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왕실의 금고지기'로 불리는 칼리드 알팔리〈사진〉 사우디아라비아 에너지산업광물자원부 장관이 3일 한국을 방문했다. 알팔리는 사우디의 실세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오른팔로 불린다. 그는 사우디 왕실 재정의 90% 이상, 국내총생산(GDP)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국영 석유 회사 아람코의 이사회 의장이다. 미 텍사스 A&M대 기계공학과, 사우디 킹 파드대 MBA를 취득한 뒤 1979년 아람코에 입사, 2009~2015년 CEO를 역임했다. 빈 살만 왕세자가 열성적으로 추진 중인 시가총액 2조달러의 아람코 IPO(기업 공개) 준비 작업을 주도해 신임을 얻었다. 빈 살만이 권력 실세로 부상한 2015년 석유·광물, 원전, 신재생에너지를 총괄하는 장관에 발탁됐다.

빈 살만의 금고지기를 잡아라

정부는 알팔리 모시기에 공을 들이고 있다. 그가 7000억달러(약 750조원) 규모의 21세기 최대 단일 프로젝트인 '비전 2030' 실무를 맡고 있기 때문이다.

비전 2030은 사우디가 석유 의존 경제에서 벗어나 첨단 기술과 투자 허브로 변신하려는 국가 프로젝트다. 이 중 5000억달러(약 530조원)는 '중동판 실리콘 밸리'인 미래 신도시 네옴(NEOM) 건설비다. 2025년 완공 예정인 네옴은 독자적인 조세·노동법·사법제도를 갖추고 미래 첨단 기술 도시로 육성된다.

정부의 의전도 각별하다. 알팔리는 4일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면담한 뒤 청와대를 예방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저녁에는 주한 사우디 대사관이 신라호텔에서 주최하는 리셉션에 참석해 정·재계 주요인사들과 만나고, 5일 울산 에쓰오일 공장을 들른 뒤 출국한다.

한국과 일본은 현재 원전, 태양광, 인프라 사업 등 '빈 살만의 돈'을 잡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알팔리 장관이 한국에서 2박3일 체류한 뒤 곧바로 일본을 방문하는 것도 양국을 경쟁시키려는 행보로 업계는 보고 있다.

35년 만에 영화 상영 '신세대 군주'

빈 살만 왕세자는 아버지 살만 국왕을 대신해 사실상 국가 운영을 도맡고 있다. 빈 살만은 2017년 6월 당시 왕세자였던 사촌형 빈나예프를 가택 연금하고 제1 계승자에 올랐다. 저(低)유가로 구멍 난 국가 재정을 메우기 위해 작년 11월 수백명의 왕족·사업가 등을 부패와 공금 횡령 등의 혐의로 체포한 뒤 사재(私財)를 헌납받기도 했다. 빈 살만은 대내적으론 여성 운전을 허용하는 등 신세대 군주의 이미지를 쌓고 있다. 지난달엔 35년 만에 처음으로 영화 상영을 허용했다. 상영작은 할리우드 영화 '블랙팬서'였다.

7000억달러 프로젝트… 한·일 총력전

사우디아라비아는 비전 2030의 일환으로 2000억달러 규모의 태양광발전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 정부와 기업들도 이 사업에 눈독을 들이고 있지만, 경쟁국인 일본에 한발 뒤지고 있다. 빈 살만은 지난 3월 뉴욕에서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과 만나 2030년까지 총 200GW 규모의 태양광발전소 건설을 위한 합작회사 설립에 합의했다.

우리가 수주를 기대하는 사업은 원전이다. 사우디는 200억달러를 들여 1400MW급 원전 2기를 짓는 사업을 추진 중이다. 현재 한국·미국·러시아·중국·프랑스 등이 치열한 경쟁 중이다. 이달 안에 예비 사업자 2~3곳을 선정할 계획인데, 정부는 알팔리 장관의 방한으로 우리가 중국·미국과 함께 예비 사업자에 선정될 가능성이 큰 걸로 기대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알팔리 장관의 방한으로 사우디 원전 수주 전망이 밝아졌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