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년 3월부터 외환시장에 개입한 내역을 공개한다. 공개 범위는 외환 당국(정부와 한국은행)이 실시한 외환 거래로, 공개 기간 중 발생한 총 매수액에서 총 매도액을 뺀 순(純)거래 내역만 발표된다. 공개 주기는 2단계로 나눠 진행하기로 했다. 올해 하반기와 내년 상반기의 개입 내역은 6개월 단위로 발표하고, 내년 12월부터는 기간을 3개월에 한 번씩 1년에 네 번 공개하기로 했다.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은 17일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의 '외환정책 투명성 제고방안'을 통과시켰다고 밝혔다.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이날 "국제사회의 권고와 시장 참가자 및 전문가 등의 조언을 감안해 내부적으로 공개를 검토해 왔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금까지 외환시장에 대해 "환율 변동을 시장에 자율적으로 맡기면서 급격한 쏠림 현상이 있을 때만 이를 미세 조정하는 수준의 개입을 진행한다"는 방침을 고수해 왔다. 또 정책 실효성을 높이고 환투기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당국이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사고판 내역은 공개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에 대해 다른 국가로부터 '한국 정부가 자국 수출에 유리하도록 원화 가치 저평가를 유도한다'는 의심을 받아 왔다. 정부가 이번에 개입 내역을 공개하기로 결정한 가장 큰 이유는 미국의 압박이 강력했기 때문이다. 미국 재무부는 1년에 두 번 작성하는 환율보고서에서 2016년부터 올해 4월까지 5차례 연속 한국을 '환율조작국' 바로 아래 단계인 '관찰대상국'으로 분류하며 압박을 가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2016년 한국 연례협의보고서에서 "적절한 시차를 두고 시장안정조치 내역을 공개하라"고 권고했고, 지난해 이사회에서도 재차 공개를 권유했다. 김윤경 기재부 국제금융국장은 이날 "미국은 최대한 짧은 주기로 가급적 많은 정보를 공개하길 희망했지만, 외환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공개 주기를 단계적으로 줄이기로 했다"고 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외환시장 개입 내역 공개가 불가피했다는 의견이 많다.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 회원국 가운데 개입 내역을 공개하지 않는 나라는 한국뿐이라 더 버티기 힘든 상황이라는 얘기다. 주요 20국(G20) 중에선 한국·중국·인도네시아·남아프리카공화국·사우디아라비아·러시아 등 6국을 제외한 나라들이 개입 내역을 공개하고 있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외환시장 개입 내역을 공개하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면서 "우리 경제의 투명성을 높이고 국제사회의 신뢰를 회복한다는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전직 외환 당국자들 사이에선 "1~2년만이라도 더 버텼어야 한다. 외환시장의 안정에 중장기적으로 타격을 줄 수 있는 조치를 너무 쉽게 양보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외화 딜러들은 이번 정부의 개입 내역 공개로 당장 외환시장에 충격은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남북 관계 개선으로 안보 리스크가 줄어든 데다, 미국 달러의 강세로 원화 가치의 급격한 상승 우려가 시장에서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 대비 원화 환율도 전날보다 3.6원 오른(원화 가치는 하락) 1081.2원에 거래를 마쳤다.

장원 신한은행 금융공학센터 차장은 “지난달 미국의 환율보고서가 발표됐을 때 한국도 거래 내역을 공개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환율이 1050원대까지 떨어지는(원화 강세) 현상이 잠시 나타났지만 지금은 회복됐다”며 “이번 발표가 원화 가치에 큰 영향을 미치진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서정훈 하나은행 연구원은 “매수액과 매도액을 구분해 공개하지 않고 순거래액만 공개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부의 모든 개입 내역이 고스란히 드러나지는 않을 것”이라며 “우리 경제 규모를 감안할 때 이 정도는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을 만한 조치”라고 했다.

다만 이번 개입 내역 공개 조치로 정부가 외환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이 줄어들 것이란 분석도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부가 주기적으로 외환시장 개입 내역을 공개해야 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향후 개입은 줄 수밖에 없다”며 “정부의 개입 패턴이 읽히면 투기 세력의 공격을 받는 등 시장에 혼란이 생길 수도 있다”고 밝혔다. 김소영 교수는 “앞으로도 ‘모든 외화 거래 내역을 공개하라’는 국제사회의 요구는 계속될 것”이라며 “이에 대한 정부의 대책 마련도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