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정상회담 이후 한반도 평화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남북 경제협력과 문재인 정부가 내세운 '신(新)북방정책'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해운업계에서는 아시아에서 유럽까지 가는데 걸리는 시간을 10일 단축할 수 있는 북극항로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대우조선해양이 인도한 쇄빙LNG선이 북극해의 빙하를 뚫으며 운항하고 있다.

북극항로는 태평양에서 대서양까지 러시아 북쪽 해안을 따라가는 항로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북극 해빙(解氷)이 발생하면서 생긴 뱃길이다. 1년 중 7월에서 10월까지 4개월 동안만 경제적 운항이 가능하지만, 2030년이 되면 빙하가 녹아서 연중 일반 항해가 가능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해운업계에서는 유럽과의 교역 거리를 30% 이상 줄일 수 있기 때문에 북극항로를 이용가치가 높은 항로로 보고 있다. 부산에서 네덜란드 로테르담까지 갈 때 지금처럼 수에즈 운하를 통과해 가면 거리가 2만1000㎞지만, 북극항로는 1만2700㎞다. 운항시간으로 따지면 45일 걸리는 거리를 35일 만에 갈 수 있다. 운항거리와 시간이 줄어들수록 연료비 등 선박 운항 비용이 줄어든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해 러시아와의 경제협력을 언급하며 구체적인 협력 실행방안으로 ‘9개의 다리(9-Bridge)’를 강조했다. 9개 다리는 가스, 철도, 전력, 항만, 북극항로, 조선, 일자리, 농업, 수산업이다. 그 중에서도 북극항로가 가장 주목받는 사업으로 꼽힌다. 북극항로를 이용하려면 러시아 영해를 지나야하기 때문에 국가 간 협력이 필요하다.

한국은 2013년부터 시범 운항을 진행하는 등 중국·일본 등 경쟁국보다 한 발 먼저 북극항로 개척에 뛰어들었다. 현대글로비스가 2013년 가장 먼저 나프타 운송에 나섰다. 이후 CJ대한통운이 해상하역설비(2015년 7월), SLK국보가 석유화학플랜트설비(2016년 7월), 팬오션이 야말LNG플랜트설비(2016년 7월, 8월) 운송을 진행했다.

하지만 안정적인 물량 확보에 실패하면서 현재는 북극항로 이용이 거의 없는 상황이다. 북극항로를 항해하려면 얼음을 깰 수 있는 쇄빙선이 길을 터주거나 선체 강도가 높은 내빙(아이스클래스)선박이 필요한데, 쇄빙선 이용료나 선박 건조비가 비싸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거리가 먼 수에즈 운하를 이용하는 것이 경제적인 상황이다. 2011년 기준으로 수에즈 운하를 이용할 경우 1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당 운송비용은 1243달러지만, 북극항로를 이용할 경우 1TEU당 운송비용은 1558달러로 25% 높다.

홍성원 영산대 북극물류연구소장(해운항만경영학과 교수)은 “안정적이고, 장기적으로 수송할 수 있는 화물을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라며 “상업 운항이 가능하다는 것은 이미 알려졌고, 경제성을 확보하려면 화물이 있어야 한다. 안정적인 화물이 있어야 비싼 내빙선박도 건조할 수 있다”고 했다.

한국이 주춤한 사이 경쟁국들은 자원사업과 연계해 북극항로 이용을 노리고 있다. 일본 미쓰이·미쓰비시·마루베니는 컨소시엄을 구성해 러시아 가스업체인 노바텍과 MOU를 체결해 야말 LNG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세계 최대 컨테이너선사 머스크도 북극항로에 3600TEU급 내빙컨테이너선박 운항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 이미 중국에서 내빙컨테이너선을 건조했고, 발트해 등에 투입할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국적 선사인 COSCO도 북극항로에서의 정기선 서비스 개시를 고민하고 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북극항로가 앞으로 많이 개발될 것이고 이용가치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지만, 당장 노선을 만들 정도로 급하게 서두를 문제는 아니다”라며 “장기적으로 검토해야 할 과제”라고 했다.

홍 소장은 “한국은 중국, 일본과 달리 러시아와의 군사적·정치적 이해관계가 없기 때문에 협력이 용이하다”라며 “산업통상자원부, 해양수산부 뿐 아니라 북극항로와 관련된 모든 이해관계자인 화주, 선사, 조선, 항만 등이 힘을 합쳐 개척해야 한다”고 말했다.