미국의 바이오·소비재 기업인 존슨앤드존슨과 유럽의 대표 소비재 기업인 유니레버는 직원 선발에 AI를 적용한다. AI는 지원자들이 제출한 이력서를 분석해 허위 여부를 판단하고, 지원자의 경력이 실제 업무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면접관들에게 알려준다. 이 기업들은 AI를 활용하면서 이력서를 검토하는 데 쓰는 시간을 4분의 1로 줄였고, 입사 지원부터 최종 합격까지 걸리는 시간도 평균 4개월에서 4주 미만으로 대폭 줄였다.

AI로 공공 치안 확보하고, 인프라 관리

미·중 정부는 공공 인프라 영역에도 AI를 대폭 적용하고 있다. 미국 최대의 전자상거래 기업 아마존이 개발한 얼굴인식 AI인 '레코그니션 서비스'는 공공 치안 영역에 쓰인다. 미국 오리건주 워싱턴카운티와 플로리다주 올랜도 경찰 당국은 지명수배자 명단과 사진 데이터를 AI로 분석한다. 그다음 도시 곳곳에서 설치된 CCTV에 찍힌 사람의 얼굴 영상과 대조해 범죄자를 가려낸다.

중국 선전(深圳), 광저우(廣州) 등에서도 경찰 당국이 얼굴 인식 AI를 활용하고 있다. 지난달 중국 저장성에서 열린 한 콘서트장에서는 사기 혐의로 지명수배됐던 한 남성이 얼굴 인식 AI에 적발돼 검거되기도 했다. 영국의 최대 통신업체 보다폰은 AI를 활용해 통신망(網) 장애 발생 여부를 미리 예측한다. 사용자들의 밀집도, 데이터 사용량 등을 분석해 장애가 일어날 만한 지역의 통신망이나 장비를 미리 업그레이드해 불편을 최소화하는 식이다. 미국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의 무랄리 고팔라크리시나 스마트 시티·로봇 사업 총괄은 "2∼3년 뒤에는 AI가 도시를 관리하고, 범죄 발생을 예측하는 SF(공상과학) 영화 같은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