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교통부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지난 2014년 항공기 내에서 땅콩 서비스 문제를 지적하며 활주로를 이동 중이던 항공기를 되돌린 이른바 '땅콩회항' 사건 관련자들의 징계를 추진한다. 사건이 발생한 지 약 4년이 지난 상황인 점을 감안할 때 국토부가 최근 한진그룹 일가를 둘러싸고 잇따라 문제가 불거지자 총체적인 관리감독 부실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뒷북으로 징계 절차에 들어갔다는 비판이 나온다.

국토부는 17일 “조 전 부사장을 비롯해 땅콩회항 사건 당시 대한항공 KE086편을 운항했던 조종사 A기장, 여운진 당시 객실담당 상무 등에 대한 징계를 논의하기 위해 오는 18일 행정처분 심의위원회를 연다”고 밝혔다.

조 전 부사장은 2014년 12월 5일 미국 뉴욕발 대한항공 여객기에 탑승했다가 승무원이 땅콩 마카다미아를 봉지째 가져다주자 서비스에 문제가 있다며 난동을 부렸다. 이 과정에서 이륙 준비 중이던 여객기를 램프 리턴(탑승게이트로 되돌리는 일)하도록 지시해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조현아 전 대항항공 부사장.

국토부는 심의위원회에서 조 전 부사장과 여 상무에 대해 사건 관련 허위 진술 책임을 물을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 당시 국토부 조사에서 조 전 부사장은 “사무장과 승무원에게 비행기에서 내리라고 한 것은 사실이지만 기장과 협의한 것”이라고 거짓말을 한 바 있다. 여 상무는 승무원 등이 조 전 부사장의 욕설과 폭행에 대해 진술하지 못하도록 회유하거나 협박해 허위 진술서를 작성토록 했다.

A기장의 경우 땅콩회항 당시 공항에서 이륙하기 위해 항공기를 이동시키다 조 전 부사장의 지시를 받고 항공기를 돌려 박창진 당시 사무장을 공항에 내리게 하는 등 항공 법규를 위반해 징계 대상이 됐다. A 기장은 중징계에 해당하는 자격정지 30일의 행정처분을 받을 것으로 전해졌다. 램프 리턴이 부당한 지시라는 사실을 알고도 A기장이 조 전 부사장에 대해 구두 경고 혹은 경고장 제시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게 국토부의 판단이다.

문제는 이번 징계 절차가 사건이 발생한 지 약 3년 6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이뤄진다는 점이다. 땅콩회항 사건 직후 국토부는 “램프 리턴의 책임을 물어 대한항공에 대한 운항정지 또는 과징금 부과 등 행정처분을 내리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그러나 이후 법원 판결 결과 등을 보고 사건 내용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징계하겠다고 입장을 바꿨다.

조 전 부사장에 대한 대법원 판결은 작년 12월 21일에 내려졌다. 폭언 및 폭행 혐의가 인정돼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국토부의 입장을 감안하더라도 약 5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징계 절차에 들어선 것이다.

특히 이번 국토부의 징계는 운항규정 위반과 국토부 조사 과정에서 한 거짓 진술에 대한 것이다. 징계 안건이 대법원의 판단과는 별개인 터라 국토부가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물벼락 갑질' 사건으로 한진그룹에 대한 여론이 악화하자 부랴부랴 미뤄뒀던 땅콩회항 징계에 나섰다는 눈총을 받고 있다. 조 전 부사장은 대법원 판결 이후인 지난 3월 29일 한진그룹 계열사인 칼호텔네트워크 사장으로 선임됐지만, 국토부는 이때도 징계에 대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