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스마트폰의 시장점유율 추락은 중국·인도·아프리카 등 신흥 시장에서 시작됐다. 삼성이 빼앗긴 시장은 고스란히 화웨이, 샤오미와 같은 중국 기업들이 차지했다. 2000년대 중반 삼성전자가 글로벌 휴대폰 제조업체로 부상할 당시 중국·러시아·남미 등 신흥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것처럼 10년 만에 똑같은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중국 스마트폰 업체들은 가격 경쟁력을 바탕으로 신흥 시장에서 삼성전자를 밀어내고 강자로 부상하고 있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2011년 샤오미가 처음 스마트폰을 출시했을 때 많은 사람이 중국에서만 반짝하고 말 것으로 생각했다"면서 "하지만 중국 기업들은 풍부한 자본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이제는 유럽 등 선진시장에서도 한국 기업들을 위협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흥 시장, 중국에 모두 1위 내줘

삼성전자는 최근 3년 새 인구 10억명 이상의 거대 시장인 중국과 인도, 아프리카에서 모두 1위를 내줬다. 특히 중국은 2013년만 해도 현지에서 팔리는 스마트폰 5대 중 1대가 삼성폰(점유율 19.7%)이었지만 현재는 1%대로 급락했다. 작년 4분기에는 0.8%라는 충격적 점유율을 기록했다. 삼성 내부에서도 "참담하다" "백약이 무효하다"는 말까지 나왔다.

삼성은 지난 3월 갤럭시S9을 출시하면서 올해 1분기에 간신히 1.3%로 올라섰다. 삼성전자가 총력전을 펼친 끝에 아이폰을 노골적으로 베낀 중국 군소 브랜드 샤오라자오(小辣椒·작은 고추라는 뜻)와 점유율이 같아진 것이다. 연간 4억6000만대의 스마트폰이 팔리는 중국 시장 1~4위는 현재 화웨이·오포·비보·샤오미 등 중국 업체가 싹쓸이했다.

이란의 한 휴대폰 상점에서 직원이 스마트폰을 진열하고 있다. 윗줄 왼쪽부터 중국 화웨이와 미국 애플의 아이폰, 삼성의 갤럭시 시리즈가 나란히 놓여 있다. 삼성전자 스마트폰은 중국을 비롯해 중동·인도·아프리카 등 신흥 시장에서 지속적인 점유율 하락세를 나타내고 있다.

인구 13억명의 인도 시장에서도 작년 4분기에 처음으로 중국 샤오미에 1위를 내줬다. 샤오미는 올 1분기에도 정상을 지키며 삼성과 점유율 격차를 5%포인트로 더 크게 벌렸다. 샤오미는 20만원대 가격에도 성능이 뛰어난 이른바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가 좋은 폰을 선보이며 인도 소비자들을 빠르게 사로잡고 있다. 샤오미는 연내 인도에 스마트폰 공장 3곳을 더 설립하고 매장도 100곳을 더 여는 등 확실한 1위 굳히기에 들어간다는 계획이다. 아프리카 스마트폰 시장에서도 삼성전자(점유율 27%)는 지난해 중국 전자업체 트랜션(Transsion)이 보유한 브랜드인 테크노·아이텔의 합산 점유율(28%)에서 뒤졌다.

중국은 이제 신흥 시장을 넘어 프리미엄 시장인 유럽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고 있다. 온라인 판매 중심으로 성장해온 샤오미는 이달에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 오프라인 시장에 진출한다고 선언했다. 화웨이는 작년부터 신제품 발표회를 독일 뮌헨·베를린, 프랑스 파리에서 열며 유럽 시장을 적극 공략 중이다. 노키아의 본고장인 핀란드에서는 화웨이가 작년 3분기 깜짝 1등을 차지하기도 했다.

샌드위치 상태… 국내 상황도 발목

문제는 돌파구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계 스마트폰 시장은 연간 15억대 안팎에서 성장이 멈췄고 소비자들의 제품 교체 주기도 점점 길어지고 있다. 애플과 벌이는 경쟁인 줄만 알았던 프리미엄 시장에서는 화웨이·오포·비보가 세계 최초 기술을 잇따라 선보이며 틈새를 파고들고 있다. 저가 시장은 중국 업체에 완전히 주도권을 내준 샌드위치 상태다. 스마트폰 업계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국가 안보를 이유로 막고 있는 북미(北美) 시장마저 열리면 삼성전자의 세계 시장점유율은 10%대로 추락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위기 대응력은 갈수록 취약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위기 돌파를 위해서는 과감한 투자를 통해 끊임없는 혁신을 단행해야 하지만 지배구조 개선 요구 등 사업 외적인 요소에 발목이 잡혀 있다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작년 배당과 자사주 매입에 썼던 13조원을 기술 개발에 사용했더라면 스마트폰 시장의 판도가 달라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장 7월부터 시행되는 '주(週) 52시간 근무'로 삼성전자의 가장 큰 장점인 빠른 시장 대응이 힘들어질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차두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연구위원은 "삼성은 스피디한 제품 개발과 출시로 애플에 버금가는 브랜드로 성장했다"면서 "삼성은 여러 중복된 규제로 장점을 잃어가는 반면 중국 기업들은 삼성의 성공 방정식을 따라 하며 삼성을 앞지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