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10년이 지난 현재 세계 경제는 완연한 회복세를 구가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와 내년 세계 경제가 각각 3.9%씩 고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위험 신호와 파열음이 들려오고 있다. 미국과 중국 간 힘겨루기는 갈수록 첨예해지고 있고, 아르헨티나·터키·인도네시아 등 신흥국 통화가치는 연일 폭락 중이다. 17일 제9회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ALC)에 모인 경제 전문가들은 성태윤 연세대 교수가 좌장을 맡아 진행한 '갈림길에 선 세계 경제' 세션에서 "세계 경제에 보이지 않는 많은 위협이 다가오고 있다"고 진단했다.

◇"부채 급증하는 중국, 과거에서 교훈 얻어야"

토마스 번 코리아소사이어티 회장은 임계치에 다다른 부채를 세계 경제의 가장 큰 위험 요소로 꼽았다. 그는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 부채가 140%에서 250%로 급등하고, GDP 대비 민간 부채는 30%로 글로벌 금융 위기 당시 미국보다도 훨씬 높은 점을 지적하며 "급격한 부채 증가 뒤에는 늘 안 좋은 결과가 있었다는 교훈을 중국 정부가 역사로부터 배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에 대해서도 "대규모 감세와 적자 재정으로 국가 부채가 계속 늘어날 것"이라며 2028년쯤엔 재정 고갈로 사회보장 절벽이 나타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4월 보고서에서 "수요 확대를 위한 재정 부양은 더 이상 우선순위가 되지 못하며, 각국이 시급하게 부채 감축에 나서야 한다"고 권고한 바 있다.

17일 서울 워커힐호텔에서 열린 제9회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의 ‘위기의 세계화, 갈림길에 선 세계 경제’ 세션 참석자들은 “세계 경제가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다양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고 진단했다. 왼쪽부터 성태윤 연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얀 페터르 발케넨더 전 네덜란드 총리, 로버트 도너 아틀랜틱카운슬 선임연구원, 요시노 나오유키 아시아개발은행 연구소장, 토마스 번 코리아소사이어티 회장, 웨이상진 컬럼비아대 교수.

웨이상진 컬럼비아대 교수(전 아시아개발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의 금리 인상과 보호무역주의 강화가 중기적 관점에서 세계 경제에 가장 큰 변수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미국 정부가 한국 철강 회사들을 압박해 스스로 수출량을 줄이도록 만드는 것처럼 미국이 무역에서 '자발성을 가장한 불법행위'를 저지르고 있다"며 "이런 정책은 미국의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장기적 관점에선 미국과 중국의 경제 규모 역전을 최대 변수로 꼽았다. 웨이 교수는 2036년 중국의 경제 규모가 미국을 추월한다는 연구를 소개하며 "중국이 최대 경제 대국이 되면 지금과는 다른 새로운 무역 규범과 국제통화 시스템이 필요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요시노 나오유키 아시아개발은행 연구소장(게이오대 교수)은 "핀테크 등 금융 기술이 발전하면서 국가 간 자본 흐름의 속도와 환율 변동성이 더욱 높아질 것"이라며 이에 따른 충격을 걱정했다.

◇미·중 무역 갈등 책임론 놓고 설전

미·중 간 무역 갈등의 책임 소재를 두고선 참석자들 간에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과 보호무역주의의 기저에는 '중국이 불공정 무역으로 미국의 일자리를 빼앗아갔다'는 피해의식이 자리 잡고 있다. 이에 대해 번 회장은 "부분적으로만 맞는 말"이라며 "미국의 제조업 일자리가 사라진 이유 중 90%는 자동화 때문이고 10%는 중국 요인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웨이 교수는 "10%가 중국 때문이라는 것도 과장"이라며 "중국에서 중간재를 수입해 미국에서 완제품을 생산하는 기업들이 고용이 늘어나는 등 미국의 거의 모든 산업이 중국과 교역으로 직간접적 이익을 얻고 있다"고 반박했다.

세계 경제 패러다임 전환기를 맞아 새로운 교역 규칙 정립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참석자들의 의견이 대체로 일치했다. 미국 재무부 아시아 담당 차관보를 지낸 로버트 도너 애틀랜틱카운슬 선임연구원은 "미국은 그동안 세계 교역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비용을 지불해왔지만, 중국의 부상과 기술의 발전으로 더 이상 기존의 규칙을 고수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며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일자리 창출을 위한 경제 구조 개혁 필요성도 강조됐다. 웨이 교수는 "노동시장의 유연성과 생산성을 높여야 세계화와 자동화 시대에 대응해 일자리를 만들고 유지할 수 있다"고 했다. 얀 페터르 발케넨더 전 네덜란드 총리는 "네덜란드에선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기업의 부담을 줄이고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방안을 추진했다"며 "처음엔 노조가 불만과 비판을 제기했지만 변화의 필요성을 설득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