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정책을 믿고 주택 구입 대신 공공 임대를 택했습니다. 저 같은 서민들에게 '무리하지 말고 천천히 돈 모아서 집 사라'고 만든 제도였으니까요. 그런데 한 해도 안 거르고 보증금·월세를 5%씩 올린 걸로도 부족해서, 애초 가격의 3배 가까이 내고 분양받거나 싫으면 나가라는 건 너무한 거 아닙니까?"

경기 성남시 분당구 판교신도시 M아파트에 사는 김경희(71)씨는 내년 1월이면 10년간 살아온 집에서 이삿짐을 싸야 한다. 현재 거주 중인 임대아파트(전용면적 80㎡)가 분양 전환되기 때문이다. 현 세입자에게는 우선적으로 분양받을 권리가 있지만 무용지물이다. 10년 임대 제도는 '시세 수준의 분양 대금'을 내도록 돼 있는데, 판교 아파트값이 급등했기 때문이다. 주변 시세대로라면 분양가는 약 10억원이 된다. 입주 당시 분양가는 3억원대 후반이었다.

12월부터 분양전환이 시작되는 경기 판교신도시 '10년 공공아파트 단지'. 이들 단지 세입자들은 입주 10년이 되는 시점에 최대 10억원을 내고 집을 사든지 이사를 가야 한다.

당시 김씨는 임대 보증금만 2억4000만원을 냈다. 김씨는 "정부를 믿을 게 아니라 무리해서라도 그때 집을 사야 했다"며 "이제 와 어디서 목돈 수억원을 구하느냐"고 말했다.

판교신도시에 공급된 '10년 임대아파트' 1만1000여 가구의 첫 분양 전환 시점이 임박하면서 '분양 전환 가격' 논란이 커지고 있다. 판교 아파트값이 급등하면서 입주자 부담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민간 건설사가 공급한 단지들은 지난 9년간 임대료도 매년 상한선 가까이 인상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막판에 과도한 계산서… 잘못된 제도

10년 공공 임대주택은 정부가 LH(한국토지주택공사) 또는 민간 건설사에 공공 택지와 기금 등을 지원해 아파트를 지으면, 자금이 넉넉지 않은 주택 구입 희망자는 일단 시세보다 싼 임대료로 세 들어 살다가 10년 뒤 우선적으로 분양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제도의 취지는 '무주택 서민의 주거 안정과 점진적 자가(自家) 소유 촉진'.

제도 도입 직후 판교에서 대대적 입주자 모집이 이뤄졌다. 당시 판교에 공급된 임대아파트는 2008년 371가구를 시작으로 2014년까지 총 1만1441가구 규모였다. 이 아파트들이 올해 12월 B아파트를 시작으로 2024년까지 모두 분양 전환된다.

문제는 소비자 처지에서 10년 임대의 분양 전환 조건은 5년 임대에 비해 불리하다는 점이다. 임대주택법상 5년 임대 분양 전환가는 '건설 원가와 감정평가액의 중간값'이다. 이에 비해 10년 임대의 분양 전환가는 '감정평가 금액 이하'로만 규정돼 있다. 감정평가액은 대개 실제 가격의 약 95% 수준에서 결정된다.

판교 집값 급등이 문제를 키웠다. 판교 일반 아파트인 H단지 전용 84㎡는 2009년 분양가는 3억8000만원이었지만, 지난달 실거래가는 9억9500만원이었다. 9년 새 2.6배가 됐다. J아파트 입주자 윤모씨는 "정부는, 놔둬도 될 민간 아파트 가격이 오르는 데에는 수시로 개입하면서, 정작 책임져야 할 임대주택 분양가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뭘 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은 "10년 임대는 입주자가 분양 전환 시점에 한꺼번에 '과도한 계산서'를 받도록 돼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입주자들 사이에서는 임대 기간의 임대료 상승 폭에 대한 누적된 불만도 터져나온다. 특히 공공 임대에 참여한 민간 건설사들이 매년 법정 상한선인 5%씩 꼬박꼬박 올렸다는 것이다. 실제로 M아파트는 9년간 보증금은 55%, 월 임대료는 46%를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입주 포기자 속출 우려, 정부 나서야"

입주자 불만은 정치권까지 향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작년 대선을 앞두고 '10년 임대 제도 개선'을 약속했다. 하지만 그해 11월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주거 복지 로드맵'에 '10년 공공 임대 분양 전환 시 임차인 협의 의무화'라는 표현이 들어간 것 외에 특별히 달라진 게 없다. 업계에서는 "'협의'는 뜬구름 잡는 소리로, 무책임한 대책"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로 로드맵 발표 이후에도 LH 등은 이제 와서 제도 변경은 곤란하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LH 관계자는 "서로 알고 계약한 사항"이라며 "여론에 밀려 분양 전환가 산정 기준을 바꿔놓으면 앞으로 건설사들은 위험 부담이 큰 장기 임대주택 사업에 참여하지 않으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LH도 재무 상태가 열악하다. 부채 비율이 306%로 공기업 가운데 가장 높아, 정부 '중점 관리 대상'으로 포함돼 있다. LH는 최근 "74조원인 부채를 올해 60조원대로 낮추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분양가를 낮추면 목표 달성은 그만큼 어려워진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는 "정책 안정성 차원에서 정부가 의지를 가지고 대책 마련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