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7일 오후 중국 광저우(廣州)시 하이주구에 있는 광둥성 제2인민병원. 병원을 찾은 환자들은 창구에 접수하는 대신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곳에는 지난 3월부터 중국 최초로 인공지능(AI) 의료 시스템이 전면 도입됐다. 량하이옌(37)씨가 AI 의사 다바이(大白)와의 모바일 메신저 위챗 채팅창을 열고 '더부룩한 통증', '속이 메스꺼움', '복부 팽만'이라고 입력하자 다바이는 세부 증상에 대한 질문을 쏟아냈다. 약 3분간 채팅 문진(問診)을 마치자 다바이는 "94.33%의 확률로 만성 위염이 의심되니 소화내과를 찾으라"며 진료 예약을 잡아줬다.

다바이는 광둥성 정부와 중국 인터넷 기업 텐센트, 홍콩과기대 등이 공동으로 3억명의 진료 기록과 10만건 이상의 수술 기록을 이용해 개발한 AI 의사다. 리관밍 광둥성 제2인민병원 부원장은 "현재 다바이는 일반 지역 병원에서 환자들이 주로 호소하는 200여 개 증상에 대해 정확한 병명을 진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병원에서는 지난해 국가의사면허시험을 통과한, 중국 스타트업(초기 창업기업) 아이플라이텍의 AI 의사 '샤오이(小醫·꼬마 의사)'도 활용한다.

중국에서 확산되고 있는 AI 의료는 4차 산업혁명이 몰고 올 거대한 변화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이다. 인공지능·빅데이터·자율주행차·드론(무인기)·로봇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은 빠른 속도로 전 세계인의 삶을 바꾸고 있다. 스마트폰마다 AI 비서가 탑재돼 있고, 운전자가 없는 자율주행차 수천대가 전 세계 곳곳을 달리고 있다. 사람이 없는 무인(無人) 공장과 배달 로봇도 현실화됐다. AI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가장 전문적인 영역으로 꼽히는 의료 분야에까지 진출한 것이다. 중국에서는 아예 병원을 찾지 않고 스마트폰으로 의사의 진단을 받는 원격의료 서비스 가입자가 이미 1억명을 넘어섰다.

'세계의 공장'으로 불렸던 중국이 AI와 원격의료 분야에서 세계 최강인 미국을 따라잡으며 양강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기업의 신기술을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규제를 완화해 13억명에 이르는 내수 시장을 거대한 신기술 시험장으로 만든 덕분이다.

반면 중국보다 앞선 의료기술과 IT(정보기술) 인프라를 갖춘 한국은 이 분야에서 걸음마도 제대로 떼지 못하고 있다. 개인정보보호법, 의료법 등 산적한 규제 때문에 세계 최초 기술을 개발하고도 업체들은 고사 위기에 처해 있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에 따르면 규제개혁위원회에 등록된 바이오 분야 규제는 1163건, 이 중 보건·의료 분야 규제만 553건이나 된다. 그 결과 중국은 AI 의료 전문 업체가 131개에 이르지만 한국은 6개에 불과하고 그나마 기술을 상용화한 곳은 한 곳도 없다.

서울대 이정동 교수(산업공학)는 "AI 의료에서 볼 수 있듯이 한국이 미국·중국 등 4차 산업혁명에서 이미 앞서가는 나라와 경쟁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기업들이 과감한 도전을 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줘야 한다"면서 "급변하는 기술과 산업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한국의 성장판은 영원히 닫혀 버릴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