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경기 회복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는 입장이지만 제조업 재고율이 외환위기 직후 수준으로 가파르게 상승했다. 악성 재고가 쌓이고 있다는 의미다. 3월 제조업 재고율은 114.2%로 1998년 9월(122.9%) 이후 19년 6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특히 올해 1분기(1~3월) 자동차 재고율은 전년 동기대비 36.7%포인트 급등한 153%로 IMF 직후인 1998년 평균 자동차 재고율(159.1%)과 맞먹는 수준이다. 조선·해운 산업 구조조정에 자동차 산업 부진까지 겹치면서 철강(1차 금속)과 금속 가공 재고율도 올해 들어 3개월 연속 증가했다.

재고율은 창고에 쌓은 재고액을 시장에 나간 출하액으로 나눈 것이다. 재고율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팔리지 못해 창고에 쌓여 있는 물건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통상적으로 제조업 재고율이 높으면 경기 하강기에 접어들었다고 본다.

◇ 자동차, 1차 금속, 금속가공 재고 ‘악성’...그나마 반도체는 ‘괜찮은 재고'

23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의 제조업 출하 지수와 재고 지수를 이용해 제조업 재고의 80% 비중을 차지하는 5개 업종(반도체, 자동차, 1차 금속, 금속 가공, 전자 부품)의 재고율을 분석한 결과, 4개 업종(반도체, 자동차, 1차 금속, 금속 가공)의 1분기 재고율이 급등했다. 반도체와 자동차 업종이 1분기 제조업 재고의 절반을 차지했다. 나머지 30%는 1차 금속, 금속 가공, 전자 부품 재고였다.

올해 1분기 반도체 재고율은 116.5%로 지난해 1분기(87.3%) 보다 29.2%포인트 급증했다. 자동차 재고율은 153%로 전년(116.3%)보다 36.7%포인트 늘어났다. 1차 금속은 전년(88.5%)대비 14%포인트 증가한 102.5%를 기록했고, 금속 가공은 128.7%로 지난해 1분기(111.7%)보다 17%포인트 늘었다.

전문가들은 반도체 재고율 증가에 대해선 비교적 ‘괜찮은 재고’로 보고 있다. 수요 증가에 대비해 재고 물량을 늘렸다는 것이다. 통계청 관계자는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계속 오르고 수출 호조세도 이어지고 있어 주문 증가에 대비해 물량을 확보해 놓는 ‘의도된 재고’ 증가”라며 “수요 증가에 대응하는 재고라 악성 재고로 볼 수 없다”고 말했다.

문제는 자동차와 1차 금속, 금속 가공의 높은 재고율이다. 이들 업종의 재고는 최근 제조업 침체와 연관돼 있다. 자동차와 조선·해운 산업의 구조조정이 해당 업종의 재고율을 높이고 있다. 악성 재고다.

2015년 평균 99.7%였던 자동차 재고율은 2016년 120.4%, 2017년 130.7%로 증가하더니 올해 1분기에는 153%까지 치솟았다. 월별로 보면 올해 1월 158.4%를 기록한 후 2월(152.9%), 3월(147.8%) 다소 감소했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전후방효과가 큰 조선 , 해운, 자동차 업종 부진 여파로 1차 금속과 금속 가공 업종의 재고율도 고공행진하고 있다. 조선과 해운, 자동차 연관 산업과 협력업체로 어려움이 전이되고 있는 것이다. 1차 금속 재고율(1월 98.9%, 2월 102.1%, 3월 106.4%)과 금속 가공 재고율(1월 127.7%, 2월 128.8%, 3월 129.6%) 모두 올들어 3개월 연속 증가했다. 통계청 관계자는 “자동차와 조선·해운 산업 부진이 철강 등 1차 금속과 금속 가공 재고 증가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일러스트=조선일보

◇ “제조업 재고율 증가 경기 둔화 보여주는 것”

전문가들은 이같은 제조업 재고율을 예의 주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제조업 재고율 증가가 최근 한국 경제의 부진을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것이다.

최근 제조업 침체는 각종 경기 지표에서 확인되고 있다. 3월 전산업생산은 광공업 생산 부진으로 전월대비 1.2% 감소했다. 이같은 감소율은 2016년 1월(-1.2%) 이후 2년 2개월만에 가장 컸다. 2월부터 4월까지 취업자수 증가폭(전년대비)은 3개월 연속 10만명대에 그쳤다. 이 또한 자동차와 조선업 구조조정으로 인한 제조업 취업자수 감소가 영향을 줬다. 4월 고용보험 가입자 기준 완성차 제조업 취업자수는 전년 대비 1200명 줄었다. 2010년 4월 이후 8년 만에 처음 감소했다.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국산차의 경쟁력 약화와 수출 부진, 한국GM의 구조조정이 한국 자동차 산업의 부진의 주된 요인이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자동차 판매대수 감소율(전년대비)은 지난해 3.1%에서 올해 1분기 6.7%로 확대됐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제조업 재고율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은 경기가 그만큼 둔화되고 있다는 것”이라며 “반도체가 경제를 이끌어 가던 힘이 점차 약해지면서 자동차와 조선업 등 경쟁력이 좋지 않은 사업들로 인해 경기가 하향 흐름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제조업 재고율은 경기를 판단할 때 상징적인 숫자가 될 수 있다”며 “제조업 재고율이 자동차를 중심으로 최근 7~8년간 꾸준히 올라가고 있는데, 우리 나라 제품들의 경쟁력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게 아닌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