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대중(對中) 감정 우호적이지만은 않으나
중국인은 러시아 ·러시아인에 대해 호감 갖는 편
역사·군사·정치·경제·문화·사회적으로 깊이 관련된 두 나라

한국의 이름이 외국에서 ‘코리아’이듯 외국인들이 중국을 부르는 명칭이 있는 것이 당연한데, ‘차이나(China)’는 중국 최초의 통일국가 진(秦∙중국 발음으로는 친)나라 덕분에 얻어진 외국어 국명이다. 또 ‘캐세이(Cathay)’도 외국어로 불리우는 중국의 대명사이다. 그 이름의 용례 중 하나는 잘 알려진대로 홍콩을 거점으로 한 항공사 ‘캐세이 퍼시픽’이다.

캐세이라는 말은 ‘키탄(Khitan)’과 연관이 있다. 서양에서 ‘거란’을 키탄이라고 부른다. 10세기에서 11세기에 중국 북방의 유목 민족은 요나라를 세우고 만리장성을 넘어 지금의 북경 지역과 중원의 개봉까지 차지했다. 유목 민족이 중국에 정복 국가를 만든 최초의 역사이다. 중국은 이러한 역사도 자신들의 역사로 편입한다.

이 유목 민족이 거란(契丹∙중국 발음으로는 치단)이다. 거란이 무너뜨린 나라들은 오대, 발해, 북송, 서하 등이다. 거란은 고려에도 수차례 침공했고 이 과정에서 강감찬, 서희 등이 역할을 했다. 거란족 자체가 본디 몽골족과 혈연 관계다. 몽골어로 키단이 거란이다.

캐세이 퍼시픽(Cathay Pacific) 항공.

몽골이 12세기에서 13세기에 세계로 진출하고 유럽 땅까지 정복했을 때 키탄이라는 말도 전해지고 현지화되었을 것이다. 몽골은 당시 러시아의 주력 키예프 공국을 점령하고 폴란드 헝가리 등에 이르렀다. 현대 대부분의 서양 나라들에서 중국의 국명은 차이나이지만, 러시아에서는 아직도 중국의 국명이 키따이(Китай)이다. 키따이라는 이름도 거란에서 유래했다.

그런데 현대 러시아에서 종종 동양인이 길거리를 지나 다니다가 ‘키따이스키’라는 말을 듣는 경우가 있다. ‘중국인의, 중국의’의 의미를 가지는 러시아 말이다. 러시아인들이 외모상으로 중국인, 한국인, 일본인을 구분해 내기는 힘들기에, 한국인들도 러시아에서 이 말을 들을 개연성이 충분히 있다.

문제는 이 말이 결코 우호적인 말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다분히 인종 비하적인 의도가 담긴 호칭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러시아에서는 동양인 특히 동양 남자를 대상으로 한 인종 차별적 공격이 있기도 하기 때문에 러시아를 방문할 때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점도 덧붙인다.

11세기 러시아 키예프 공국에 세워진 황금의 문은 13세기 몽골의 침공으로 파괴된다. 사진은 복원된 건물의 모습.

그에 반해 상대적으로 일반적인 중국인들의 러시아·러시아인에 대한 호감도는 좋은 편이다. 이러한 호감도는 장년층일 수록 더 높다. 연원은 소련과 중공 시절까지 올라간다. 같은 사회주의 나라의 원조(元祖)이자, 중공 건국 초기에 국가적인 원조(援助)를 해 주었던 소련이었다. 또 기나긴 냉전의 시기에는 서방의 이데올로기적 대척점에서 동맹 관계를 형성했던 두 나라이다.

이런 저런 까닭으로 장노년층의 기저에 반미 감정은 존재한다. 젊은 층도 윗 세대의 영향을 알게 모르게 받아서 반미 정서가 잠복해 있다. 젊은 세대의 입에서 또는 인터넷 상에서 어렵지 않게 ‘미제’라는 표현이 나오는 경우를 목격할 수 있다. ‘미 제국주의’를 뜻하는 말이다. 중국 중앙 티비를 비롯한 주류 언론도 미국에 대해 그리 우호적이지는 않다. 미국의 총기사고, 테러나 허리케인, 산불등 재해가 발생하면 비교적 상세히 보도한다.

한국(6∙25) 전쟁을 중국 사람들은 ‘항미(抗美) 원조(援朝) 전쟁’이라고 한다. ‘미국에 대항하고 조선을 도운 전쟁’이라는 뜻이다. 이 전쟁에 마오쩌둥의 맏아들 마오안잉(毛岸英)도 참전해 전사했다. 중국의 개혁 개방 이전까지, 중국인들은 소련에 유학을 가고, 러시아어를 배우고, 러시아 음악을 듣고, 러시아 문학을 접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톨스토이(중국 발음으로 퉈얼스타이), 푸시킨(푸시진), 고리키(가오얼지) 등은 중국인들에게 친숙한 러시아의 문호이다.

북한에 있는 모택동의 장남 마오안잉(毛岸英)의 묘. 한국전쟁에 참전해 전사했다.

러시아에서 ‘조국 수호 전쟁’이라고 일컬어지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노래인 ‘소로(小路∙Дороженька)' 같은 경우는 한국인들도 잘 아는 등려군(邓丽君)을 비롯해 8명의 중국 가수가 번안해서 불렀을 만큼 중국에서 대중적이다.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외국 노래 순위에 ‘모스크바 교외의 저녁(莫斯科郊外的晚上∙Подмосковные Вечера)’이라든지 러시아의 민요인 ‘트로이카(三套车∙Тройка)’ 등이 오른다. 차이콥스키(중국 발음으로 차이커푸스지)도 인기가 있는데 ‘슬라브 행진곡(斯拉夫进行曲∙Славянский марш)’처럼 장엄하면서 결의를 북돋우는 곡이 중국인들에게 익숙하다.

중국과 러시아의 관계는 아직도 각별하다. 역사·군사·정치·경제·문화·사회적으로 깊이 엮여 있다. 한국 전쟁 이후 한국에서는 미국과 일본에 대한 관심과 교류와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러시아와 중국에 대한 관심과 교류는 적을 수 밖에 없었다. 이제 우리는 시장경제를 운위하는 러시아, 중국과 교역하며 상호 이익을 추구해 오고 있다. 시장이 협소한 한국으로서는 지역적으로도 붙어 있고 소비자의 규모도 큰 두 나라와의 경제적 거래에 나서지 않을 이유가 없다.

또한 현대의 디지털 경제와 글로벌 교역이라는 두가지 테마만으로도 우리 젊은이들이 중국, 러시아 시장을 포함한 세계로 활동 범위를 넓힐 동인이 된다. 더구나 동북아의 군사적 긴장이 완화될 수록 육로로 연결된 경제권은 활성화될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광의의 중국어권 시장과 러시아어권 시장도 함께 묶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 필자 오강돈은…

《중국시장과 소비자》(쌤앤파커스, 2013) 저자. (주)제일기획에 입사하여 하이트맥주, GM, CJ 국내마케팅 등 다수의 성공사례를 만들었다. 이후 디자인기업, IT투자기업 경영을 거쳐 제일기획에 재입사하여 삼성휴대폰 글로벌마케팅 프로젝트 등을 집행했고, 상하이/키예프 법인장을 지냈다. 화장품기업의 중국 생산 거점을 만들고 판매, 사업을 총괄했다. 한중마케팅(주)를 창립했다.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졸업, 노스웨스턴대 연수, 상하이외대 매체전파학 석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