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옥 이삭뜰 대표, 노후자금 투자해 '장'사업 시작
아내 이순규 공동대표가 담근 장, 맛 좋다고 '입소문'
딸, 아들도 합류, 일손 보태...홈쇼핑에도 판매 예정

지난 10일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면의 농업회사법인 ‘이삭뜰’. 적당히 높은 산과 산새들의 지저귐으로 둘러싸인 한적한 시골 풍경이 펼쳐졌다. 이삭뜰은 ‘뜰안에 된장’이라는 브랜드로 다양한 장을 판매한다. 교통이 막히지 않으면 서울 시내에서 차로 1시간도 걸리지 않는다.

이삭뜰에는 1200개에 달하는 성인 남성 허리 높이만한 옹기항아리가 줄을 지어 놓여있다(사진 왼쪽).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에 있는 농업 회사 법인 이삭뜰.

서울 근교에 이런 곳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시골 냄새가 났다. 가장 눈에 띈 것은 커다란 화강암 돌담안에 줄을 지어 가지런히 놓인 수 많은 항아리와 그 옆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남양주시 농업기술센터가 운영하는 ‘장만들기 아카데미’ 수강생으로 장담그기 실습을 하는 중이었다.

송재옥 이삭뜰 대표(62)는 보유한 항아리가 모두 1200개쯤 된다고 했다. 개당 30만원에 구입한 항아리 가격만 3억6000만원에 달한다. 송 대표는 거의 모든 항아리에 된장과 간장 고추장이 담겨 있어 돈으로 환산하면 10억원이 훌쩍 넘는다고 했다.

어렸을 때 살림이 넉넉치 않았던 송재옥 대표(사진)는 양곡상을 운영할 때인 30대 후반부터 노후 준비를 시작했다. 노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만큼 돈을 모았다고 생각했을 때 양곡상 일을 과감히 접었다. 하지만 그는 전통장에 빠져 땅과 장 담글 항아리를 사고 필요한 시설을 짓는데 노후 자금을 쏟아부었다.

생각과 달리 그의 장 사업은 시행착오의 연속이었지만 이제는 자리를 잡았다. 그는 “여전히 생각도 못한 문제에 봉착할 때가 있지만 그래도 장 만드는 기술만큼은 이제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수준에 도달했다”고 자부했다.

이렇게 자리를 잡기까지는 음식 솜씨가 좋았지만 서울을 떠나기 싫어했던 아내 이순규씨와 두 자녀의 도움이 컸다. 아내는 공동대표로, 슬하에 둔 1남 1녀도 다니던 회사를 정리하고 직원으로 합류해 전통장을 만들고 있다.

전통장 만들기 체험학습장에서 메주를 띄우는 모습.

아래는 송재옥 대표와의 일문일답

-노년을 위해 30대 후반부터 준비했으면 나이 먹어 굳이 새로 일을 시작하지 않아도 됐을텐데.

“처음부터 장을 만들어 파는 회사를 만들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아내가 음식 솜씨 좋은 줄은 알았는데 장도 잘 만들더라. 2005년 양곡상회를 접은 뒤 집에서 먹으려고 담근 장을 가져다 먹어 본 처제가 팔라고 권유했고, 4~5년간 다른 이들에게도 나눠줬더니 반응도 좋아 제대로 사업을 시작하게 됐다.”

-장독 수가 엄청나게 많다. 최근에 만들어진 항아리 같은데 옛날 항아리가 좋지 않나.

"옛날 항아리가 좋긴 한데 장만 담아뒀던 항아리를 찾기 쉽지 않다. 김치를 발효시키는 미생물, 젓갈을 발효시키는 미생물, 장을 발효시키는 미생물이 다 다르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장 만들기로 사업을 시작할 당시 만들어진 항아리를 개당 30만원씩 주고 1200개를 한꺼번에 구입했다."

-노후 자금으로 사업을 시작한다고 했을때 부인의 반응은 어땠나.

