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꿈이라도 꾼 거 같습니다. 불과 석 달 전만 해도 어떤 손님은 커피까지 사다주며 '로열동 33평 매물이 17억원 초반에만 나오면 연락 달라'고 했었는데, 이젠 15억원대 매물도 쳐다보질 않네요."

24일 서울 송파구 잠실엘스 아파트 전문 중개업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 아파트는 2008년 9월에 입주한 5600여 가구 대단지 아파트다. 올 초부터 정부의 규제 집중포화를 맞은 재건축 아파트값이 급락 중인 가운데 강남권 대단지 아파트값도 최근 잇달아 하락세로 접어드는 것이다. 강남권 집값 하락이 서울 전역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거품 붕괴론'과 '일시적 조정론'이 엇갈린다.

강남 유명 대단지 아파트값 하락

강남권에서 아파트값이 가장 가파르게 떨어지는 지역은 송파구다. 송파에서 단지 규모가 가장 크고 시세 변화를 빠르게 반영해 소위 '송파 대장주'로 불리는 잠실엘스 아파트에서 이번 주 들어 전용면적 84㎡짜리가 최저 14억3000만원에 매물로 나오고 있다. 올 2월에 16억5000만원에 거래됐던 매물과 같은 동(棟), 비슷한 층이다. 14억원대 매물 중에는 지하철역까지 걸어서 5분 정도이거나, 한강공원 바로 앞 동도 있다. A 중개업소 측은 "올랐던 가격을 3억원 이상 토해낸 셈인데도 거래가 쉽게 이뤄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24일 한강 북쪽에서 촬영한 서울 송파구 잠실동의 리센츠아파트(왼쪽)와 엘스아파트. 작년 말부터 시세 급등을 주도하며 ‘잠실 대장주’로 불렸던 이들 아파트 가격은 최근 내림세로 돌아섰다.

이런 상황은 다른 강남권으로 빠르게 번지고 있다. '서초구 대장주'로 통하는 반포자이 아파트는 19억원짜리 전용 84㎡ 매물이 나온다. 지역 B중개업소 관계자는 "최종 실거래가보다 1억~2억원 내린 가격"이라고 했다.

공급 효과에 대출 규제 위력

하락 원인은 복합적이다. 우선 '공급 효과'다. 하락의 진앙(震央)인 송파구는 올해 말 가락동에 9500여 가구 규모 헬리오시티 입주가 예정돼 있다. 고준석 신한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장은 "헬리오시티 입주는 반년 이상 남았지만, 전세로 잔금을 치르려는 집주인들이 세입자 확보를 위해 앞다퉈 전세금을 내렸고, 이것이 가격까지 끌어내리고 있다"며 "여기에 전세 거주자 상당수가 연초에 집을 샀는데, 이는 구매력 있는 수요층이 그만큼 줄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올 1~3월에는 서울 아파트 거래량이 매월 해당월 최다 기록을 세웠었다.

여기에 정부의 대출규제가 '전세 하락→집값 하락'의 과정을 부추긴다. 실제 '현재 월세를 받고 있는 아파트'들이 다른 집보다 싸게 매물로 나오며 가격 하락을 주도하고 있다. 잠실엘스의 경우 14억원대 매물은 대부분 보증금 5000만원에 월세 200만~250만원 세입자가 살고 있다. 이동현 KEB하나은행 부동산자문센터장은 "대출이 집값 40%로 제한되다 보니, 투자자는 주로 전세를 끼고 사려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거품 꺼진다" vs. "조정에 그칠 것"

아직은 하락이 강남권과 중·대형 아파트에서 주로 나타난다. 전용 84㎡ 가격이 내린 반포자이도 전용 59㎡는 여전히 3월 이전 가격보다 오른 가격에 매물로 나오고 있다. 하지만 하락세 확산은 시간문제라는 분석이 나온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전문위원은 "서울 집값은 '강남구가 100이면, 우리 동네는 그 80%는 된다'는 식으로 강남권 아파트 기준의 '키 맞추기' 식으로 움직인다"며 "하락이 확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망은 엇갈린다. 안명숙 우리은행 부장은 "거품이 꺼지고 있는 것"이라며 "보유세 개편 과정 등에 따라 하락 폭이 더욱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이상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위원은 "서울시가 재건축 이주 등을 미뤄뒀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수요가 적어 보이는 것"이라며 "허가 난 재건축 이주를 언제까지 미룰 수도 없거니와, 정부 규제로 재건축 포기 단지가 늘어나고 있어, 결국 새 아파트와 입지 좋은 기존 아파트값은 오를 수밖에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