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지하철 1호선 종각역 4번 출구 앞 빌딩. 1~4층 총 116평(383㎡)을 임대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바로 옆 건물에도 '통임대, 분할임대 가능'이라며 전화번호를 적어놓았다. 길 건너 지하철 출구 앞 상가는 1~3층 휴대전화 매장과 프랜차이즈 피자집이 빠져나간 공실이 그대로였다. 종각역에서 종로 3가 방향으로 걷다 보니 대로변 상가에는 '임대'라고 쓰인 플래카드가 곳곳에 걸려 있었다.

조선 건국 이래 '한양(서울) 최대 상권' 지위를 누려온 종로 일대에 빈 상가가 급증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소비 경기 위축이 길어지는 데다, 종로 상권의 위상이 광화문과 명동에 밀리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분석한다.

대형 프렌차이즈 빠지며 공실 급증

종로 일대는 대기업이 많고, 인사동·청계천이 가까워 직장인과 20~30대는 물론 외국인 관광객도 많이 찾는다. 그러나 최근 들어 대형 의류 매장이나 프랜차이즈 음식점, 화장품 매장 등이 하나둘 빠져나가면서 빈 상가가 급격히 늘었다.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종각 젊음의 거리 입구에 있는 빌딩 전면에 임대 안내문이 붙어 있다. 종로·종각 일대를 포함한 서울 도심 상권의 올해 1분기 공실률은 10.4%로 서울 평균(8.7%)보다 높다.

특히 대기업 브랜드가 차지했던 '대로변 대형 상가'의 상황이 심각하다. 종로 상권의 중심인 '젊음의 거리' 입구 코너에 있는 2층짜리 대형 매장은 SPA 의류 브랜드가 철수한 뒤 줄곧 비어 있다. 청계천이 보이는 빌딩 2곳도 유명 브랜드 대형 커피 전문점이 철수한 뒤 반년 가까이 공실이다. 최근엔 20~30대 타깃의 식당과 술집, 카페가 즐비한 골목에도 군데군데 빈 가게가 생기고 있다. 인근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는 "6~7층짜리 건물에 4개 층이 비어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대로변과 코너 목 좋은 자리들도 장기간 공실로 있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원인을 '종로 상권의 위상 추락'에서 찾는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서울 종로 상권 6층 이상 빌딩 공실률은 작년 1분기 11.1%에서 올해 1분기 20.1%로 급등했다. 같은 기간 서울 전체 공실률 상승폭(9.8→11.9%)을 훨씬 웃돈다. 이 기간 같은 도심 내에서 광화문 공실률은 오히려 7.6%→7.5%로 내렸다. 권강수 한국창업부동산정보원 이사는 "내수 경기 위축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종로 상권이 인근 광화문에 밀리면서 '상징성'만을 겨냥해 비싼 임대료를 감당해온 대기업과 대형 프렌차이즈들이 철수한 게 가장 큰 원인"이라고 말했다.

상권 중심 대형빌딩으로 이동

상권이 주변으로 확대되는 것도 기존 종로 상권 약세의 원인이다. 부동산 114에 따르면, 종로를 포함하는 '종각역 일대' 상권 임대료는 오히려 올랐다. 종로 주변 익선동·인쇄골목 등 '골목상권'이 인기를 끌면서 임대료가 오른 결과다.

작년 1분기 1㎡당 4만5000원이었던 것이 올해 1분기 6만3900원으로 43% 올랐다. 같은 기간 종각과 인접한 광화문 상권 임대료는 2.3% 오르는 데 그쳤고, 강남 주요 상권인 신사동 가로수길, 압구정동 로데오거리, 강남역 주변은 오히려 임대료가 내렸다. '건물주의 고집'도 한몫한다. 김민영 '부동산114' 선임연구원은 "종각역 일대에서 골목 상권과 신축 상가 임대료는 급등하고, 기존 상권 낡은 건물 임대료는 내리지 않은 결과"라며 "종로 상권은 수십년 보유한 건물주가 많아, 공실이 났다고 금방 임대료를 내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신축 대형 오피스 빌딩들이 리테일(상업시설) 조성에 공을 들인 것도 기존 종로 상권 침체의 한 원인이다. 최근 몇 년 사이 종로타워·그랑서울·센터원빌딩·페럼타워·디타워 등 인근 대형 빌딩에 들어선 인기 식음료 매장들이 기존 종로 상권 고객들을 빼앗아간 것이다.

김성순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 전무는 "도심 오피스 빌딩들이 저층부에 유명 맛집들을 공격적으로 유치하면서 종각역 주변 유동인구가 줄었다"며 "길거리 상권에 특화된 매장을 유치하거나 대형 오피스 빌딩에 들어갈 수 없는 특색 있는 업종을 발굴해 공실을 채우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