“서울 생활에 익숙해진 아내는 처음에 서울을 떠나 귀촌하는 것조차 반대했다. 그래도 계속해서 설득했다. 설득 작업이 한 10년쯤 되자 시골에 내려가 사는 것에 대해 동의하더라. 그래도 재미삼아 장을 담아먹기 시작했지만 사업으로 하자는데는 반대했다. 사업으로 시작하기까지 설득하는데에도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별내에 터전을 마련한지 5년 뒤인 2010년에서야 본격적으로 장 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아내는 이제 전통장연구가가 됐을 정도로 장에 대한 애착이 더 크다. ”

-자녀들도 같이 일한다고 했는데 든든하겠다, 권유한 것인가.

“맏딸이 먼저 합류하고 아들이 뒤어어 합류했다. 둘 다 스스로 결정했다. 월급을 회사 다닐 때만큼 주지 못한다고 했는데도 회사를 관두고 장만드는 걸 배우겠다고 하더라. 부모들이 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성공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 부모가 하는 일을 의미있게 생각한 것 같아 마음이 뿌듯하긴 한데, 아직 일하는 것은 성에 차지 않는다. 아들은 교육을 담당하고 딸은 기획이나 서류정리 등의 업무를 맡았는데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면 회사를 안 물려줄 생각이다(웃음).”

-장 맛이 좋다지만 사업으로 자리를 잡기까지 우여곡절도 있었을텐데.

“사업이 커지는 상황에 따라 투자 규모를 늘렸어야 했는데 초기에 너무나 많은 돈을 투자했다. 땅을 사고 항아리를 한꺼번에 1200개나 사는 바람에 자금이 부족해 고민하던 때도 있다. 2015년까지만 해도 자금 압박이 심했다. 장맛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도 일이었다. 그래서 표준 레시피를 만들었다.”

이순규 이삭뜰 공동대표가 일반인을 대상으로 장가르기에 대해 교육하고 있다.

- 장을 만드는 것도 어렵겠지만 파는 것은 더 어렵지 않나.

“잘 알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장을 만들어 파는 일이 너무나 힘들었다. 이 때 생각해낸 방법이 소셜네트워크(SNS)를 통해 장만들기 체험학습을 홍보하는 것이었다. 이후 시나브로 제품 홍보가 이뤄지면서 장을 사는 사람들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2015년부터는 성인을 대상으로 한 ‘친정엄마 프로젝트’도 시작했는데 올해 회원이 400명에 달할 정도로 자리를 잡았다.”

-장가르기를 하는 이들이 대다수 40~50대 여성으로 보이던데

“요즘에는 직접 장을 만드는 사람들이 없을 것 같지만 장만들기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도 꽤 된다.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자녀에게 믿을 수 있는 건강한 음식을 먹이고 싶은 욕구 때문인 것 같다. 이런 사람들이 많아져야 수천년간 이어온 한국의 전통장 문화가 지속될 수 있다. 그래서 일반 성인을 대상으로 체험을 많이 진행한다.”

-은퇴자금을 쏟아부었다고 했는데 수익은 어떤가.

“매출은 한 5억원쯤인데 원재료 사고 인건비 빼면 아직 큰 돈이 남지는 않는다. 그래도 쩜장, 쩜짜장, 간장, 고추장, 된장, 청국장, 그리고 장을 이용해 만든 장아찌 등 다양한 상품을 개발하고 있어 기대가 크다. 조만간 홈쇼핑을 통해 이들 상품을 판매할 계획이다.”

-쩜장, 쩜짜장은 처음 들어본다.

“쩜장은 지금은 돌아가신 어머니에게 배운 된장의 일종인데 강원도 막장과 비슷하다. 다른 된장보다 짜지 않고 감칠맛이 좋다. 얼마전 쩜장을 이용해서 짜장면 소스로 사용할 수 있는 쩜짜장을 개발해 특허를 받았다. “

-앞으로의 계획은

“회사에 30평 규모의 식당을 만들어 예약제로 운영할 계획이다. 소문이 나면서 장을 맛보기 위해 전국에서 사람들이 찾아오는데 대접할 게 없어 미안하기도 했고, 장맛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음식으로 만들어 먹어야 제대로 느낄 수 있다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