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조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과 최종구 금융위원회 위원장이 삼성의 지배구조 개편을 위해 총대를 멘 모습이다. 이들은 삼성이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서둘러 지배구조를 안정적으로 개편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일각에서는 정부가 개별 기업의 지배구조에 지나치게 개입한다는 시각이 있다.

특히 과거에 삼성이 했을 때는 비판했던 내용을 현 정부 관계자들이 ‘정답’처럼 다시 거론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비판도 나온다.

김상조(오른쪽) 공정거래위원장이 작년 11월 열린 5대 그룹과의 정책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김상조 위원장, 미전실 비판하더니 “컨트롤타워 필요”

14일 재계에 따르면 김상조 위원장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기존 미래전략실과 다른 새로운 그룹 컨트롤타워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삼성은 그룹 컨트롤타워였던 미래전략실(미전실)을 없애고 삼성전자(005930), 삼성물산(028260), 삼성생명(032830)안에 각각 전자, 비(非)전자, 금융 계열사를 아우르는 컨트롤타워 조직을 만들었는데, 이 방식으로는 삼성 전체를 이끌기에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는 또 “컨트롤타워에서 잠정적으로 의사결정을 한 뒤 계열사에서 이해관계자 권익 침해 없이 자유롭게 독립적인 절차를 통해 최종 결정을 한다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지 않더라도 그룹 의사결정 구조를 투명하게 확립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김 위원장은 과거 삼성의 미전실에 대해 “막강한 권력 뒤에 숨겨진 커튼 뒤의 조직”, “대주주의 이익을 대변하고 대관창구를 하면서 금력 등으로 목표를 달성하는 구태의연한 조직”이라며 강하게 비판해 왔다.

2016년 12월 국정농단 청문회에서는 참고인으로 나와 “삼성그룹의 의사결정은 각 계열사의 이사회에서 이뤄지는 게 아니라 미래전략실에서 이뤄지는 것으로 안다. 미래전략실은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면서도 책임은 지지 않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경우 무리한 판단을 하게 되고, 심지어는 불법 행위로 이어지는 경우도 없지 않다”고도 했다. 청문회 당시 여야 의원들은 이재용 부회장에게 미전실 해체를 요청했고, 이 부회장은 이 자리에서 해체를 약속한 뒤 이듬해 미전실을 없앴다.

그러나 김 위원장이 이번에 언급한 ‘새로운’ 컨트롤타워가 과거 미전실과 큰 차이가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전실은 삼성의 장기적인 투자 전략이나 계열사 간 시너지를 높이는 역할을 해왔다. 예를 들면 계열사 간 투자 계획을 종합해 중복 투자를 막는 식이다. 미전실에서 잠정 결정된 내용은 각 계열사의 이사회를 통해 최종 결정됐다.

재계 관계자는 “과거 김 위원장이 비판했던 게 미전실이 잠정 결정하고 계열사 이사회가 결정하는 구조였는데, 이번 발언이 말은 그럴싸하지만 과거와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서울 세종대로에 있는 삼성 사옥.

◇ ‘삼성 특혜’라던 중간금융지주사도 다시 거론

김 위원장은 지난 10일 10대그룹 경영인과의 간담회 이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삼성의 지배구조 관련 질문에 “본인이 2016년 경제개혁연대 소장 시절 작성한 보고서를 삼성 측이 참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국회는 삼성생명이 가진 삼성전자 지분 대부분을 강제로 매각하도록 하는 내용으로 보험업법 개정을 추진 중인데, 본인이 쓴 보고서처럼 삼성이 삼성생명을 중심으로 금융지주회사를 설립하면 삼성전자 지분을 조금만 팔아도 된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현재 삼성전자의 최대주주인 삼성생명을 중심으로 금융지주회사를 설립하면 삼성생명이 삼성전자의 2대 주주가 될 정도로만 삼성전자 주식을 처분하면 된다고 적었다. 또 주식 처분 기간도 최대 7년에 달해 시장이 미치는 충격도 거의 없다고 예상했다.

삼성도 삼성생명을 중심으로 금융지주회사를 설립하는 방안을 고민했었다. 그러나 관계 부처가 ‘삼성 특혜’ 논란을 의식한 탓에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공정위는 과거에 중간금융지주회사를 허용하는 내용으로 법률 개정을 추진했으나 모두 무산됐고 작년에는 중간금융지주회사법을 통해 삼성의 경영승계 편의를 봐주려고 했다는 혐의로 특검의 압수수색을 받기도 했다.

금융위는 2016년 1월 삼성생명으로부터 금융지주사 전환 계획안을 검토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금융위는 실무진 검토 결과 계획안을 승인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리고 그해 2월 삼성 측에 입장을 전달했다. 삼성은 금융위의 반대에도 지주사 전환을 추진하다가 약 두 달 뒤인 4월 11일 지주사 전환 추진 계획을 전면 보류했다.

당시 금융위 담당 국장이었던 손병두 사무처장은 이재용 부회장 등에 대한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삼성생명의 지주사 전환은 합법적이었지만, 이 과정에서 대주주의 그룹 지배력이 강화되고 사회적 비난이 뒤따르는 만큼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금융위로선 삼성의 편을 들어줬다는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부정적인 입장을 고수할 수밖에 없었다. 삼성에서 삼성생명 금융지주사 전환을 보류했을 때 솔직히 너무 기뻤다”고 했다.

김 위원장이 삼성생명의 금융지주사 전환 필요성을 다시 꺼냈지만, 당장 이 방안대로 추진될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이 부회장 재판이 진행 중인 데다, 삼성생명이 다시 금융지주사 전환을 추진하면 ‘삼성 특혜’ 논란이 불거질 수 있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도 과거 언론 인터뷰에서 “중간지주회사법은 금융그룹 통합감독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한 뒤 논의가 가능하다. 통합감독시스템이 도입되고 난 뒤 1~2년 뒤에 제도화될 것”이라고 한 바 있다.

통합감독시스템은 삼성, 현대자동차, 롯데, 한화 등 금융계열사를 둔 복합금융그룹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제도로 올해 7월부터 시행된다. 삼성 측은 지배구조 개편과 관련해 여러 방안을 고민하고 있지만, 정해진 게 없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